분류 전체보기 671

중국 울린 조선족 음악가, 그의 발자취 한눈에…

등록 :2009-10-23 19:05수정 :2009-10-23 23:53 하얼빈시에 개관한 정율성 전시관에 있는 그의 사진. 왼쪽 리본에는 ‘율성, 당신의 음악이 음악의 도시에서 피어났습니다’라는 아내의 글이 쓰여 있고, 오른쪽 리본에는 ‘아빠, 인민들은 아빠를 잊지 않았어요’라는 딸의 글이 적혀 있다. 인민해방군가 작곡한 정율성 기념관 7월에 하얼빈 개관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우리의 대오는 태양을 향하여…”세계의 시선이 쏠린 지난 1일 중국 건국 60주년 열병식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이 행진할 때 울려퍼진 장엄한 ‘인민해방군가’의 작곡가가 한국에서 태어나 중국과 북한에서 활동한 조선족 음악가 정율성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겐 아직 낯설다. 1914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난 정율성은 중국과 북한 두 나라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뤄낸 통일민주당 [한국정당사⑨]

정진호 기자 승인 2023.08.10 14:38 댓글 0 기사공유하기 프린트 메일보내기 글씨키우기 손잡은 YS와 DJ, 통일민주당 창당 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성취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YS와 DJ가 힘을 모아 만든 통일민주당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시사오늘 정세연 YS(김영삼 전 대통령)계와 DJ(김대중 전 대통령)계가 모두 탈당을 선언하면서, 신한민주당은 사실상 붕괴 수순을 밟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두 사람은 새로운 정당 창당에 나섰는데요. 그게 바로 통일민주당이었습니다. 민주당 창당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4·13 호헌조치로 민주화 열망에 찬물을 끼얹은 전두환 정권이 민주당 창당마저 방해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전두환 정권은 폭력..

‘이민우 구상’과 또 다시 분열된 신민당 [한국정당사⑧]

‘이민우 구상’과 또 다시 분열된 신민당 [한국정당사⑧] 정진호 기자 승인 2023.07.27 20:02 댓글 0 기사공유하기 프린트 메일보내기 글씨키우기 이민우 구상에 주류 vs 비주류 갈등 격화…주류 측 탈당 후 통일민주당 창당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이민우 구상으로 인해 신한민주당은 다시 분열의 길을 걷는다. ⓒ시사오늘 정세연 제12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신한민주당은 여세를 몰아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국회 내에서는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고 나섰고, 국회 밖에서는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민주제 개헌 1000만 명 서명 운동’을 전개하면서 분위기를 잡아 나갔습니다. 그런데 1986년 12월 24일, 신민당 초대 총재 이민우가 갑작..

제12대 총선, 역사 바꾼 신민당 돌풍 [한국정당사⑦]

정진호 기자 승인 2023.07.18 19:27 댓글 0 기사공유하기 프린트 메일보내기 글씨키우기 창당 25일 만에 치른 선거서 67석 돌풍…민주화 앞당겨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신한민주당은 창당 25일 만에 치른 제12대 총선서 67석을 획득하며 원내 제1당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킨다. ⓒ시사오늘 신한민주당(이하 신민당)은 제12대 총선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1985년 1월 18일에 공식 창당됐습니다. 그리고 1987년 4월 YS(김영삼 전 대통령)·DJ(김대중 전 대통령) 계파 의원 74명이 대거 탈당하면서 사실상 몰락 수순을 밟았습니다. 신민당이 실질적으로 야당 역할을 수행한 건 2년 3개월여, 명목상으로나마 존속했던 것도 3년 3개월여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신민당은 우리 ..

‘관제야당’ 시대, 단식투쟁으로 돌파구 마련한 YS [한국정당사⑥]

정진호 기자 승인 2023.07.12 21:00 댓글 0 기사공유하기 프린트 메일보내기 글씨키우기 정치적 암흑기 속 단식 투쟁으로 돌파구 마련한 YS…DJ측과 힘 합쳐 신한민주당 창당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전두환 정권의 등장으로 정치적 암흑기가 도래한 가운데, YS는 단식투쟁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한다. ⓒ시사오늘 김유종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면서 서울에는 봄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짧은 봄 뒤엔 더 혹독한 겨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은 이듬해인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활동을 금지했습니다. 같은 해 11월에는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해 기존 정당들을 해체시키고 ..

박정희 정권 무너뜨린 신민당 [한국정당사⑤]

박정희 정권 무너뜨린 신민당 [한국정당사⑤] 정진호 기자 승인 2023.07.06 08:31 댓글 0 기사공유하기 프린트 메일보내기 글씨키우기 1967년 창당돼 1980년까지 지속된 신민당…박정희 정권 무너뜨리는 데 핵심적 역할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1967년 창당한 신민당은 1980년까지 지속되며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시사오늘 김유종 1955년 민주당 창당 이후, 민주당계 정당은 분열과 통합을 반복했습니다. 야권이 통합된 상태로 존재했던 건 6년에 불과했죠. 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등장으로 야권에선 ‘힘을 모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그 결과 등장한 정당이 바로 신민당입니다. 1967년 문을 연 신민당은 1980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강..

또 다시 분열한 야권과 신민당의 탄생 [한국정당사④]

또 다시 분열한 야권과 신민당의 탄생 [한국정당사④] 정진호 기자 승인 2023.06.21 17:45 댓글 0 기사공유하기 프린트 메일보내기 글씨키우기 윤보선 탈당으로 분열했던 야권…제6대 대선 앞두고 신민당으로 다시 통합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윤보선 탈당으로 분열했던 야권은 제6대 대선을 앞두고 신민당으로 다시 통합된다. ⓒ시사오늘 김유종 대한민국 야당사는 ‘분열과 통합의 역사’라고들 합니다. 대통령이라는 확실한 중심이 있는 여당과 달리, 야당은 본질적으로 구심력(求心力)이 약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민중당(民衆黨)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창당 직후부터 윤보선계와 박순천계가 반목(反目)했던 민중당은, 불과 1년도 안 돼 민중당과 신한당(新韓黨)으로 분리됩니다. 민중당 분당(分黨)..

박정희 등장과 민중당으로 하나 된 야권 [한국정당사③]

박정희 등장과 민중당으로 하나 된 야권 [한국정당사③] 정진호 기자 승인 2023.06.14 09:07 댓글 0 기사공유하기 프린트 메일보내기 글씨키우기 5·16 군사정변으로 기존 정당 해체…1963년 정치활동 재개 허용 후 야당 난립 한일 국교 정상화 계기로 야권 통합 목소리 커져…민정당·민주당, 민중당으로 통합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1963년 정치활동 재개 허용 이후, 야당이 난립하면서 박정희 정권은 안정적으로 다수 의석을 확보한다. ⓒ시사오늘 김유종 정국(政局)이 혼란스럽다는 건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물리력을 손에 쥔 쪽은 ‘딴생각’을 하기 마련이죠.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를 비롯한 육군 장교들은 무력..

자유당의 몰락과 민주당의 분열 [한국정당사②]

정진호 기자 승인 2023.06.07 18:05 댓글 0 기사공유하기 프린트 메일보내기 글씨키우기 4·19 혁명으로 자유당 몰락하고 민주당 정권 잡았지만…구파·신파 갈등에 민주당도 분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4·19 혁명으로 자유당이 몰락하고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지만, 내부 갈등으로 민주당도 분열의 길을 걷는다. ⓒ시사오늘 김유종 창당 이듬해인 1956년. 민주당은 제3대 대선을 앞두고 신익희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합니다. 이때 신익희가 내세운 구호가 그 유명한 ‘못살겠다 갈아보자’였죠. 그러나 건강이 좋지 않던 신익희는 선거 유세를 위해 전주로 가던 중 뇌일혈로 졸도했고,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이승만의 집권은 4년 더 연장됩니다. 1960년 제..

양당 정치의 시작…자유당과 민주당의 탄생 [한국정당사①]

양당 정치의 시작…자유당과 민주당의 탄생 [한국정당사①] 정진호 기자 승인 2023.05.30 20:55 댓글 1 기사공유하기 프린트 메일보내기 글씨키우기 이승만 재선 위해 만들어진 자유당…민주당, 이승만 사사오입 개헌에 반발해 창당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우리 정치권에선 종종 ‘뿌리 논쟁’이 일어납니다. 상대 진영의 모태(母胎)를 ‘친일 세력’, ‘종북 세력’ 등으로 규정해 부정적 이미지를 씌우고, 자신들이 정통성을 독점함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전략입니다. 불과 몇 달 전에도 여야 대표가 ‘친일 논란’에 대해 입씨름을 벌였던 것을 상기하면, 상대의 뿌리를 공격하는 책략이 꽤 효과적인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언쟁을 보고 있으면 허무할 때가 많습니다. 얽히고설킨 우리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