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차일피일 미루던 이발을 하려고 퇴근길에 발 닿는 대로, 처음 가
보는 이발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동안 주말을 이용하여 다니던 동네
미장원이나 목욕탕내 이발소는 시간이 잘 안 맞아 평일에는 못 가다가,
출입문에 모범업소라고 쓰여 있는 눈에 잘 안 띄는 골목 이발관을 찾게
되었다. 문을 빼꼼 열고 들어가니 손님은 없고 희미한 조명 아래, 빈 이
발의자에 기대어 있던 체구가 비쩍 마른 슈베르트 모습의 이발사가 날
반기더니 앉으란다.
드디어 이발 시작, 아~ 미스터 슈베르트는 지체장애가 있는 분이셨
다. 몸을 힘겹게 움직이며 내 머리를 가위질하는데 잔기침을 하면서 숨
쉴 때마다 고약한 냄새가 나서 참기 힘들었다. 좀 있으니 옆에 커튼 쳐
놓은 공간에서 후덕한 아줌마가 나타나서 한 마디 말도 없이 나를 단번
에 꽈당 눕히고는 얼굴에 무지하게 뜨거운 물수건을 올려놓고 잠시 후
칼을 들었다. 그 면도사 아줌마에게서는 양념 닭발과 콩나물국을 섞어
먹은 듯한 냄새가 진동했다. 커튼 뒤에서 두 분이 무지하게 많이 드신 모
양이었다.
나는 두 주먹에 힘을 주고 두 눈도 꼭 감은 채로 숨 쉬는 횟수를 줄여
가며, 냄새 맡기를 거부하고 있는데 음악이 흐른다.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였다.
밝은 조명과 깔끔하게 꾸며진 젊은 취향의 유니섹스 업소에서 어울릴듯
한 ‘아베 마리아’는 내가 이발 의자에 누워있던 그 시간, 천사의 인사
가 아니라 두려움을 더하였다.
“아~ 왜 하필 여기에 왔나.” 순간 떠오르는 세 가지 희망 사항, 아줌마
가 절대 트림을 하지 말고, 다른 손님이라도 빨리 들어왔으면 하는 것과
제발 실수로라도 면도칼이 내 얼굴이나 목에 상처를 내지 않기를 바라면
서 빨리 이발관을 나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급하게 요금을 내고 나오
면서 문밖에 있는 접시를 힐끗 바라보니 쪽쪽 발라먹은 닭발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내가 그런 공포 분위기의 이발관을 갔었다니 후회막급이었다. 집에 와
서 머리를 다시 감고 얼굴에 발라진 화장품도 깨끗이 씻어내고는 꾸역꾸
역 밥을 먹었다.
나는 그 슈베르트 이발사의 솜씨가 아주 좋으며 단골손님도 많고, 권
위있는 경진대회에서 입상한 경력도 있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 알게 되
었다. 그러나 내 첫 방문의 기억은 결코 아름답지 못하였기에 그날 이후
로, 그냥 편안한 마음이 드는 단골 미용실을 정해 놓고 잘 다니고 있다.
이런 경험이 있고부터는 내가 근무하는 치과에도 자극성이 강하거나
냄새나는 간식은 아예 반입을 금지하였다. 그나마 우리 직원들은 양치질
과 마스크 사용이 엄격하고 습관적이기에 다행이다.
슈베르트의 이발관을 다녀온 뒤로, 나 역시도 좋아하던 뼈 없는 닭발
안주를 한동안 찾지 않았다.
2012년 4월 10일
李丙鎬 散文集 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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