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무대
1985년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방영되는 TV 예능 프로그램 중에 KBS
의 ‘가요무대’가 있다. 매주 월요일 밤 10시에 김동건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되는데, 그 화면에 보이는 방청객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 나이 드신
분들이 주류를 이룬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나 역시 이 프로그램을
좋아했던 사람인데, 어느 날부터인가 애청의 기회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나와는 많이 다른 아내의 음악적 취향 때문에 리모컨의 주
도권을 양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는 여섯 살의 나이 차
이가 있는데 선호하는 음악적 취향은 30년 정도의 세대 차이가 있어 아
내는 가요무대를 보고 있는 나를 영 못마땅해하고 노인 취급한다. 자기
도 환갑이 지난 지가 언제인데 말이다.
나는 가요무대에 나오는 옛날 가수나 노래를 거의 다 아는데, 집사람
은 거의 다 모른다. 그리고 반대로 신나는 댄스와 함께 뭔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노랫말이 요란한, 아이돌이 나오는 프로그램으로 채널을 돌리고
흥겨워한다. 우리 집사람은 아이돌에 관해서는 그룹 이름은 물론, 노래
제목도 조예가 깊다.
집사람 보기에는 나를 돌아가신 장인어른과 비슷한 연령대 수준으로
혼동하는 것 같아 조금 서운하기도 하지만 누가 정상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그래도 ‘씨스타’나 ‘플라이 투 더 스카이’같은, 좀 오래된 그룹 정
도는 알고 있다. 아니 ‘소시’와 ‘브아걸’이 뭔지도 알며 윤아, 서현이 어찌
생겼는지도 나는 확실히 알고 있다. 요즈음 활동하는 걸 그룹 중에는 외
우기 쉬운 ‘걸스데이’ 외에는 생각나는 아이돌이 없지만, ‘씨스타’의 멤버
인 ‘효린’이라는 처자의 얼굴도 기억한다. 그리고 ‘플라이 투 더 스카이’
의 히트곡 ‘가슴 아파도’는 내 애창곡이라는 사실!
하지만, 고희를 바라보는 내 친구들은 ‘은방울 자매’, ‘펄 시스터즈’,
‘바니걸즈’ 정도만 알까 완전 깡통이다.
그래도 아내의 눈에는 ‘홍도야 우지마라’나 ‘대전발 영시 오십 분’을 젓
가락 장단 맞추어 불러 젖히는 이 남편이라는 작자가 골동품으로 보이는
모양인데, 나도 아직은 골동품이 아닙니다. 그리고 골동품이 얼마나 귀
한 건데 가벼이 보십니까? 라는 것이 솔직한 내심이다.
나는 가요무대를 좋아하는 것 외에도, 우리 나이에는 좀 어렵게 느끼
는 팝송도 많이 알고 도전 골든벨의 퀴즈도 잘 맞히고 게다가 수도쿠(数
独) 문제는 최상급도 잘 풀 수 있다. 컴퓨터? 주위에 나처럼 개인 블로그
운영하며 음악이나 동영상 편집할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할
정도의 수준은 된다.
가요무대는 내가 오랫동안 즐겨보던 프로그램인데 아내로부터 그거
본다고 노털 취급받으니 기분이 꽝이다.
그래도 집사람 일찍 주무시는 월요일 밤 10시경에는 별다른 일이 없으
면 가요무대를 본다.
나한테는 가요무대가 훨씬 정겹고 그리운 예능프로인데 뭐 어쩌라고?
*李丙鎬 散文集 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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