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複雜單純

동명이인(同名異人) 친구

marineset 2023. 6. 21. 06:32

동명이인(同名異人) 친구,

 

예향(藝鄕)의 고을, 아니 이제는 도농복합이 된 안성(安城)에 가면 동

명이인 벗이 한 명 있다. 단순히 이름만 같은 것 말고도 많은 사연을 가

진 내 친구이다.

나는 1967년에 고교 신입생이 되어 영등포역에서 용산역까지 기차를

타고 통학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영등포역 승강장에서 기차를 기다리

던 중 바로 옆에 다른 학교 교복을 입은 어깨가 넓어 보이는 학생이 서

있기에, 어느 학교 다니는 녀석인지 궁금하여 슬쩍 자리를 옮기는 척 하

며 근육맨의 위아래를 흩어 보았다. 그저 알만한 사립학교의 교모를 쓰

고 교복을 입은 이 친구의 명찰을 보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나하고 이름이 같은가?

이 친구도 동시에 손가락으로 내 명찰을 가리키며 놀라는 것이었다.

우리 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비록 다니는 학교는 달라도 같은

시간에 같은 역에서 통학하는 같은 학년의 동명이인이기에 우리는 그야

말로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은 서로 많이 다르다. 이 친구는 법무부장관 비서실

에서만 22 4개월을 포함, 오랜 공직자 생활을 하다가 퇴직하여 고향

인 안성시청 근처에 법무사 사무실을 내고 부인이 사무장을 하며 딸린

직원도 꽤 많은데,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잘 꾸려 나가는 것을 보니 능력

이 있다고 믿어진다.

이 친구는 공직생활 중에도 나름 고향인 안성에 인적, 물적 공을 들이

면서 본인의 카리스마 기질을 발휘하였고 퇴직 후를 구상하였던 것 같

. 나는 정치하는 사람과는 별로 친하고 싶지 않은데 이 친구는 퇴직하

자 바로 정치판 구정물에 발을 담그고 당시에는 인기도 없던 야당의 국

회의원 후보가 되어 총선에서 두 번 떨어졌다. 주위에서는 시의원이나

도의원 아니면 시장으로 먼저 출마해 볼 것을 권유하였지만 이 친구는

오직 중앙무대로의 직진만을 고집하였다.

친구의 또 다른 인생 역정을 살펴보면 초등학교부터 대학(대학원)까지

꾸준히 총동문회장을 맡아 봉사하였고 각계각층을 망라하여 셀 수 없는

인맥을 형성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자타가 인정하는 마당발이다. 그리고

그 마당발은 친구 자신보다는 대의를 위하여 뛰어다녔고 현재도 진행형

이다.

아무튼 세월은 잘 흘러간다. 그도 나도 이제 꼿꼿한 허리의 노인이 되

었다. 남들이야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우리의 열정(熱情)은 덜 식었고 새

로운 청춘(靑春)이 유혹하고 있다. 내 친구와는 안성과 오산, 평택에서

번갈아가며 자주 만나는데 그 역시 두주불사의 백발도인(白髮道人)을 과

시하며 두 사람 모두 酒님의 제자를 자처한다. 친구가 누구한테 사사 받

았는지는 몰라도 우리가 모르고 있는 음주 방법과 제조 기술을 가끔 선

보이기도 한다. 이 경우 함께 있던 사람들은 친구가 보여주는 멋진 행위

예술에 놀라서 모두 뒤로 넘어간다. 그와 함께 술 마시면 항상 즐거운데

양이 과한 것이 조금 문제이다.

친구는 오늘도 바쁘다. 나는 가능한 사람 많이 만나는 모임을 피하는

데 반하여 이 친구는 오늘도 내일도 사람 만나는게 즐거운지 싱글벙글

이다. 친구의 수첩에는 1년 내내 일정표가 꽉 짜여있다. 어쩌겠는가?

나야 할 사람도 많고 만나자고 하는 사람도 많은 친구의 인생을.

이 친구는 과거에 싸게 매입한 저수지 근처의 땅값이 껑충 뛰어서 먹

고 사는 데 지장없다고 좋아한다. 친구야! 그런 거 자랑하면 나 열 받는

. 내가 사는 아파트는 분양가보다도 시세가 많이 떨어져서 다른 곳으

로 이사도 못 가고 있다.

동명이인 내 친구는 공무원 연금 외에도 모 학교법인의 이사장으로 위

촉되어 활동비도 별도로 받는 모양인데 이왕 정치판에 미련을 버렸으니

이제는 자신을 위해서 투자하고, 친구가 아끼던 맑은 저수지 근처 땅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부인과 손잡고 둘레길을 산책하여 봄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李丙鎬 博士 散文集 _

 

 

반응형

'스토리 > 複雜單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주 이야기  (0) 2024.02.12
김주원 '오산창작예술촌' 촌장  (0) 2023.08.29
[이사람] 이병호 법무사  (1) 2023.06.21
한국진보연대  (2) 2023.06.14
미국 독립기념일과 한국 광복절  (0) 2023.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