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複雜單純

그 시절**日本그림자(4) 觀光地帶의 섹스汚染

marineset 2023. 5. 29. 01:43
요즈음 우리나라 관광객들도 동남아나 중국 등에 여행가면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
과거 70~80년대 일본인들의 행태와 별반 다를 것도 없어 보여...
36년전 신문기사를 'office lens'로 스크랩해 본다.


日本그림자(4) 觀光地帶의 섹스汚染
경향신문 | 1981,08,14 기사(기획/연재)
日本그림자 (4)
觀光地帶의 섹스汚染

光復36年 主體性 正立 위한 現場診斷 . 기생파티 現地妻 찾는 “깃발대열”
칼부림 사건.사회문제도
"北海道에 낚시 간다"--서울行觀光團속에
「韓國觀光= 性遊戱」等式우리도覺醒해야

日本이 악착같은 商魂으로 經濟的 高度成長을 계속할때 世界人들은 그들을 가리켜「이코노믹 애니멑」(經物濟動物이)라고 비꼬았다. 70년대초 그들이 안정된 생활속에서 세계 각국으로 깃발부대(단체관광단)를 내 보내게 되자 세계인들은 그들을 섹스애니멀이라고 불렀다. 원래 性道德에 관한 觀念이 우리와 많은 차이가 있는 曰本人들이지만 50-60명씩 떼지어 각국을 여행하며 밤의 享樂을 즐기자 이런 별명이 추가된 것이다.



H여헁사의 유모씨(40)는 "우리나라를 찾는 日本人 觀光客들은 남자끼리의 團體여행이 대부분이고-상당수의 旅行目的은 섹스를 즐기는데있다"고 서슴없이 단언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들이 日本 國內旅行을 하는 것보다 經費가 싸게 들기 때문메 더욱 인기라는것.
國際觀光公社의 統計에 따르면 지난 71년초부터 80년 말까지 韓國을 찾은 日本人 入國者 수는 무려 2백92만2백42명이나 되며 이중 관광을 목적으로 들어온 수는 약 60%에 달하는 1백75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실제 수는 이보다 훨씬 웃돌것이란 얘기다. 지난65년 韓日간의 國交가 正常化된 후 70년까지韓國人의 對日 敵對感情을 두려워하며 韓國메 오기를 꺼리던 그들은 71년부터는 깃발을 앞세운 大規模 觀光團을 組織, 本格的인 韓國관광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후 우리사회에는「관광기생」「관광요접」「기생파티」란 말이 유행되었고 심지어는「現地妻」란 말도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日本여행사가 募集한 관광객들의 日程은 대충 이렇다. 金浦空港에 到着, 國內旅行社 案內員에게 인계돼 버스에 타고 들어와 指定된 호텔에 도착, 각각 지정된 방을 배정 받고 여장을 푼 후 우선 버스에 올라 경복궁,덕수궁 등 시내명소를 대충 둘러본다.


「觀光食堂」에서 저녁식사를 마친후 苦待하던「觀光料亭」에서의「妓生파티」가 시작된다. 처음엔 쑥스러워 하던 日本관광객들은 술잔이 몇잔 오가며 취기가 오르면 체면을 팽개치고 파트너와「밤일」을 위한 交涉를 벌인다. 여기서 涉外가 되면 호텔과 방번호를 알려주고 호텔로 들아와 목욕을 하고 기다리면 通禁이 臨迫하여 노크 소리가 들리고 약속대로 여자가 들어와 관광목적(?)을 이루게 되는것이다.
S여행사 文모씨는"日本에서 관광객을 모집할때 내거는 名目이 계모임, 골프, 사냥 등이지만 그들의 관광목적은 90%가 섹스관광입니다"라며 "한때 日本여자들이 이것을 알고 韓國관광 反對시위까지 벌여였지만 北海道에 낚시하러 간다는 등 적당한 핑계를 대고 온다"고말했다.

日人관광객들이 몰고온 섹스의 물결은 우리 사회에 성 倫理문제를들 등장시켰다. 성개방이 일반화된 추세이긴 했지만 그것을 우리 사회에 加速化한 것은 日人관광단의 일부가 한몫을 담당했다는 비판이다.

지난 74년 8월 29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산10 남산 외인아파트 A동 11층 2호실에서 일어난 일본여인 살인 강도사건은 일본인의 무절제한 성도덕이 빚어낸 비극의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S합섬 經理이사로 한국에 왔던 宿本哲三(39)가 호스티스인 頓敬淑 여인(27)을 사귀어 동거해 오다가 부인 宿本洋子(38)가 건너오자 돈여인을 돌보지 않게 되었다. 돈여인은 이에 앙심을 품고 본부인을 찾아가 칼로 찔러 숨지게 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우리나라에 常住하는 일본인은 80년말 현재 3천39명(71년에는1전5백명)으로 이중 가족을 데리고온 사람은 2백40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日本인들이 어떻게 性문제를 해결하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지만 頓여인 사건이 어느 정도 의문을 풀어준다. 현지처의 수는 대략 1천명 내외로 추산되고 이들은 한달 평균 20만엔(약60만원)정도의 생활비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70년대 초반부터 日人관광객들이 몰려들자 여행사,호텔,관광요정이 급격히 늘어났고 지난75년 文世光 사건 직후와 12. 12 사태 이후 주춤했던 관광붐이 최근 다시 호경기를 누리고 있다. 현재 관광객을 끌어 들이는 관광알선여행사는 23개이고 호텔수 는 1백26개에 달하며 관광유흥업소(요정,극장,식당)는 30개에 달한다.

특히 관광요정의 경우 서울에만 삼청각,명월,고려원,풍림각,춘향각,오진암,다성,대하,청품,선운각,신라각 등 12개소에 달하는데 각 요정마다 2백-3백명의 여자들이 있어 日人관광객들를 상대하고 있다. 그러나 韓國를 자주 다녀가는 日本人들은 이 들보다 더은밑한(?)재미를 찾아 비밀요정을 찾는다고 한다.
이들은 日本에 돌아가「예쁘고-착하고 말-잘 듣는는」韓國여성에 대해 PR을 하며 同僚들 에게 연락할 방법를 알려쥐 한국에 올때 미리 國際電話를 걸어 마중 나오도록 하는 경우도있다. 지금은 공항 등메서「관광기생파티」가 나는 여성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자 여대생차림으로 마중 나오는 수가 많아 단속이 어렵다는게 공항당국자의 얘기다.

S각의 L양(21)은 "우리같은 처지에 있는 아가씨들이 서울에 약 5천명 정도 있을것 이라고 말하고 "대부분이 가정이 어려워 이곳에 나오고 있지만 정신까지 日本으로 타락하지는 않아요"라고 강조했다. 이들이 받는 돈은 약 3만엔 정도.
이중 반은 여행사,요정,호텔 등에 뜯기고 1만5천엔 정도를 손에 쥐게 되지만 충실히 일하면(? )2-3년안에 집 한 채 정도 살수있는 목돈을 마련하는 수도 있어 이들의 수는 줄지 않고 있다.

「韓國관광=기생파티」의 等式이 성립된 책임은 물론 그들의 요구도 있지만 국내 관광알선여행사들의 정신자세나 책임도 크다.
K여행사 0씨는"日本人들의 구미를 돋울만한 관광자원이 부족한 마당에 가릴 것이 있느냐"는반문이다. 일부 공항택시운전사들은 혼자오는 日人를 상대로「싸고 좋은 여자」를 소개해 주기도 하며 공항입국대합실에는 3-4명 정도의 관광객을 자가용으로 모시는「모구리여행사」(무허가알선얼자)도 많다는 얘기다. 우리는 여기서 분별력과 의식의 문제를 제기 받는다. 관광유치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을 양해하는 것처럼 오해 되는 무분별과 민족적 프라이드를 저당 잡히고 있는 현실에 반성이 있어야 한다.
개관 당시 품위를 내세워 투숙객들에게 여성동반(콜걸들 직업여성)을 금지하여였던 장충동 S호텔이나 중구의 L호텔들이 日本人 단체관광객들의 외면으로 객실 이용률이 30-40%로 떨어지자 최근 "직업여성들과 함께 투숙하여 도난 등 불미스런 사고가 생겨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묘한 규칙을 만들어 日人단체관광객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생각해볼 일이다.

[金世l煥기자]


그렇다면 작금의 우리나라는 어떨까?


[사설] 동남아 성매수 관광 1위 치욕스런 한국

입력 2013-01-30 18:52


우리나라가 동남아 성매수 관광객수 1위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 한 해 동안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필리핀 등 동남아를 방문해 현장조사한 뒤 내놓은 ‘동남아시아 아동 성매매 관광의 현황과 대책’ 연구보고서에서 드러난 내용이다. 동남아의 인터폴 관계자는 “한국 때문에 동남아 성매매가 매우 활발하고 탄탄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했고, 시민단체 관계자는 “한국인만 없어도 여기 성매매 인구가 크게 줄 것”이라고 했다니 치욕스럽기 짝이 없다.

요즘엔 동남아 성매매관광 정보를 공유하고 원정 동지를 모집하는 인터넷 카페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특히 동남아 성매매 여성의 15%를 차지하는 만 18세 미만 아동들의 성매매 시장에서 한국 남성들이 독보적이라고 하니 인면수심(人面獸心)과 다를 바 없다. 며칠 전에는 중국 공안이 베이징의 한국인 밀집거주지역 왕징에서 건물을 통째로 빌려 성매매까지 하는 ‘풀살롱’ 영업을 해온 한국 남자 2명을 성매매혐의로 체포했다.

경제력은 선진국 문턱에 가까워졌다고 하면서도 성문화에선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일본이 세계 경제를 선도했던 1980년대 전후 일본인들이 전 세계를 돌며 ‘기생관광’과 ‘현지처’로 ‘어글리 재팬’ 악명을 떨쳤던 전철을 똑같이 밟고 있다. ‘어글리 코리안’은 국격을 깎아내린다.

더 큰 문제는 해외 성매매관광을 하거나 국내에서 성을 매수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죄의식이 없다는 점이다. 2004년부터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성매매가 근절되기는커녕 주택가, 오피스텔까지 퍼졌다. 또 호텔이 공공연히 성매매장소를 제공하는가 하면 SNS나 인터넷을 통해 성매매 호객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성매매를 근절하려면 성을 사고 파는 것은 엄연한 범죄행위이며 야만스런 일이란 걸 알도록 성매매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을 통한 성매매 호객행위도 철저히 단속해 성매매 천국이라는 오명을 벗어야 한다.

 





[사설] 나라 망신 해외 성매매 뿌리 뽑아야


입력시간 | 2016.04.21 06:00 | 논설위원

나라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외국으로 나가서까지 성매매를 하는 추한 한국인들 얘기다. 한·미 합동단속반은 그제 미국 뉴욕 일대에서 성매매 업소를 운영해 온 한국인 성매매 업주와 여기에 고용된 여성 등 모두 48명을 붙잡았다고 밝혔다. 마사지 업소 등을 차려놓고 시간당 200달러(약 22만원)를 받고 불법 성매매를 해온 혐의다. 국격을 떨어뜨리고 나라 이미지를 해치는 해외원정 성매매를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 뿌리 뽑아야 한다.

해외 성매매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성매매 수출대국’이라는 오명까지 들을 정도로 심각하다. 지난달에도 일본 도쿄 유흥가 주변에서 성매매를 한 여성들과 알선책, 업주 등 47명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지난해 8월에는 마카오의 호텔 투숙객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한 일당 80명이 검거되기도 했다. 이처럼 일본과 미국을 포함해 호주, 대만, 동남아 등 우리 여성들이 성매매를 하러 떠나는 나라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외국에까지 나가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남성들의 낯 뜨거운 행태도 문제다. 해외 관광을 핑계로 성매매를 알선하는 ‘황제 관광’이 암암리에 활개를 친다고 한다. 지난해 8월 한국 남성 207명이 필리핀 원정 성매매에 나섰다가 무더기로 경찰에 꼬리를 붙잡힌 게 그런 경우다. 이들은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해외 성매매 카페에서 이 상품을 접했다고 한다. 미 국무부의 인신매매보고서 등 각종 인권보고서는 한국 남성을 동남아 성매매의 주요 고객으로 분류하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해외 성매매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성 상품화에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비뚤어진 인식이 문제다. 국내 풍토부터가 그렇기 때문이다. 가벼운 처벌도 한몫을 하고 있다. 해외 성매매로 적발돼도 현지에서 추방 정도에 그치거나 국내에 들어와서도 대부분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나기 마련이다.

솜방망이 처벌로는 해외 성매매를 근절하기 어렵다. 처벌을 한층 강화해 스스로 모멸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현지 경찰과의 공조를 강화하는 한편 음성적으로 성매매 관광객을 알선·모집하는 인터넷 카페들의 실태도 철저히 점검할 일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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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청각 2016/04/27 09:54 # 삭제 답글
  • 삼청각[ 三淸閣 ]
    1972년 서울 성북구 성북2동 330-115, 6천여평의 대지에 콘크리트 건물 7채로 설립된 삼청각은 70년대 남북회담 관계자 만찬, 여야 정치인 회동, 외국바이어 접대 등으로 애용된 고급 요정.한일회담, 첫 남북조절위회의와 만찬이 여기서 열렸으며 군사정권 시절에는 고관대작들이 이곳을 드나들어 밀실정치, 요정청치라는 말이 나돌았다. 70년대 수출드라이브가 한창일 때는 기업들의 외국 바이어 접대장소로 각광을 받았으나, 그 후 일본 관광객을 상대로 한「기생관광」의 본거지란 비난도 면치 못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방석문화'가 사라지고 '룸살롱 문화'로 접어들면서 쇠락기를 맞았다. 97년 한정식집 `예향'으로 간판이 바뀌며 영업을 계속해 왔으나 1998년 8월 중소건축업체인 화음건설이 300여억원을 들여 매입했다. 1999년 12월 30일 공식적으로 문을 닫은 삼청각은 2000년 서울시 문화시설로 지정되었으며 2001년 1월 서울시로 등기이전됐다.2001년 10월 29일 공연장과 한식당, 찻집, 객실 등의 용도로 쓰이는 6채의 한옥으로 구성된 전통문화공연장로 재개장하였으며, 운영은 세종문화회관측이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았다.
    출처
    박문각




    230만원어치 먹고 33만원 낸 세종문화회관 임원들


    [중앙일보] 입력 2016.02.18 06:18 수정 2016.02.18 16:07


    채윤경 기자 사진
    채윤경 기자 ....


    서울 성북구의 고급 한정식 업소 삼청각에서 세종문화회관 임원이 지인 10여명과 230만원어치 식사를 하고 33만원만 낸 것으로 드러났다.

    삼청각은 인근 경치가 빼어나 1970~1980년대에는 정치인들이 많이 찾는 요정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현재는 전통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 서울시가 소유하고 세종문화회관이 운영을 맡고 있다.


    설 연휴였던 지난 9일 세종문화회관 임원 A씨가 지인 10여명과 함께 삼청각에서 1인당 20만9000원짜리 고급 코스요리를 먹고 현금 33만6000원을 냈다고 SBS가 17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A씨 일행이 먹은 음식은 한우 육회와 전복, 숙성 회에 바닷가재까지 포함된 삼청각 최고급 요리다. 삼청각 직원은 “1인당 20만9000원짜리 코스요리”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A씨 일행은 230만원어치의 식사를 한 후 33만원만 계산했다. 이들은 이후 삼청각 내 찻집으로 옮겨 차를 마셨는데 찻값은 아예 계산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A씨는 지난해 8월에도 삼청각에서 서울시 공무원 3명과 저녁을 먹었지만 밥값을 한 푼도 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직원은 “당시 A씨 일행이 최고급 음식과 술 20여병을 포함해 150만원어치의 식사를 했지만 식사비를 치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청각 직원들은 항의하지 못했다. 대부분 계약직 신분인 삼청각 직원들은 문제 제기를 할 경우 운영을 맡은 세종문화회관 임원들에게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종문화회관 임원들의 ‘갑질’은 이번 뿐만이 아니었다. 앞서 삼청각에서 무전취식을 한 다른 임원은 문제가 돼 팀원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출처: 중앙일보] 230만원어치 먹고 33만원 낸 세종문화회관 임원들


    삼청각, 산 맑고 물 맑은데 사람의 마음은 탁했다

    최종수정 2016.02.19 11:27 기사입력 2016.02.19 11:15



    '갑질식사' 논란, 삼청각 직접 가보니...'현대사'와 영욕 함께한 역사적 현장...'방만 경영 일소·시민 문 턱 낮추는 계기 삼아야"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18일 오후 5시 30분쯤 도착한 서울 성북구 북악산 자락의 삼청각(三淸閣)은 춥고 스산했다. 추운 날씨와 차가운 숲속 바람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손님이 거의 없었다. 주차장도 텅 비어 있었다. 6개 전각 중 메인 역할을 하는 일화당도 찻집에만 손님이 5~6명 앉아 있었을 뿐 한식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진 촬영ㆍ연회 장소로 대여되는 다른 전각들은 모두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전날 불거진 세종문화회관 간부의 갑질 식사 파문으로 손님이 줄어든 걸까? 현장에서 만난 삼청각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우리도 사실 뉴스를 보고 알았다. 대부분은 모르는 일"이라고 입을 굳게 닫았다. 예약 취소 문의가 왔느냐는 질문에는 영업비밀을 이유로 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잠시 돌아 본 삼청각은 과연 1970~80년대 우리나라 3대 요정(料亭)의 하나로 꼽혔던 명성 그대로였다. 소나무 숲속에 자리잡은 전각 6채는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고고히 뽐냈다. 전망과 주변의 소나무 숲도 일품이었다. 삼청각의 이름 그대로 산이 맑고(山淸), 물이 맑아(水淸) 사람의 마음도 맑아진다(人淸)는 자랑이 허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삼청각은 단순히 요정집만은 아니다. 현대사와 영욕을 같이 했다. 삼청각은 1972년 한모씨 이름으로 건축된 후 1975년까지 정부가 남북적십자회담 만찬 장소로 사용하는 등 '국빈접대 회담장'으로 공식 사용했다. 1972년 당시 합의된 7.4 남북 공동 성명은 분단 후 처음으로 남북 정부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 3대 원칙을 합의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때 남측 협상 대표였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합의를 마친 후 삼청각에서 북한 박성철 부수상과 축배를 들었다.

    삼청각은 이후 1975년부터 '유흥음식점'으로 등록해 요정으로 운영되면서 청운각ㆍ대원각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요정 중의 하나로 이름을 날렸다. 정관계 실력자들이 기생파티를 즐기면서 로비ㆍ접대를 받고 밀실 정치를 꾸미는 요정정치의 산실이었다.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리던 중앙정보부의 위세를 등에 업고 승승장구했다. 개업식 파티에 중정요원 50여명과 인기 연예인들이 대거 동원돼 화제가 될 정도였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룸살롱' 문화가 번성하기 시작하자 기세를 잃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한식당으로 변신을 시도했지만 결국 1999년 12월 문을 닫았다. 이때 민간건설사가 인수해 고급 빌라를 지으려고 했지만 2000년 서울시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무산됐다.


    이후 서울시가 삼청각을 인수해 2001년 리모델링을 거쳐 외국인ㆍ일반 시민을 위한 전통 문화ㆍ컨벤션 시설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는 한옥의 아름다움과 전통 문화를 소개하면서 한식을 즐기고 예식을 치룰 수 있는 국제적 관광명소로 육성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방문객과 수익이 줄어들면서 고전 중이다. 2013년 2억7000만원, 2014년 6000만원, 지난해 2억7000만원 등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방문객도 2013년 14만5304명, 2014년 11만222명으로 줄다가 지난해 13만명을 겨우 넘겼다.

    일각에선 기생요정문화의 상징인 삼청각에서 외국인을 위한 공연을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기에 최근 세종문화회관 간부의 '갑질 식사' 파동까지 겹치면서 삼청각의 현재와 미래를 둘러 싼 논란도 일고 있다.

    전상봉 서울시민연대 대표는 "이제 더 이상 요정이 아닌 줄 알았지만 여전히 갑질이 횡행하는 요정인 것으로 확인됐다"며 "삼청각 뿐만 아니라 비슷한 곳들의 방만 경영이나 비리를 일소하고 시민들이 좀더 쉽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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