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특전사의 8박9일 천리행군
『우리는 검은 베레를 썼기 때문에
천리를 걷는다. 이건 우리의 특권이다』
趙東眞 月刊朝鮮 기자
千里行軍(천리행군)은 全軍(전군)을 통틀어 특전사만이 실시하고 있는 행군이다. 1972년 1월 최초 시행됐다. 8박9일에 걸쳐 400km를 야간에 행군한다.
비행기를 통해 敵 후방에 투하된 특전대원들이 임무를 완수한 후 적진에서 아무런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탈출하는 훈련을 실전과 같이 하는 것이 천리행군이다. 천리행군은 계급의 高下(고하)가 없다. 대대 단위로 시행되는 행군에 중령인 대대장부터 일반사병인 이등병까지 함께 걷는다.
특전사는 야외로 나가 한 달간 각종 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기까지 400km를 걷는다. 이게 천리행군이다.
기자는 행군 기간 중 마지막 3박4일을 동행 취재했다.
이화령 頂上에 쓰러지다
힘들다! 정말 힘들다! 머릿속에는 이 생각 외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직접 20kg의 軍裝(군장)을 등에 지고 5km를 걸어 梨化嶺(이화령)에 오른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힘들다」뿐이었다.
이제껏 느껴본 20kg의 무게와는 전혀 달랐다. 군장에 눌려 90도로 굽은 허리는 지면과 수평을 이루고 있고 온몸은 사우나에 들어온 것같이 땀으로 젖은 상태다. 5km가 50km처럼 느껴졌다.
지난 6월29일, 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의 접경인 이화령 중턱에 이르렀다.
행군이 시작된 지 네 시간이 지났다. 대원들 대부분의 모습이 출발 때와 전혀 다르지 않다. 대원들 표현으로 「슬슬 발동이 걸리는 시간」이다.
頂上을 5km 앞두고 대원들과 똑같은 무게의 군장을 등에 짊어졌다. 행군에 합류할 때 지휘관들이 『군장을 지고 가다 趙기자가 몸을 다치면 행군에 지장을 초래한다』며 군장지는 것을 만류했다. 그래서 처음엔 등산용 배낭을 멨다. 하지만 「5km 정도야」 하는 생각에 군장을 짊어졌다. 순간 다리가 휘청했다. 이 무게를 아무렇지 않게 메고 가는 병사들이 놀라울 뿐이다.
1.5km쯤 지난 지점부터 점점 행군 행렬에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한 발짝 떼어 놓을 때마다 대원들은 두 발짝 세 발짝을 앞서간다. 행렬을 앞에서 이끌던 12중대 중대장 鄭大將(정대장ㆍ28) 대위가 다가왔다.
鄭중대장의 응원과 부축을 받으며 대원들이 이미 통과한 길을 마지막으로 통과했다. 예정 시간을 넘겨 겨우 頂上에 도달했다. 대원들이 군장을 내려 주자 몸은 그대로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큰 대(大)자로 드러누워 눈을 감아 버렸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몸은 피곤하고 지쳐 있다.
副중대장인 崔埈碩(최준석) 중위가 내 얼굴에 찬물을 부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비로소 이화령 頂上이다. 황영조가 몬주익 언덕을 넘어 결승점에 들어간 것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548m 梨化嶺 정상에 선 벅찬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검은 베레를 쓴 이들이 왜 1000리를 걷는지 이해하는 순간이었다.
특전사 장병들의 자부심
6월29일 수요일 오후 3시경 충청북도 증평군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한 시간을 조금 넘게 차로 이동하여 오후 4시10분쯤 5일째 행군을 마친 특전사 흑표부대 ○○대대가 집결하고 있는 주둔지에 도착했다.
○○대대는 충북 괴산군의 허름한 폐교에 주둔하고 있었다. 운동장은 폭우로 인해 진창이었다. 특전사 대원들은 교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널브러진 개인 군장과 뒤섞인 채 자고 있는 대원들을 볼 수 있었다.
수십 명이 뒤엉켜 자고 있는 좁은 교실에서 땀 냄새와 오래된 나무 바닥의 썩은 냄새가 뒤섞여 있였지만 특전사 대원들은 잠에 취해 있었다.
지휘통제실에서 흑표부대 ○○대대 裵孝慶(배효경·41·중령) 대대장과 작전참모들을 만났다. 裵중령은 특전사 대원들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다.
『특전사는 모두가 자원입대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자부심도 강하다. 군대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뛰어난 엘리트 군인이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21~22세로 어린 나이에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을 한 사람들이다. 의무 복무 기한은 4년이다. 2년을 마치면 제대하는 일반 보병과는 군대에 대한 의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특전사 지원 경쟁률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네다섯 번 떨어지고 여섯 번째 도전해 특전대원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모두 4년 후 특전사에 남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 중 장기 지원자도 4년간의 평가를 거쳐 다시 걸러진다. 이렇게 특전사에 남게 되는 요원들은 정예 중의 정예이다. 그래서 이들은 강해질 수밖에 없다. 대우도 최고이다. 이곳은 강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 생각하면 된다』
대대장과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주둔지를 둘러보았다. 주둔지 뒤편으로 하천이 흐르고 있다. 새벽에 내린 비로 범람이 걱정될 정도로 수위는 높이 올라와 있었다.
행군 준비로 바쁜 대원들
오후 5시가 되자 모든 대원들이 기상했다. 기상과 동시에 식사 시간이다. 행군 시작까지는 두 시간이 남았다. 이 시간 안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한다. 식사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땀띠와 물집을 예방하기 위해 파우더를 바르는 대원, 특전사의 생명이라고 말하는 수저를 보물같이 챙기는 대원, 물집으로 헐어 버린 발을 붕대와 반창고로 치료하는 대원들… 다들 분주했다.
오후 6시15분, 대대장을 중심으로 각 지역대장과 중대장이 모여 행군에 대한 사전 브리핑을 했다. 지난 6월7일부터 전술훈련을 실시해 왔고, 6월24일부터 250km를 걸어왔다. 남은 행군에 있을 수 있는 사고예방과, 각 행군지점에 대한 첨병 정찰 내용 소개, 중간 휴식지, 전투근무 지원 등에 관한 내용 숙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20여 분간의 브리핑이 끝나자 운동장에 대원들이 모였다. 오후 7시가 되자 선발 지역대를 선두로 행군이 시작됐다.
대원들은 양 발이 모두 물집이 잡혀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걸음을 옮긴다. 30분쯤 지나면 발의 감각이 없어지고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행군이 이어진다.
오늘 최대 고비는 이화령 등반이다. 대원들은 오르는 것보다 내리막길을 더 걱정한다. 군장은 20kg이다. 하지만 땀으로 젖고 비를 맞으면 체감 무게는 두 배로 늘어난다. 이런 무게가 내리막길에 대원들의 무릎과 허리를 짓누른다. 물집으로 헤진 발바닥의 고통보다 끊어질 것 같은 허리 통증과 서 있기도 어렵게 만드는 무릎의 고통은 이들에게 고개를 넘는 최대의 적이다.
이화령 중턱, 이미 어둠이 내려 플래시를 켜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밤부터 새벽에 걸쳐 5~20mm의 비가 내릴 것」이라는 연락이 지휘통제소에서 내려왔다. 대대장부터 일반 사병까지 비를 만나기 전 빨리 이화령을 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밤안개는 전방 15m 앞을 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대원들은 각 중대 중대장의 경광등과 앞 대원의 발만 보고 걷는다. 안개는 땀과 섞여 온몸을 더 축축하게 만든다. 아무리 걸어도 마르지 않는 습기로 인해 더 피곤해진다. 이제 군장은 20kg이 아닌 그 두 배의 무게로 느껴진다. 옆에 있던 鄭중대장이 짧게 한마디 한다.
『숟가락도 버리고 싶다』
『이럴 때 우린 생명줄이자 최대 무기인 숟가락도 버리고 싶습니다, 자! 10분 후면 휴식이다. 崔하사 한 곡 뽑아라』
곧바로 崔하사의 노래가 이어진다. 행군 속도를 늦추지 않기 위해 첨병과 선발대는 뛰듯이 앞으로 나간다. 뒤를 따르는 대원들은 더욱 힘들어진다.
이미 250km를 걸어온 대원들은 모두 환자나 다름없다. 중간 휴식시간이 되면 모두 군장을 내려 놓고 전투화를 벗어 땀으로 젖은 발을 말린다. 그래야 물집이 덜 잡힌다고 했다. 이미 물집이 잡혀 바늘로 실을 꽂아 놓은 발가락과 발바닥을 수건으로 정성들여 닦아 내고 파우더와 붕대로 발을 감싼다.
바닥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순간 10분의 휴식시간은 지나가 버렸다. 다시 행군이다. 첨병과 선발대는 예정된 시간을 맞추기 위해 무서운 속도로 頂上을 향해 간다. 뒤로 처진 지역대는 선발대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걷는다.
행군을 다시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나 이화령 頂上에 올랐다. 頂上에서 주변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548m 고지를 오르며 돌아보지 못한 주변을 잠시나마 볼 수 있었다. 앞으로 내려갈 길이 걱정이지만, 頂上에 선 순간만큼은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것 같은 환희를 누릴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사발면
산은 오르면 내려와야 한다. 물집 잡힌 발은 내리막길이 되면 살과 발바닥이 밀려 더욱 고통스러워진다. 물기가 가득한 군장은 더 큰 무게로 허리와 무릎을 짓누른다.
열기가 식어 버린 발바닥은 다시 발동이 걸릴 때까지 엉거주춤한 걸음을 걷게 한다. 내려가는 길은 더 길게 느껴진다. 두 시간을 걸어 이화령을 내려왔다. 도로가 보이고, 마을이 보이고, 불빛이 보인다.
이화령 터널 영업소를 지나자 이화령 휴게소가 눈에 들어온다. 모두들 달려간다. 이 정도면 1000리 행군에서 최고의 시설이고 궁전 같은 공간이다. 화장실도 있고 수도도 있고, 쉴 수 있는 의자도 있다.
10분 후 다시 출발이다. 하지만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 조금만 가면 夜食(야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시간을 더 걸어 새벽 2시30분경 야식장소에 도착했다. 시골 면사무소 앞 도로변.
야식은 사발면, 사이다, 카스텔라빵 한 개, 생오이 한 개. 더 먹고 싶으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천국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맛있는 사발면은 먹어 본 적이 없다. 사발면을 국물까지 마시고 생오이를 입에 물자 시원했다.
꿀 맛 같은 휴식을 뒤로 하고 다시 행군을 시작한다. 지금부터는 잠과의 전쟁이다. 체력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정신력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이 정신력도 무색하게 하는 것이 졸음이다.
새벽 3~4시는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위험한 시간이다. 이따금 행군대열을 이탈해 쓰러지는 대원들이 눈에 띈다. 한 명이 쓰러지면 뒤따르는 대원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진다.
잠을 쫓기 위한 대원들의 노력은 필사적이다. 이때부터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군가·대중가요·랩…. 부르는 스타일이 틀리다. 12중대 최운규 하사는 혼자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린다. 중대장인 鄭대위는 멋들어진 랩을 한다.
「인간 가라오케」 황구철 하사의 노래는 집결지에 거의 도착해서 끝이 날 정도로 12중대 全 대원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god」, 「심수봉」, 「DJ DOC」, 「윤도현」… 레퍼토리가 다양하다.
「인간 가라오케」황구철 하사
「지나간 여름 우, 바닷가에서 만난 그녀 허리까지 내려오는 까만 생머리 이것저것 잴 것없이 난 그냥 푹 빠져 버렸어」
「하염없이 내리던 하얀 눈에 가려져 이젠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네 뒷 모습」
「이별은 만남보다 참 쉬운 건가 봐 차갑기만 한 사람 내 맘 다 가져간 걸 왜 알지 못하나 보고 싶은 그 사람」
「언제나 찾아오는 부두의 이별이 아쉬워 두 손을 꼭 잡았나 눈앞에 바다를 핑계로 헤어지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黃하사의 노래는 끝이 없다. 최신유행가에서부터 귀에 감기는 트로트까지 두 시간 여를 불러 젖힌다. 덕분에 12중대는 가장 어려운 시간을 넘겼다. 새벽 5시쯤 중간 집결지인 경북 문경시 가은읍으로 들어왔다. 어스름하게 날이 밝아 오지만 여전히 어둡다.
하천을 따라 물안개가 피어나고 그 위 다리를 지나는 순간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다. 기상예보에 나온 비가 내리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가은으로 들어와 얕은 산자락으로 들어갔다. 숙영 공간이 부족하여 부대를 1진과 2진으로 나누었다. 2진은 산속으로 들어가 계곡 옆에 자리를 잡았다. 텐트 칠 공간이 부족해 일부는 텐트를 치고 일부는 산속 정자 위와 그 부근에 개인용 깔판을 펴고 잠자리를 만든다.
행군으로 땀에 절은 대원들은 차가운 계곡물로 뛰어든다. 산으로 들어간 2진은 계곡의 상류를 차지하고 깨끗한 물에 씻을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오전 7시,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대원들을 그대로 자리에 누워 버린다. 길기만 했던 밤샘 행군 일정이 마감됐다.
6월30일, 평소보다 빠른 오후 4시쯤 대부분의 대원들이 일어났다. 韓方(한방) 군의관 金鍾國(김종국) 대위가 숙영지로 찾아와 진료를 한다. 정상적인 대원이 없다. 지금까지 아픔을 참고 걸어오던 이상용 하사가 발바닥에 염증의 일종인 「봉와직염」으로 후송이 결정되었다. 李하사는 끝까지 가겠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후송하여 간단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군의관의 말에 결국 앰뷸런스에 올랐다.
많은 대원들이 무릎과 발목에 테이핑을 하고 행군을 준비한다. 대대장은 접질린 발목에 침을 맞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오후 6시15분 대대장 주관으로 지역대장과 중대장들에게 브리핑이 이어졌다.
이 날은 원래 정비 및 휴식을 취하는 날이었다. 그러나 「6월30일 밤부터 7월2일까지 130mm의 폭우가 예상된다」는 기상예보가 나왔다. 여단본부와 대대장은 논의 끝에 오늘 행군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기상예보대로라면 험난한 일정이 될 것이다.
오늘은 12중대가 선두에 섰다. 특전대원들은 지역대별, 각 중대별로 앞으로 서로 나서려 한다. 대원들 말로 선두에 서면 일단 앞으로 쭉 치고 나간다. 그러면 후미의 대원들은 따라가기에 숨이 차다. 하지만 선두 대원들은 아랑곳없이 뽑아댄다. 후미는 거의 구보에 가까워진다.
행군 한 시간을 조금 넘겨 첫 휴식을 가졌다. 논과 밭고랑에서 앉아 쉬었다. 꿀 같은 휴식이지만 배추밭에서 뽑다 만 배추가 썩어 역한 냄새를 풍긴다. 숨쉬기도 어렵지만 대원들은 전투화를 벗고 발을 말리기에 여념이 없다.
오늘 행군의 첫 번째 고비인 경북 문경시 농암면 쌍용터널은 길이 400m가 조금 넘는 경사도 10도인 오르막길이었다.
터널 안의 공기는 밖의 산과 계곡의 공기와는 달리 탁했다. 가파른 경사에 좌측으로 굽은 터널內 도로는 높은 습도와 함께 행군의 장애물이었다.
선발대에 선 9지역대장 趙洪寅(조홍인ㆍ36) 소령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 대원들을 재촉한다. 거의 구보의 속도로 대원들이 터널을 통과한다. 터널을 빠져나온 대원들은 함성을 지른다. 오늘 첫 고비를 이렇게 넘겼다.
폭우
어두운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지휘통제소와 기상대에서는 「50mm 이상의 폭우가 밤 사이 내릴 것」이라고 예보했다. 조금씩 내리는 비가 지휘관들을 불안하게 한다. 모두들 기상예보가 빗나가기를 기도한다. 중간 휴식지를 물색한 첨병과 대대장은 곧 도착할 대원들이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모든 비닐을 동원해 간이천막을 만들었다.
다행히 비는 10여 분을 내리고 멈추었다. 비가 멈춘 후 엄청난 바람이 분다. 산이라 바람의 기세는 더욱 거세다. 50m 전방에서 선발대의 경광등이 보이자 대대장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행군 中 조금 긴 휴식이 주어지면 대원들 중 상당수가 앰뷸런스를 찾는다. 한 번의 휴식 때 평균 30여 명이 찾는다. 그중 두세 명은 심각한 상태다.
대원들은 발의 물집과 소화불량, 구토, 어지럼증을 호소한다. 발은 이미 두 겹, 세 겹으로 물집이 잡혀 있다. 그래도 대원들은 소독을 마치고 진통제를 얻어 그냥 자신의 중대로 사라진다. 군의관은 행군을 만류한다.
『행군은 이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 행군을 원하면 군장 없이 걷거나 중간 중간 앰뷸런스를 타라』
하지만 대원들에게 군장은 자존심의 상징이다. 자신의 군장이 가볍다는 소리가 들리면 돌이라도 집어 넣을 사람들이 특전대원들이다. 결국 대부분의 실랑이는 군의관이 지는 싸움이 된다. 어쩔 수 없이 진통제만을 손에 쥐어 줘 중대로 돌려보낸다.
전민규 하사가 찾아왔다. 그의 발은 심각해 보였다. 그의 발등에는 이미 밤톨만 한 혹이 튀어나와 있었다. 전하사는 1000리 행군 전부터 이런 상황이었다. 전술훈련 때 다친 뒤 통증을 지금까지 참고 있었다.
군의관은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골절이 의심되지만 현재 이곳에서는 진통제 이외 아무것도 처리해 줄 수 있는 상황이 못 된다. 골절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 만져도 통증을 못 느낀다. 심각하다. 더 걷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군의관이 전하사의 행군을 만류한다. 물론 전하사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군의관이 지역대장과 중대장을 찾아 전하사의 상태를 전한다. 지역대장과 중대장과의 면담을 통해 전하사는 여단 의무대로 후송됐다.
군장도 안 메고 홀로 낙오하다
오늘은 밤티재를 넘어야 한다. 전날 넘은 이화령보다는 낮지만 가파른 언덕이다. 頂上 부근은 경사가 30도에 육박한다.
밤티재는 세 번의 경사를 넘어야 한다. 첫 번째 경사는 그리 가파르지 않다. 모두들 가볍게 앞으로 나간다. 두 번째 경사는 조금 더 가파르다. 어제 넘은 이화령 정도의 경사도이다. 조금씩 지쳐 간다. 두 번째 경사는 그리 길지 않다. 이 경사를 지나자 「이제 평지다」라고 생각이 될 정도로 긴 평평한 도로가 나온다. 마지막 경사는 「과연 여기를 오를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을 던지게 할 정도로 가파르다.
선두에 선 12중대는 앞으로 나간다. 후미로 갈수록 『후! 헉!』 하는 얕은 신음소리들이 들려온다. 군장도 안멨지만 기자는 점점 뒤처진다. 오르다 쉬기를 반복한다. 어느새 가장 후미에 서있던 7지역대가 기자를 따라 잡았다. 頂上 부근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온 길을 바라보니, 과연 내가 오른 길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가파른 경사였다.
밤티재는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길다. 全 대원들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기자 혼자 밤티재를 내려간다. 내려가는 도 중 조금씩 어둠이 걷히고 동이 터온다.
산속에서 맞이하는 새벽공기가 상쾌하다. 오늘은 전날과 달리 안개도 없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온다.
샤워보다는 취침
1시간30분쯤을 내려가 대원들과 합류했다. 높지 않은 고개였지만 체력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대원들과 합류하자마자 의지와는 달리 땅바닥에 길게 쓰러졌다. 「육군병장 출신이 맨 몸 행군도 못해 망신당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지만, 이미 몸이 내몸이 아니었다. 마지막 남은 6km는 통제차량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이 날의 마지막 집결지는 경북 문경 산 속 버려진 공사 터였다. 곳곳에 웅덩이가 파헤쳐져 있고 버려진 가건물이 있다. 행운이다. 가건물은 대원들이 비를 피할 수 있는 장소이다. 텐트를 치는 것보다 시간과 체력을 벌 수 있다.
대원들은 아침식사를 하자마자 깔판을 펴고 잠을 청했다.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기자는 좁은 지프차 안에서 잠을 청했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지프차 안은 사우나와 같다. 에어컨도 없다. 눈을 감은 얼굴에 앉은 파리가 간질인다. 귓가에 윙윙거리는 파리 소리 때문에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7월1일 오전 10시쯤, 모두들 자고 있는데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다. 어제 밤과 오늘 새벽 예보된 폭우가 지금 내리고 있는 것 같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어 몇몇 대원들이 깨어났다. 앰뷸런스 주변으로 대원들이 찾아온다. 군의관과 의무병이 바빠지는 시간이다.
金相元(김상원) 하사의 발은 심각한 상태다. 발 전체가 물집이다. 바늘로 찔러 실로 꿰어 놓는 임시방편은 이미 소용없는 지경에 다다랐다. 오른쪽 발바닥은 이미 살갗이 벗겨져 붉은 속살이 드러났다. 이곳에서는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도 金하사의 행군 의지는 단호하다.
대대장인 裵중령이 상황을 파악하고 金하사를 설득한다. 일단 군장 없이 행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오후 2시에는 어젯밤 발등 골절이 의심됐던 전하사와 발톱이 빠져 버린 박대민 하사가 여단 본부로 후송됐다.
숙영지 입구 쪽에 간이로 만든 샤워 시설에서 몇몇 병사가 샤워를 준비한다. 냇가나 하천을 제외하고 샤워 시설을 이용하는 것은 처음이다. 최소 5명 이상이 모여야 물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대원들은 씻는 것보다 자는 것이 좋다.
저녁 식사를 마친 오후 5시 30분, 모든 대원들이 출발준비를 마쳤다. 출발 직전 여단장이 격려차 들렀다. 이날의 행군 브리핑은 여단장이 직접 챙긴다.
『플래시 켜!』
오후 7시, 마지막 남은 60km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오늘도 역시 100mm가 넘는 폭우가 예보되었다.
5km를 지나 예정에 없던 산악행군이 시작되었다. 주변에 사슴농장을 발견, 민간에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갈 길을 찾다 보니 산을 넘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도상엔 산의 이름도 없고 길도 없다. 첨병과 선발대가 길을 만들면서 산을 오른다. 첨병이 만들어 놓은 길은 풀을 꺾어낸 길이다. 땅바닥은 낮에 내린 비로 인해 물이 고여 있고 풀과 물, 진흙이 뒤섞여 마치 빙판을 걷듯이 미끄러운 바닥이 되어있다. 군장의 무게와 내리막길에서의 중력은 대원들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선발대에서 시작된 『플래시 켜!』라는 복창이 쉴 새 없이 뒤쪽으로 전해진다. 대원들의 전투화는 진흙과 물을 먹어 두 배의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두 시간에 걸쳐 산을 내려와 밤 12시쯤 휴식 명령이 떨어진다. 모두 그 자리에 쓰러지듯 앉아 버린다. 副중대장인 崔중위와 최운규 하사는 『이 정도는 산도 아니다. 전술훈련 때는 40kg 군장에 암벽도 타는데 이건 구보로 달려갈 수도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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