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역사속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뤄낸 통일민주당 [한국정당사⑨]

marineset 2023. 8. 12. 05:44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3.08.1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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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은 YS와 DJ, 통일민주당 창당 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성취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YS와 DJ가 힘을 모아 만든 통일민주당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시사오늘 정세연

YS(김영삼 전 대통령)계와 DJ(김대중 전 대통령)계가 모두 탈당을 선언하면서, 신한민주당은 사실상 붕괴 수순을 밟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두 사람은 새로운 정당 창당에 나섰는데요. 그게 바로 통일민주당이었습니다.

민주당 창당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4·13 호헌조치로 민주화 열망에 찬물을 끼얹은 전두환 정권이 민주당 창당마저 방해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전두환 정권은 폭력배들을 동원, 민주당의 지구당 창당대회가 열리는 장소마다 나타나 대회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폭행은 물론, 방화까지 서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용팔이 사건’입니다.

민주당 지구당 창당기간 중에 우리를 어렵게 만든 것은 전두환의 지시를 받은 깡패들의 테러와 방해공작이었다. (중략) 나중에 용팔이라는 별명의 김용남이가 지휘한 것으로 밝혀진 이들 폭력배들은, 창당대회가 열리는 장소마다 따라다니면서 4월 말까지 창당대회를 개최한 57개 지구당 중 20여 군데를 습격, 대회장을 수라장으로 만들었다. 폭력배들은 복면으로 위장한 채 난동을 부리기도 했으며, 유혈사태는 물론 방화사건도 속출했다. 나의 오랜 비서인 박종웅을 비롯해 수많은 당원들이 집단폭행을 당해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김영삼 회고록

중앙 당사를 구하는 과정에서도 건물주들이 임대를 거부하게끔 하고, 창당 당일까지도 경찰들이 시민들의 대회장 출입을 막는 등 전두환 정권의 탄압은 계속됐습니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민주화 투쟁을 해온 YS·DJ와 그 측근들은 이 정도 정치공작으로 막을 수 있는 인물들이 아니었습니다. 전두환 정권의 숱한 훼방에도, YS·DJ는 1987년 5월 1일 ‘통일민주당’을 출범시킵니다.

이후 민주당은 강한 대여 투쟁을 통해 6·29 선언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면서 직선제 개헌의 필요성을 알렸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출범하자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면서 ‘6월 항쟁’을 이끌어냈습니다. 민주당의 뒷받침과 시민들의 참여가 6월 항쟁으로 연결됐고, 이것이 전두환 정권의 ‘항복’으로 이어진 겁니다.

하지만 6·29 선언은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됐습니다. 기본권 강화 등 여러 선언적 조항을 제외하고 보면, 6·29 선언의 핵심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 다른 하나는 DJ 등 시국사범에 대한 사면·복권이었습니다. 이 안에는 전두환 정권의 계략이 숨어 있었는데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더라도 DJ를 사면·복권하면 YS와 DJ 사이에는 대통령 후보 자리를 둔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 경우 야권이 분열됨으로써 전두환의 ‘후계자’격인 노태우가 당선될 수 있으리라 봤던 겁니다.

실제로 YS와 DJ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자리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DJ는 YS가 서독을 방문해 ‘김대중 씨가 사면‧복권되면 대통령 후보를 양보할 것’이라는 약속을 내세웠고, YS는 DJ가 1986년 11월 ‘직선제가 수용되면 불출마할 것’이라고 선언한 것을 상기시키며 양보를 요구했습니다. 결국 이 같은 두 사람의 반목은 민주당이 다시 한 번 쪼개지는 원인이 됩니다.

김대중 씨의 사면복권은 필연적으로 야권의 분열, 양 김 씨의 동시 출마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은 당시 야당의 속내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다 내다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김대중 씨를 풀어준다고 했을 때 나는 이미 양 김 씨의 동시 출마를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고, 양 김 씨가 동시 출마하면 노태우 후보에게 승산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김대중 씨의 사면복권→양 김 씨의 동시 출마→노태우 후보의 당선이라는 진행은 나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선택의 결과가 아니고, 상황의 산물이었고 나는 그러한 상황을 정확히 읽고 있었을 뿐인 것이다. 또한 그러한 상황을 만든 것은 바로 양 김 씨 자신들이지 내가 아닌 것이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지지 않는다”는 병서의 교훈을 나는 직시하고 있었고, 집권욕에 혈안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사람들이 3김 씨였듯이, 1987년 노태우 후보에게 당선증을 헌납한 사람들 역시 3김 씨였다는 사실은 1980년대 우리의 정치사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하겠다.

전두환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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