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複雜單純

M1 카빈 소총

marineset 2023. 6. 11. 09:26
무기백과
M1 카빈 소총

 

가벼움의 미학
  • 남도현
입력 : 2020.12.01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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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 카빈은 제2차 대전 당시에 미군이 보조용으로 사용한 반자동소총이다. 이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에서도 활약했으나 돌격소총에 밀려 퇴출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미 육군은 1936년 제식 소총으로 채택한 M1 개런드(M1 Garand)를 본격 양산하기 전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문제점 등을 알아보고자 일부 물량을 선행 생산해서 일선에 공급했다. 기존 제식 소총인 M1903 스프링필드와 사거리나 파괴력은 비슷했으나 연사력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뛰어난 덕분에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특히 보병의 반응이 고무적이었다. 사실 이는 육군도 충분히 기대한 결과였다.

카빈 소총의 시제모델 < 출처 : Public Domain >

그러나 모두가 만족한 것은 아니었다. 지원 병과뿐 아니라 전투 병과라도 포병, 기갑 같은 경우는 병사들이 총을 들고 직접 교전을 벌이는 일이 드물기는 반드시 하지만 무장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길고 무거운 M1 개런드는 불편했다. 무기의 성능이 좋아서 나쁠 것은 없지만 이들에게는 과하다는 반응이었다. 사실 일률적으로 고가의 M1 개런드를 공급해 주는 것은 국방 자원 분배 측면에서도 효율적이지 않았다.

이에 육군은 1938년 M1 개런드를 보조할 새로운 소총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 우선 고려된 것이 제1차 대전에서의 전훈에 따라 M1 개런드처럼 연사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시대의 여타 열강들이 소총의 자동화에 등한시했던 것과 달리 미국은 이처럼 발걸음이 앞섰다. 더해서 보조 소총이므로 굳이 고성능일 필요는 없으며 저렴하게 획득할 수 있고 휴대가 간편하면 된다고 보았다.

1944년 11월, M1 카빈으로 무장하고 경계를 서는 대전차포 대원들. 이처럼 일부 병과에서 M1 개런드가 너무 과하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별도의 보조 소총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총을 자동화할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연사 시 발생하는 반동이다. 가장 쉬운 해결책은 총의 무게를 늘리는 것이나 그러면 휴대가 어려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무기 개발자들은 어떻게든 가볍게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 기관단총의 경우는 권총탄을 사용해서 반동을 잡았는데 어쩔 수 없이 사거리, 파괴력이 부족했다. 이에 육군은 새로운 소총이 기관단총보다는 강력하려면 그에 맞는 새로운 탄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사실 M1 개런드도 처음에는 별도의 소총탄을 전제로 개발되었지만 당시 육군 참모총장 맥아더의 반대로 기존 7.62×63mm 스프링필드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된 후에야 채택되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새로운 보조 소총에 별도의 탄환을 사용하자는 것은 미군의 정책에 반하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었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것이 윈체스터(Winchester)가 1906년에 자동소총용으로 개발한 .32WSL탄이었다.

M1 카빈과 30구경 카빈탄. 전반적으로 권총탄을 연장한 형태다. < 출처 : (cc) Curiosandrelics at Wikimedia.org >

양산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1939년 제2차 대전이 발발하자 다급해진 육군은 윈체스터에 이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총탄의 개발을 의뢰했다. 아직은 중립이었지만 지난 제1차 대전에서 경험한 것처럼 언제 어떻게 전쟁에 말려들어갈지 모르기에 대비는 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1940년 기존 .32WSL탄을 축소한 .30WSL탄이 개발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30구경 카빈탄(.30 Carbine. 이하 카빈탄)이다.

이듬해 육군의 요청을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카빈탄을 기반으로 하는 보조 소총의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육군은 사업에 참여한 9개 업체에게 중량이 5파운드 정도에 사거리는 300야드 그리고 자동을 전제로 한 반자동 사격이 가능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조건을 내세웠다. 이때 카빈탄을 개발한 윈체스터 M2 개량형과 스프링필드의 M1 개런드 단축형이 최종적으로 경쟁을 벌였다.

15발 탄창과 30발 탄창. 이처럼 대용량 탄창을 사용한 덕분에 지속 사격 능력이 좋았다. < 출처 : (cc) Surv1v4l1st at Wikimedia.org >

윈체스터는 조나단 브라우닝(Jonathan Browning)이 설계한 G30R 소총을 쇼트스트로크 가스작동식으로 개조해서 해병대에 납품을 시도했던 M2가 있었다. 비록 오염 지대에서 툭하면 고장이 발생해 납품이 무산되었지만 문제를 개선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것이 M1 개런드 소총이 채택한 회전노리쇠 방식이었다. 그렇게 개선된 M2를 제출해서 경쟁을 벌인 최종 승자가 되었다.

명칭 때문에 M1 카빈을 M1 개런드의 단축형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개발 목적부터 달랐던 전혀 별개의 소총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41년 10월 21일, 육군은 이를 M1 카빈으로 명명하고 양산 계약을 체결했다. 원래 카빈은 휴대가 간편하도록 보병용 소총의 총신을 단축한 기병용 소총이다. 그래서 M1 카빈을, 여타 카빈처럼 비슷한 시기에 제식화된 M1 개런드를 단축시킨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것처럼 M1 개런드 카빈형이 최종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반자동소총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이 둘은 전혀 다른 소총이다.

제1차 대전 후 기병은 퇴출되었으나 정확도, 사거리 등이 떨어지던 카빈은 성능이 좋아지면서 보병용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Kar98k처럼 제2차 대전 때 사용된 대부분의 소총이 기존 소총의 카빈형이었다. 즉 전통적 의미의 카빈은 사라졌고 M1 카빈도 단지 휴대성을 강조하던 기병용 소총과 목적이 비슷하다고 판단하여 작명한 것일 뿐이다. 현재 미군의 제식 소총인 M4 카빈도 같은 이유다.

명칭 때문에 M1 카빈을 M1 개런드의 단축형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개발 목적부터 달랐던 전혀 별개의 소총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특징

M1 카빈은 철저히 보조 소총이라는 목표대로 개발되었다. 구조가 간단한 편이어서 저렴한 가격에 대량 생산이 가능했고 정비도 편리했다. 또한 언제 어디서나 사격할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만큼 신뢰성도 좋았다. 그중에서도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무게가 2.5kg에도 미치지 못해 휴대성이 대단히 좋다는 점이 최고의 장점이었다. 현재도 자동화된 총기로 이보다 가벼운 것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2.36 인치 바주카포로 목표를 조준 중인 공수부대원. 이러한 이들에게 가볍고 작은 M1 카빈이 제격이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물론 단점도 있다. 유효 사거리가 250m에 불과하고 정확도와 파괴력이 떨어졌다. 그래서 종종 교전 중 적 저지에 상당히 애를 먹었다는 불평도 나왔다. 하지만 처음부터 M1 카빈에게 요구한 수준이 그 정도였기에 이를 문제로 삼기는 어렵다. M1 카빈을 마치 주력 소총처럼 사용할 경우에나 문제를 느꼈을 뿐이지 오히려 기존 기관단총보다는 성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M1 카빈으로 사격 중인 아이젠하워와 처칠. 여타 소총과 비교하여 크기가 상당히 작음을 알 수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M1 카빈의 장점이자 단점의 근원은 총탄이다. 대부분의 자동소총탄은 소총탄의 크기를 줄인 단소탄(短小彈) 형태지만 카빈탄은 기관단보다 화력을 증대시킬 목적으로 권총탄을 늘린 형태다. 그게 그것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나 외형에서부터 많이 다르다. 당연히 사거리, 파괴력도 차이가 크다. 한마디로 M1 카빈은 카빈탄을 기반으로 적당한 성능에 가벼움의 미학을 실현시킨 소총이라 할 수 있다.

M1·2·3 카빈은 가볍다는 장점으로 한국전을 거쳐 베트남전 초기까지도 애용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운용 현황

M1 카빈은 1942년부터 제2차 대전이 종전한 1945년 8월까지 총 612여만 정이 생산되었다. 개발 완료 직전에 일본의 진주만 급습이 벌어진 관계로 11개 업체에서 쉴 새 없이 만들어 전선에 공급했다. 덕분에 최대 생산 업체는 개발자인 윈체스터가 아니라 260여만 정을 제작한 GM이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보조 소총으로써 소요를 제기한 육군보다 해병대가 더 많이 선호했다.

이오지마 전투 당시 M1 카빈으로 무장한 해병대원. < 출처 : Public Domain >

작고 가볍기 때문에 육중한 군장을 둘러매고 수시로 상륙 작전을 벌이는 해병대에게 적합했던 것이다. 사거리와 화력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밀림 같은 곳에서는 유효 사거리 내 교전이 대부분이어서 뛰어난 연사력이 빛을 발했다. 거기에다 카빈탄은 녹이 쉽게 슬지 않는 장점이 있어서 물과 접촉이 많은 해병대에게 M1 카빈은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그렇게 제2차 대전 내내 종횡무진 활약을 펼쳤다.

한국전쟁 당시 착검한 M1 카빈으로 사격 중인 미 해병 1사단 병사. < 출처 : Public Domain >

이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에서도 사용되었고 많은 나라에 공급되었는데 신체가 작은 동양인들이 선호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100만 정이 넘게 공여를 받아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이 M1 카빈을 운용한 국가로 최근까지 예비군용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연사력은 물론 화력과 사거리도 뛰어난 돌격소총이 대세가 되면서 M1 카빈은 위치가 어정쩡해졌고 급속히 퇴출되었다. 현재는 민수용으로 풀려나와 콜렉터들의 소장품으로 사용되고 있다.

변형 및 파생형

M1: 양산형

M1 카빈 < 출처 : Public Domain >

M1A1: 접철식 개머리판을 채택한 공수부대용

M1A1 카빈 < 출처 : Public Domain >

M1A2: M1A1에 영점 조절 가늠좌와 착검 장치를 장착한 파생형

M1A2 카빈 < 출처 : Public Domain >

M1A3: 접철식 개머리판이 아래로 꺾이는 파생형

M1A3 카빈 < 출처 : Public Domain >

M2: 완전 자동형

M2 카빈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M3: M2에 적외선 조준기와 전방 손잡이를 장착한 개량형

M3 카빈 < 출처 : (cc) Curiosandrelics at Wikimedia.org >

 

제원

제작사: 윈체스터 외
구경: 7.62m
탄약: 30구경(7.62×33mm) 카빈탄
급탄: 15발 들이 탄창 외
전장: 900mm
총열: 460mm
중량: 2.4kg
유효 사거리: 270m
작동 방식: 쇼트스트로크 가스작동식, 회전노리쇠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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