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audio-visual

Waterloo Bridge/ 비비안 리의 애수(哀愁)

marineset 2023. 6. 4. 10:26
비비안 리 / 애수의 워털루다리에서 바람과함께 사라지다

△1819년의 워털루브릿지
워털루(Waterloo)는 벨기에 중앙부, 브뤼셀 남쪽의 마을이름이며, 1815년 6월 18일 웰링턴(Wellington)장군이 지휘하는 영국군이 나폴레옹(Napoleon)군을 격파한 곳으로 유명하다.
위의 다리는 원래 Strand 브릿지로 불렸으나 1817년 6월 18일, 워털루 전승기념일에 맞추어 워털루 브릿지로 개명되었다.[by badoc]





[워털루다리의 개요/단위: 피트]

The length of the stone bridge within the abutments.................. 1242
Lenght of the road supported on brick arches on the Surrey side of the river.... 1250
Length of the road supported on brick arches on the London side ....... 400
Total length from the Strand, where the building begins, to the spot in Lambeth where it falls to the level of the road....................................... 2890
Width of the bridge within the balustrades................................... 42
Width of pavement or footway, on each side.................................. 7
Width of road for horses and carriages........................................ 28
Span of each arch................................................................... 120
Thickness of each pier............................................................... 20
Clear waterway under the nine arches, which are equal............... 1080
Number of brick arches on the Surrey side....................................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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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수 哀愁 애수 哀愁 애수 哀愁 애수 哀愁 애수 哀愁




애수 (1940, Waterloo Bridge)



안개 낀 워털루브릿지와 함께 떠오르는 추억속의 이영화는
아름답던 비비안 리와 미남배우 로버트 테일러가
공연해서 공전의 히트를 쳤던 영화인데 로버트 E. 셔우드의
각본에 감독은 머빈 르로이가 맡았던 미국 영화다.

원제 : Waterloo Bridge
감독 : 머빈 르로이( Mervyn LeRoy)
출연 : 비비안 리(Vivien Leigh - 마이라 레스터)
로버트 테일러(Robert Taylor - 로이 크로닌)
루실 왓슨(Lucile Watson - 마가렛 크로닌)
버지니아 필드(Virginia Field - 키티 메레디스)
마리아 오우스펜스카야(마담 올가 키로봐)
C. 오브리 스미스(C. Aubrey Smith - 공작)
각본 : 로버트 E. 셔우드
제작 : 머빈 르로이
촬영 : 조셉 루텐버그
편집 : 조지 보머
음악 : 허버트 스토타트
상영시간 : 108분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1939년 9월 3일 저녁, 안개 자욱한 런던의 워터루 다리위에 한 대의 지프가 멎는다.
로이 크로닌 대령은 프랑스 전선으로 부임하기 위해 워터루 역을 향해 달리는 중이었다.
그는 48살이 된 그날까지도 독신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는 차에서 내려 워털루 다리 난간으로 간다.
난간에 기대어 선 그는 호주머니에서 조그만 마스코트를 꺼내어 들며 지난 날의 회상에 빠져 든다.

.......

제1차대전
워털루 다리 위를 산책하던 25살의 젊은 대위 로이 크로닌은 때마침 공습 경보로 지나가던 사람들과 함께 지하 철도로 피신한다. 그는 프랑스 전선에서 휴가를 받고 나와 있다가 내일로 다가온 부대 귀환을 앞두고 거리를 거닐고 있던 중이었다. 그때 그는 핸드백을 떨어뜨려 쩔쩔매고 있는 한 처녀를 도와주고 함께 대피한다.

혼잡한 대피소 안에서 그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그녀는 올림픽 극장에서 공연중인 올가 키로봐 발레단의 무희였다.
그날 밤 극장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던 마이러는 객석에서 로이를 발견하고 놀란다.
로이는 사람을 통해서 마이러에게 쪽지를 전한다.
친구 키티의 도움으로 둘은 몰래 만날 수 있게 되고 그곳에서 싹트기 시작한 그들의 사랑은 다음날 로이의 청혼으로 이어지나 참전을 앞둔 로이의 스케즐이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체 전쟁터로 떠난다.

마이라는 전쟁터로 떠나는 로이를 마중하러 워터루 브릿지역으로 나가고 그로 인해 발레단에서 쫓겨나게 된다.
마이라는 로이 어머니를 만나러 나간 장소에서 우연히 전사자 명단에 들어있는 로이 이름을 발견하고 미칠듯한 절망감에 휩싸인다.
상심한 마이라는 직업을 구하지 못해 거리의 여자로 전략하고 만다.
어느날 워터루역에 나갔던 마이라는 로이를 귀국하는 군인들 사이에서 발견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그리워하며 기다렸던 그에 대한 사랑을 지키지 못한 후회와 죄책감으로 행복해야 할 둘의 사랑은 어이없이 무너지고 두 사람이 만났던 안개 낀 워터루 브릿지에서 가엾은 마이라의 자살로 막을 내리게 되는 비극적 결말의 영화이다.

여러번 퓨처상을 수상한 로버트 E.샤웃의 원작을 영화화한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연애 영화로,시대를 불문하고 전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공습하의 런던을 무대로 서부 전선을 향하는 청년 장교와 발레리나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을 애절하고 인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여러 번 리바이벌되어 들어와 여성 팬들의 손수건을 적시게 한 영화이다.
"올드 랭 사인"의 아름다운 선율과 비극적인 라스트 신으로 언제나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추억의 명화로, 이 영화로 해서 한때 우리나라엔 마스코트 유행의 선풍이 일어나기도 했다.
http://blog.empas.com/ground19/1899103[본문 부분발췌]

올드랭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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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비안 리 (Vivien Leigh)비비안 리-불꽃 같은 생애

세계 영화사에 길이 기억될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히로인, 스칼렛 오하라처럼 쓸쓸히 스러져간 여인 비비안 리는 아마도 영화 속 주인공과 이미지가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가 아닐까 생각 된다. 비비안 리는 1913년 11월 5일 인디아의 다질링에서 태어났다. 6살때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와 13세까지 ‘성심 수도 병원 기술 학교’를 다녔고 이후 그녀는 부모님과 함께 유럽 각국을 돌며 조숙한 숙녀 교육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6세때부터 그녀는 파리에서 연극에 매료되어 배우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데 런던으로 돌아와 ‘왕립 연극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연기 수업을 착실히 받으며 배우로써의 꿈을 키워 나간다.

그때 그녀가 가졌던 꿈은 “최고의 배우가 되어 멋진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해보는 것”이었다.
한창 배우 수업을 받고 있던 19살이 되던 해, 비비안 리는 ‘하버드 홀맨’이라는 변호사를 만나 일찍 결혼을 하게 된다. 아마도 그녀가 평범한 주부로써의 생활을 만족했다면 영화사를 다시 써야 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다소 보수적인 남편을 설득하여 영화와 연극에 조연으로 몇차례 출연 해 보기도 하지만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비비안 리를 그냥 비껴가지 않았다. 영국이 세계에 자랑 했던 대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 와 [햄릿]을 함께 공연하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 공연이 있은 후 배우로써 안목이 깊었던 올리비에는 비비안 리의 천부적인 소질을 인정해 이후 같은 작품에 출연을 하게 된다. 그리고 비비안 리는 늘 꿈에서만 그려왔던 멋진 배우 올리비에와의 사랑을 하게 된다.

로렌스 올리비에가 윌리암 와일러 감독의 [폭풍의 언덕]에 출연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의 일이다. 비비안 리는 그녀의 모든 것을 버려도 좋다는 확신을 갖고 올리비에를 쫒아 단숨에 미국으로 건너 갔다. 이때 모든 신문은 비비안 리와 올리비에의 연애설을 헤드라인으로 채우고 헐리웃에서는 일대의 파란이 일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쫒아 미국까지 날아간 비비안 리는 마침내 올리비에와 제2의 결혼 생활을 하게 되고 20세기 최고의 배역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히로인도 거머쥐게 된다. 꿈에도 그리던 사랑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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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리와 로렌스 올리비에
비비안 리와 로렌스 올리비에의 사랑은 영화 <무적 함대>에 공연하면서부터 막이 오르기 시작한다. 당시 비비안은 변호사 하버드 홀램의 부인이자 세살짜리 계집애의 어머니였다. 올리비에는 거무스름하고 정력적인 인상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을 지닌 사나이로서, 그 역시 여우 질 에드먼드의 남편이었다. <무적 함대>에서 공연하는 동안 서로 애정이 싹트기 시작했으나, 그들의 결합을 가로막는 장해물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두 사람 다 자기들의 어린애가 염려되었고, 특히 그들의 스캔들을 톱으로 다룰 신문기사가 눈앞에 크게 부각되었다. 만일 그런 기사가 실리는 경우, 그들의 이름에 오점을 남기게 될 뿐더러, 찬란한 연기자로서의 앞날을 파멸로 몰아 넣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성보다는 사랑이라는 본능이 더 강했다. 두 사람은 될대로 되라, 세상이 자기들을 파멸로 시킬테면 시켜봐라, 세상이 이기나 자기들이 이기나 하는 사랑에의 도박을 걸게 된 것이다. 그런 상황 가운데, 미국에서 올리비에는 <폭풍의 언덕>의 주연을, 비비안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역을 맡게 되었다. 그무렵, 두 사람의 이혼소송이 영국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3년전 남편은 미스 리(비비안)와 연애한다는 것을 고백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헤어졌어요." 질 에드먼드의 증언이었다, 하버드 홀맨의 증언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혼 소송은 반론하는 사람은 없었고, 법정도 공청자의 출입을 금지하고 극비리에 열렸다. 그리하여 1940년 8월 30일 대서양을 건너간 이들은, 헐리우드 교회 산타 모니카에서 결혼식을 올림으로써, 비비안 리는 비비안 올리비에로 불리게 된 것이다.

△무적함대(Fire over the England)의 로렌스 올리비에와 비비안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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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 Laurence Olivier

actor
Born: 5/22/1907
Birthplace: Dorking, England


Academy and Emmy Award-winning film and stage actor best known for his roles in Shakespearean works. His films include Pride and Prejudice (1940), Henry V (1945) and Hamlet (1948). He headed London's National Theatre Company (1962–73). England's premier theater awards are named in his honor. He was married to actress Vivien Leigh (1940–60) and to actress Joan Plowright (1960–89).

Died: 7/11/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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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렛처럼 쓸쓸히 스러져간 비비안 리

1953년, 비비안 리가 <거상의 길>의 실론 로케를 마치고 세트 촬영을 위해 헐리우드에 돌아가 있을 무렵, 남편 올리비에는 그녀와 떨어져 잍날리아에 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친국 데비드 니븐으로부터 지급 전화가 걸려왔다. 비비안 리가 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급기야 헐리우드로 돌아온 올리비에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비안의 눈은 번뜩였고, 입은 한시도 놀림이 없이 뭔가를 지껄여댔다. 심지어는 상대방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공연중인 남우 피터 핀치를 라리(로렌스)의 애칭)라고 부를 지경이었다. 의사의 진단은 '급성 신경 장애' 비비안이 맡은 역은 엘리자베드 테일러에게 넘어갔다. 그 즈음의 몇 년동안 비비안은 자신의 약한 육체에 채찍질을 가하면서 올리비에의 정력적인 활동에 대해 있는 힘을 다해 격려했다. 그 결과, 46세의 올리비에는 인생 최고조의 시기에 들어선데 반해, 비비안은 이유야 어쨌든 자기의 모든것이 끝장났음을 직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그들 부부의 정은 차차 식어가기 시
작하더니, 
마침내 올리비에는 여배우죠안 플로라이트(Joan Plowright) 와 사랑을 나누기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1959년 비비안은 그 동안 줄곧 자신의 마음속에서 자라 온 올리비에에 대한 집념을 꺽고, 그와 죠안과의 사랑을 들어 이혼 사실을 공표하게 되었다. 그 후 <로마의 애수>등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하기는 했으나, 1953년 사건이래 1967년 7월 8일 런던의 자택에서 타계하기까지의 14년간은 그녀에게 더없이 고독한 나날이었다. 사인이 자살이 아니었나 하는 견해도 있었으나, 지병인 폐결핵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장의 위원장은 로렌스 올리비에가 맡았다. 이리하여 비비안 리란 한 여성은 그녀의 출세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처럼 젊은 날의 아름다움과 현란함을 남겨둔 채 조용히 스러져간 것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
비비안 리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캐스팅 된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영화 속의 화재 촬영 장면을 보기 위해 촬영장에 갔다가 우연히 그 유명한 '데이비드 셀즈닉'의 눈에 띄어 단번에 캐스팅 되었다고 한다. 당시 ‘스칼렛 오하라’역을 따내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쟁쟁한 후보자들이 테스트를 받고 있었지만 행운은 비비안 리의 손을 들어 주었다.
스칼렛 오하라라는 영화속 인물의 성격은 다루기 매우 까다로운 스타일이다. 독선과 오만함, 목적을 위해 때론 비열함까지 갖춘 밝으면서도 말광량이인 스칼렛은 결코 쉽게 소화 낼수 없는 배역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6개월 동안 스칼렛을 느끼기 위해 배역과 똑같은 생활을 했다고 한다.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손짓 하나에서 행동 그리고 진짜 스칼렛처럼 변덕스럽고 비열한 행동을 하면서 스칼렛과 동화 되는 연습을 하였다고 한다.
촬영이 끝날 즈음엔 스스로 말하길 행동과 감정이 완전히 스칼렛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런 그녀만의 노력이 있었기에 불멸의 명작이라는 영광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

이슬처럼 스러져간 비비안 리
검은 피부에 강인한 인상의 로렌스 올리비에는 비비안 리의 열정적인 사랑을 받고 결국은 그녀의 사랑 앞에 굴복하고 만다. 둘은 모두가 가정과 아이들이 있었지만 이성보다는 사랑이라는 본능적 감정을 택했다. 그들 스스로가 쌓아온 그동안의 명성과 배우로써의 성공은 대서 특필된 신문의 헤드라인들에 의해서 먹칠(?) 되고 있었지만 둘은 개의치 않았다.
두 사람의 이혼은 곧 소송에 들어 갔으며 로렌스 올리비에는 <폭풍의 언덕>의 주연으로 비비안 리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역을 맡고 한창 촬영 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1940년 8월 30일 둘은 산타 모니카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화려한 제2의 출발은 이렇게 시작 되었다. 하지만 둘의 사랑도 영원할 수는 없었던 듯 하다. 1953년 비비안 리 <거상의 길>이라는 영화 촬영을 마치고 이내 '급성 신경 장해'라는 정신질환에 걸리고 만다. 이 병을 앓게 되면서 비비안 리는 가끔 상대방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뭐라고 혼자 중얼대는 때가 많았다고 한다.

비비안 리는 그 후로도 몇 년간을 자신의 병보다는 올리비에를 위해 헌신적인 생활을 하였으며 그 덕에 당시 올리비에는 배우로써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혹사당한 육신과 쇄약 해진 마음만 남은 비비안 리는 결국 올리비에가 '죠안 폴로라이트'라는 여배우와 사랑하는 사이임을 알고 스스로 1959년 이혼을 발표 한다.

이혼 후 비비안 리는 <로마의 애수>등 몇 편의 영화에 출연 하였지만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아마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으로써의 비비안 리를 기억하고 싶은 팬들의 바람이었으리라.

그리고는 1967년 7월 8일 자살 의혹 속에 지병인 폐암으로 불꽃 같은 생을 마감 하고 만다. 세기의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처럼 젊은 날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남겨둔 채 조용히 스러져 갔던 것이다. Tara’s Theme과 함께 붉은 석양에 서있던 그녀의 모습을 영원히 가슴속에 남겨둔 채 말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배경음악 색소폰연주Sil_Austin___Tara_s_Theme.mp3


* 주요 출연작 *

1934년 : 찾고 있는 물건(Things Are Looking Up).
1935년 : 시골 신사(The Village Squin), 신사 협정(Gentlemen's Agreement),
응시와 웃음(Looking Up & Laugh)
1936년 : 무적 함대(Fire Over England)
1937년 : 간첩(Dark Journey), 찾잔 안의 폭풍(Storm in A Teacup).
1938년 : 21일간(21 Days), 옥스포드의 앵크(A Yank At Oxford),
세인트 마틴의 골목길(St. Martin's Lane)
1939년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1940년 : 애수(Waterloo Bridge).

1941년 : 엠마(Lady Hamiton).
1945년 : 시저와 클레오파트라(Caesar & Cleopatra).
1948년 :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
1951년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
1961년 : 로마의 애수(The Roman Spring Of Mrs. Stone).
1965년 : 바보의 배(Ship Of Fools).


* 수상작 *

1940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
1966년 <바보의 배> 필름 데일리 지 여우 조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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