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audio-visual

향기품은 군사우편

marineset 2023. 6. 3. 05:21

 

 

 

 
향기품은 군사우편 영상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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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의 개입으로 빚어진 또 하나의 비극이었던 1.4 후퇴는 가요계에 센티멘털 붐을 일으켰다. 동란 속에 잃어버렸던 가족을 찾기도 전에 다시 남으로 봇짐을 꾸려야 했던 그날 민족은 하늘을 저주하며 실의에 젖어들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리라.

소란 속에 미군 LST를 겨우 얻어 타고 흥남항을 떠난 숱한 이북 피난민의 슬픔을 담은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가 현인에 이ㅡ해 51년8월 대구 ‘오리엔트’ 레코드에서 출반되자 이곡은 애련한 슬픔에 불을 붙인 뇌관이 되었다.

“~목을 놓고 울어봤다. 찾아를 봤다/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던가/피눈물을 흘리면서 1.4이후 나홀로 왔다~.”

‘고향 꿈도 그리워진’ 실향민들은 ‘손을 잡고 울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춰보자’고 절규했지만 오늘까지 그들의 한은 더욱 맺혀만 갈뿐이다. 강사랑 작사 박시춘 작곡 현인의 노래로 불려진 이곡은 아직도 그들의 가슴속에 훨훨 불타고 있다.

1.4후퇴때 혼란으로 숱한 가요인들이 납북되기도 했지만 자유를 찾아 남하한 피난민속에는 월남한 가수들도 섞여 있었다. 일제하 ‘빅터’레코드 소속이던 한정무는 그 대표적인 케이스로 부산 ‘도미도’레코드에서 취입한 ‘꿈에 본 내 고향’은 향수에 젖은 바로 그 자신의 심경을 노래한 것이었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저 하늘 저산아래 아득한 천리/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대동강 달밤’으로 히트한 바 있고 편곡도 곧잘 하던 그는 ‘꿈에본내고향’을 영영 가보지 못한 채 1960년 교통사고로 비명에 숨져갔다.

신카나리아의 ‘승리부기’ 박단마의 ‘슈샤인보이’가 불려지는 속에 제주도 제2훈련소 군예대에 있던 박시춘은 제주도의 풍물에 감명, 유호작사의 ‘삼다도소식’을 황금심에게 취입시켜 슬픔에 젖어있던 사람들을 위로했다.

피난지 부산에서 레코드바늘 장수를 하던 한복남은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도미도’레코드를 차려 신인 허민을 발굴 ‘페르샤왕자’를 내놓았다.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피난 수도 부산에서마저 정치파동이 일자 실의와 낙망에 젖어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센티멘털리즘과 엘레지 자포자기의 노래들이 가요계를 휩쓸었다.
출처:향기품은 군사우편
 
행주 치마 씻은 손에 받은 님 소식은
능선의 향기 품고 그대의 향기 품어
군사우편 적혀 있는 전선 편지에
전해주는 배달부가 싸리문도 못가서
복받치는 기쁨에 나는 울었소
돌아가는 방앗간에 받은 님 소식은
충성의 향기 품고 그대의 향기 품어
군사우편 적혀있는 전선 편지에
옛추억도 돌아갔소 얼룩진 한자 두자
방앗간의 수레도 같이 울었소

밤이 늦은 공장에서 받은 님 소식은
고지의 향기 품고 그대의 향기 품어
군사우편 적혀 있는 전선 편지는
늦은 가을 창 너머로 보이는 저 달 속에
그대 얼굴 비치며 방긋 웃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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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홍의 노래 ‘추억의 40계단’ 한정무의 ‘경상도아가씨’ 금사향의 ‘임계신전선’ ‘홍콩아가씨’ 장세정의 ‘고향초’ ‘런던소야곡’ 남인수의 ‘청춘고백’등이 쏟아져 나왔고 유춘산의 ‘안개낀 목포항’  ‘향기품은 군사우편’은 애상곡의 대표적인 것이었다.

이 무렵의 레코드 제작은 부산과 대구가 본거지였다. 임정수(현 지구레코드 사장)와 김능억이 창립한 ‘미도파’, 한복남의 ‘도미도’, 손영준 김흥산이 차린 ‘스타’레코드가 고물레코드판을 수집해다 해방직후처럼 재생판을 생산했다. 대구에는 이병주의 ‘오리엔트’와 김영준과 백년설의 ‘서라벌’이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부속품들을 모아 수공업적인 레코드를 제작하고 있었다.

방송국에서 음악방송을 해가며 피난시대를 보낸 가수들도 있었다.

작곡가 이재호는 ‘도미도’ 레코드에 관계하며 부산방송국에서 활약했고 마산방송국에서는 반야월을 중심으로 류광식등이 후방을 지키고 있었다. 반야월이 부른 ‘비내리는삼랑진’ ‘마산엘레지’ ‘눈내리는 마산항’은 여기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1953년 7월. 북진통일의 절규도 보람없이 환도열차가 부산을 떠나기 시작했다. 전쟁은 이별과 상처를 낳았었지만 부산의 피난살이 3년은 사람들 가슴속에 숱한 애환을 심어 놓았다. 환도직후 설립된 ‘유니버살’에서 남인수가 부른 ‘이별의 부산 정거장’은 6.25의 아픈 상흔과 추억을 일깨우는 노래로 만년가수 남인수의 진가를 다시한번 과시한 히트곡이었다.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 정거장/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눈물의 기적이 운다/한많은 피난살이 설움도 많아/그래도 잊지 못할 판자집이여/경상도 사투리에 아가씨가 슬피우네/이별의 부산정거장~.’

<이범길 기자> 1973년 4월 3일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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