映畵 철도원(鐵道員)
1999년 일본의 도에이[東映]영화사가 제작하였다. 제117회 나오키상[直木賞] 수상작인 아사다 지로[淺田次郞]의 단편소설 《철도원(鐵道員)》이 원작이다. 후루하타 야스오[降旗康男]가 감독하고, 다카쿠라 겐[高倉健], 오다케 시노부[大竹しのぶ], 히로스에 료코[廣末凉子] 등이 출연하였다. 상영시간 105분. 설원 지역인 일본 북부 홋카이도의 작은 역사(驛舍)를 배경으로, 아내와 딸을 잃고 혼자 살아가는 지방선 철도원의 일에 대한 사랑과 삶의 회한을 그린 작품이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일본의 작은 시골마을 호로마이에서 평생을 철도원으로 보낸 충실한 남자 오토마츠(다카쿠라 겐). 정년퇴임을 눈앞에 두고 그는 오래 전의 기억을 떠올린다. 17년 전 겨울 어느 날, 아내 시즈에는 기쁜 얼굴로 그를 찾아와 임신 소식을 전하였고, 오랜 기다림 끝에 태어난 딸에게 부부는 '눈의 아이'라는 뜻으로 유키코〔雪子〕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러나 딸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열병에 걸려 죽어 버리고, 아내 시즈에마저 병에 걸려 오토마츠의 곁을 떠나고 만다. 그때마다 역을 지키느라 그들의 곁에 있어 주지 못했던 오토마츠는 이후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살아왔다. 새해 아침, 여느 날과 같이 역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던 그의 앞에 인형을 가슴에 안은 낯선 여자아이가 찾아오는데, 그 아이는 고독했던 오토마츠의 인생에 놀라운 전환을 불러온다.
1999년 일본에서 개봉되자마자 2주 연속 흥행 1위를 기록하면서 450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다. 제23회 일본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 등 9개 부문을 수상하였으며, 몬트리올영화제 남우주연상, 인도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등을 수상하였다. 한국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되었고, 2000년 2월 구정연휴에 개봉되어 총 2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였다.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의 음악과 홋카이도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이 조화를 이루어 서정적이고 정감 어린 분위기를 자아내며 영화의 감동을 더하였다.
경춘선 '가평역'에는 낭만파후배 철도원 권택원 역장이 있다. 권 역장은 국립철도고등학교 업무과를 1977년에 졸업하고 28년간을 철도공무원으로 봉직하였다. 나는 한번도 그를 만난적은 없지만, 짐작하건데 그는 동문회카페를 운영하는 인터넷 고수이며 섬세한 심성을 가진 반듯한 중년의 삶을 사는 멋쟁이가 아닐런지.... 종종 그가 올린 내용들을 몰래 퍼 와서 내 카페나 블로그에 올린다.
청명한 하늘만큼 높은 '마음밭'
사실 의례적으로 하는 불우이웃돕기 실적보고를 위해 직원들과 얼마씩 각출해 쌀과 라면 상자 등을 전달할 땐 형식적이었지요. 그런데 막상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을 만나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콘센트 건물에서 변변한 취사도구조차 없이 혼자 지내면서도 법적인 부양자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생계지원을 받지 못하는 분들 사정이 딱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착안한 것이 국화축제. 당시 금곡역장으로 있던 그는 기차역의 분위기를 화사하게 하기 위해 직원들과 함께 역사에 놓을 국화를 재배하고 있었다.
기왕에 재배하는 국화의 양을 좀더 늘려 사람을 모으는 도구로 삼는 한편 이웃돕기성금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국화화분으로 답례를 하면 좋겠다 싶었던 것. 그 때부터 그와 직원들의 손길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화화분만으로는 사람을 모으는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도 들고 이왕 벌인 일, 지역주민이 모두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축제다운 축제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든 그는 사람들의 흥을 돋워줄 가수들을 직접 섭외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 행사를 위해 지원된 예산은 이백만 원 가량. 그 돈으로는 진행경비를 대기에도 빠듯해서 준비단계에서 이미 사재를 털어 넣기 시작한 그에게 초대가수를 위한 출연료를 따로 책정할 수는 없는 일. 그 때부터 그는 미사리 등지의 카페를 돌아다니며 무료로 공연해줄 가수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무리 무료섭외지만 그래도 지명도가 있는 사람을 모셔야겠다 싶어서 이름난 가수들만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남들은 돈을 수백만 원씩 들고 섭외를 하는 마당에 공짜로 해달라고 하니 아무리 좋은 일이라지만 대부분 거절당하기 일쑤였죠. 그래도 끈덕지게 쫓아다녔습니다.
그 분들이 출연하는 시간에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박수와 환호성을 울리면서 열성팬 노릇을 하기도 하고 가수 송창식 씨 같은 경우는 일주일동안 식사할 때도 따라다니면서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열성 덕분에 지역주민들은 모처럼 유명가수들의 무료 콘서트를 즐길 수 있었고 어렵게 섭외된 송창식 씨의 경우는 애초 두 곡만 부르기로 했다가 무려 여섯 곡을 부르고서야 경찰의 도움을 받아서야 자리를 뜰 수 있을 정도로 주민들의 호응도도 높았다.
그리고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치른 행사를 통해 거둬진 성금은 남양주시 사회복지과를 통해 정작 도움이 필요하지만 법적인 요건이 모자라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독거노인들과 불우 이웃들에게 전달돼 요긴히 쓰일 수 있었다.
지난 99년 그렇게 처음 시작된 금곡역의 국화축제는 지난해 말 그가 가평역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4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행사의 산파이자 주역 역할을 했던 그가 자리를 옮긴 탓이었을까, 올해는 행사가 계획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고.
하지만 그가 새로 책임을 맡은 가평역에서는 지난 5월에 이미 이웃돕기 바자회를 기획해 소년소녀 가장들과 장애인 보호시설인 등대마을에 220여만 원의 성금을 전달하는 행사를 가진 바 있다. 다만 바자회라는 특성상 지역상인들과의 이해관계가 상반돼 반대여론도 있는 만큼 행사를 계속 이어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어서 지금은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철도원 생활 27년째인 그의 유일한 취미는 등산이다. 작년부터 시작한 백두대간 횡단을 반쯤 마친 그가 산을 오르는 까닭은 마음을 비우고 다스리기 위해서라고. 그렇게 비우다보면 아마 머지않아 국화축제 못지 않은 또다른 이웃돕기 행사가 가평역의 광장을 채울 터. 덕분에 그가 선 철길과 기차역은 사람과 화물은 물론이고 따뜻한 이웃사랑도 함께 오고 가는 사랑역, 사랑길이 된다.
글 박남규 사진 최지현
[한국의 명풍경을 찾아서] 경춘선
한 편의 영화처럼, 열두 폭의 병풍화처럼 폭력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차창 풍경
열차는 마치 팽팽히 당긴 옷감을 단숨에 자르는 가위처럼 도시를 두 쪽으로 갈라놓으면서 전진했다. 차창에는 도시의 절단면이 거침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속력을 더하자 예리하게 잘려나간 도시의 단면은 이윽고 형체를 잃어버리고 다만 광선의 다발로 변하여 시야의 뒤편으로 빠르게 사라져 갔다. 차창 밖에는 북한산이 보였지만, 이내 멀어졌다.
성북역을 지난 열차는 본격적으로 속력을 내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청량리 발 춘천행 경춘선에 몸을 싣고 있었다. 경춘선은 2시간 거리다. 영화 한 편 볼 시간의 거리다.
폭력, 그러나 매혹
금곡역에서 1분 정도 정차한 열차는 서서히 역구내를 벗어났다. 퇴계원역에서 8분 후에 도착한 역이다. 본격적으로 전원풍경이 펼쳐졌다. ‘경춘선’이라는 영화가 전개되는 부분이다.
역을 지나 열차가 속도를 높이자 야트막한 산자락이 서서히 다가오더니 이내 뒤로 사라졌다. 산 능선도 덩달아 춤추듯이 일어섰다가는 앉기를 리드미컬하게 반복했다. 차창에 그 지형의 단면이 보였다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깜깜해졌다. 터널 속으로 진입한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철도는 폭력과 매혹이라고. 폭력이거나 매혹이거나. 영화 제목 같은 이 말은 철도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철도와 같은 궤도계 교통은 회전반경이 크고 마찰 저항을 줄이려고 평탄한 선로를 선택한다. 또 가급적 직선으로 달려야 에너지 소모가 적으므로 선로가 놓이는 지형은 성토와 절토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평탄지가 된다. 깊숙이 절단된 산협(山峽)과 하천을 뜬금없이 가로지르거나 진행을 가로막는 지형을 터널로 관통하는 것이 철도 선로에서는 상례다. 심지어 도시조차 갈라놓는다. 여태까지 그 어떤 교통수단도 보여주지 않았던 폭력적인 모습이다.
꽤 긴 시간을 어둠 속을 헤쳐 나온 듯했다. 하지만 터널 속에 머물렀던 시간은 기껏해야 40초 정도였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느닷없이 고층 아파트가 나타났다. 터널 바깥에서는 산속 깊이 진입하던 분위기였는데 난데없이 도회지의 모습이라니. 멀리 천마산이 고층 주거단지 뒤에 배경으로 서 있었다.
하지만 철도는 그때까지와는 다른 시선을 가져다주었다. 직선으로 관통하는 성질을 가진 선로 위에서 보는 풍경은 산하의 풍경적 질서가 연속적으로 변하는 고전적 풍경 체험과는 판이하다.
도시와 전원, 그리고 강과 산을 직선으로 관통하는 열차의 시선은 풍경의 서열적 배열을 비맥락적으로 관통한다. 강과 모래 바닥과 강 언덕과 강촌이라고 하는 수변 마을의 풍경적 질서는 제방과 터널로 강을 가로지르고 산을 뚫고 지나가는 선로에 의해 해체된다. 강물 위를 지나는가 했더니 느닷없이 터널 속으로 진입하고, 그 어둠 속을 빠져나오면 일순에 산촌으로 우리의 몸을 강제적으로 이동한다.
그렇지만 선로에 의하여 비의도적으로 편집된 산하 풍경은 여태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풍경이다. 철도가 발명한 새로운 풍경에 끌린 사람들의 얘기는 근대 철도사에서 빠지지 않는 대목이다.
간이역과 경춘가도는 경춘선의 별미
금곡역을 떠난 열차는 14분 후 마석역에 도착했다. 대개 경춘선 무궁화 호는 10분 간격으로 정차한다. 마땅히 근거가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10분 간격의 정차는 경춘선의 풍경을 즐기기에는 적당한 간격인 것 같다. 금곡~마석 사이는 경춘선 무궁화호에서 정차 역의 간격이 가장 긴 구간이지만 터널을 두 개나 거친 탓인지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단출한 역사(驛舍)가 차창 너머로 보였다. 경춘선의 간이역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경강역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경강역의 소박하고 애틋한 분위기에 끌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은 마석역에 눈을 빼앗기고 말았다.
단정하게 깎은 관목 화단 사이로 키 낮은 좌우 대칭의 역사가 서 있고, 그 중심 부분에 진달래가 활짝 꽃을 피우고 단정히 서 있었던 것이다. 열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화분에 담긴 그 한 그루의 진달래꽃은 처녀처럼 고개를 약간 숙인 것 같았다.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마석역을 나온 경춘선은 시가지 풍경을 보여주더니 머재굴, 아미기굴을 지나자 그때까지 열차의 오른쪽으로 달리고 있던 46번 도로가 이제는 왼쪽으로 자리를 바꾸어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자동차도로로 손꼽는 경춘가도다. 진행 방향의 왼쪽에 나타났던 경춘가도는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직선으로 활주하는 경춘선 열차를 두고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자리를 바꾸는 경춘가도는 마치 아이스댄싱을 추고 있는 듯하다. 뽀로통하여 종종걸음으로 달아나는 연인의 환심을 사려는 듯 조바심 내며 다가서는 광경을 연기하는 아이스 댄서처럼 경춘가도는 직선으로 질주하는 경춘선을 따라 나란히 달렸다가는 가로질러 자리를 바꾸고, 또 다시 산그늘 뒤로 숨었다가는 다시 다른 쪽에서 나타났다.
대성리역을 지나자 근경의 나뭇가지 사이로 보였던 경춘가도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경춘가도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열두 폭 병풍화를 보는 듯
경춘선 무궁화호가 가평역을 빠져 나온 것은 청량리역을 출발한 지 1시간 20분 후였다. 역구내를 벗어난 열차는 오른쪽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나아간다. 산의 끝자락을 빠져나오자 시계가 탁하고 열렸다. 강 위였다. 북한강이다. 청평역에 가까워지면서 오른쪽 창문으로 힐끗힐끗 보였던 북한강이었다. 이 강을 건너면 강원도에 들어선다. 지금부터 경춘선은 북한강을 끼고 달린다. 러닝타임 2시간짜리 영화 경춘선의 절정에 접어든 것이다.
경강역을 지나자 차창 밖에는 북한강과 다시 모습을 드러낸 46번 국도가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그 뒤로 북배산이 우뚝 솟아 있었다. 잡음처럼 시야를 방해하던 근경의 나무조차 없었다. 다행이었다. 파노라믹한 풍경이 열차와 함께 천천히 움직였다. 삼각형의 산 그림자가 거울 같은 북한강 수면에 도립상(倒立像)을 그리고 있다. 열차의 차창 너머로 밀려드는 이 풍경은 마치 병풍을 펼쳐 놓은 듯했다.
나는 경춘선에서 경강역과 강촌역 부근의 강변 풍경을 제일로 치고 싶다. 북한강과 북배산, 그리고 46번 도로가 그려내는 풍경은 열차의 통유리창 틀 속에 한 폭의 산수화인 듯 재단되어 비춰진다. 이것은 다른 데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차창 풍경이다. 자연과 근대의 기술이 절묘하게 합작한 풍경이다.
10분 정도의 롱테이크 화면이 차창 가득히 비추어지고 있었다. 영화라면 이즈음에서 이 장면과 꼭 어울리는 배경 음악을 깔았을 것이다. 나는 차내 방송에서 이 풍경과 어울리는 사운드트랙이 흐르기를 기대했다. 차창 풍경의 특징이 소리나 향기, 그리고 기온과 격리된 타자의 풍경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 풍경에 어울리는 음악이나 산수풍경의 해설이 차내 방송으로 흐르는 것을 기대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실행하지 못했지만, 이 산수 풍경을 밤 기차에서 내려다보고 싶다. 46번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불빛과 강변의 카페 불빛이 수면 위에 관능적으로 흔들리는 풍경을 차창으로 보고 싶다. 그 때에도 그 야경에 어울리는 음악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이나 바하의 평균율은 어떨까. 마일즈 데이비드의 트럼펫 연주도 괜찮을 듯하다.
하나 더. 매혹적인 야경을 제대로 보여줄 요량으로 열차 안을 어둡게 해주었으면 한다. 물론 차내 방송으로 풍경 해설이 곁들여지면 금상첨화다.
열차는 강을 따라 느릿하게 진행했다. 동해남부선에서 보는 바다 풍경도 좋고 경부선에서 보는 낙동강 풍경도 좋지만, 이 경춘선을 더 치는 것은 아마도 산수와 어우러진 인경(人境) 때문일 것이다.
열차가 다시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연이어 3개 터널을 순식간에 지났다. 그러자 북한강도 46번 경춘가도도 시야에서 사라졌다. 차창 밖으로 단정한 시가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때 차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다음은 남춘천, 남춘천입니다.”
마치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강영조 동아대학교 도시계획·조경학부 교수 yjkang@mail.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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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의 역(驛) station.zip
청량리 ↔ 성북 ↔ 신공덕 ↔ 화랑대 ↔ 퇴계원 ↔ 사릉 ↔금곡 ↔ 평내 ↔ 마석 ↔ 대성리 ↔
청평 ↔상천 ↔가평 ↔경강 ↔백양리 ↔ 강촌 ↔ 김유정(구 신남) ↔ 남춘천 ↔춘천
☞ 역 이름을 클릭하면 驛舍사진이 보임
1999년 일본의 도에이[東映]영화사가 제작하였다. 제117회 나오키상[直木賞] 수상작인 아사다 지로[淺田次郞]의 단편소설 《철도원(鐵道員)》이 원작이다. 후루하타 야스오[降旗康男]가 감독하고, 다카쿠라 겐[高倉健], 오다케 시노부[大竹しのぶ], 히로스에 료코[廣末凉子] 등이 출연하였다. 상영시간 105분. 설원 지역인 일본 북부 홋카이도의 작은 역사(驛舍)를 배경으로, 아내와 딸을 잃고 혼자 살아가는 지방선 철도원의 일에 대한 사랑과 삶의 회한을 그린 작품이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일본의 작은 시골마을 호로마이에서 평생을 철도원으로 보낸 충실한 남자 오토마츠(다카쿠라 겐). 정년퇴임을 눈앞에 두고 그는 오래 전의 기억을 떠올린다. 17년 전 겨울 어느 날, 아내 시즈에는 기쁜 얼굴로 그를 찾아와 임신 소식을 전하였고, 오랜 기다림 끝에 태어난 딸에게 부부는 '눈의 아이'라는 뜻으로 유키코〔雪子〕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러나 딸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열병에 걸려 죽어 버리고, 아내 시즈에마저 병에 걸려 오토마츠의 곁을 떠나고 만다. 그때마다 역을 지키느라 그들의 곁에 있어 주지 못했던 오토마츠는 이후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살아왔다. 새해 아침, 여느 날과 같이 역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던 그의 앞에 인형을 가슴에 안은 낯선 여자아이가 찾아오는데, 그 아이는 고독했던 오토마츠의 인생에 놀라운 전환을 불러온다.
1999년 일본에서 개봉되자마자 2주 연속 흥행 1위를 기록하면서 450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다. 제23회 일본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 등 9개 부문을 수상하였으며, 몬트리올영화제 남우주연상, 인도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등을 수상하였다. 한국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되었고, 2000년 2월 구정연휴에 개봉되어 총 2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였다.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의 음악과 홋카이도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이 조화를 이루어 서정적이고 정감 어린 분위기를 자아내며 영화의 감동을 더하였다.
영화 鐵道員의 촬영지 "이쿠도라 역"/幾寅駅(극중의 호로마이 역/幌舞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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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한 하늘만큼 높은 '마음밭'
사실 의례적으로 하는 불우이웃돕기 실적보고를 위해 직원들과 얼마씩 각출해 쌀과 라면 상자 등을 전달할 땐 형식적이었지요. 그런데 막상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을 만나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콘센트 건물에서 변변한 취사도구조차 없이 혼자 지내면서도 법적인 부양자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생계지원을 받지 못하는 분들 사정이 딱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착안한 것이 국화축제. 당시 금곡역장으로 있던 그는 기차역의 분위기를 화사하게 하기 위해 직원들과 함께 역사에 놓을 국화를 재배하고 있었다.
기왕에 재배하는 국화의 양을 좀더 늘려 사람을 모으는 도구로 삼는 한편 이웃돕기성금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국화화분으로 답례를 하면 좋겠다 싶었던 것. 그 때부터 그와 직원들의 손길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화화분만으로는 사람을 모으는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도 들고 이왕 벌인 일, 지역주민이 모두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축제다운 축제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든 그는 사람들의 흥을 돋워줄 가수들을 직접 섭외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 행사를 위해 지원된 예산은 이백만 원 가량. 그 돈으로는 진행경비를 대기에도 빠듯해서 준비단계에서 이미 사재를 털어 넣기 시작한 그에게 초대가수를 위한 출연료를 따로 책정할 수는 없는 일. 그 때부터 그는 미사리 등지의 카페를 돌아다니며 무료로 공연해줄 가수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무리 무료섭외지만 그래도 지명도가 있는 사람을 모셔야겠다 싶어서 이름난 가수들만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남들은 돈을 수백만 원씩 들고 섭외를 하는 마당에 공짜로 해달라고 하니 아무리 좋은 일이라지만 대부분 거절당하기 일쑤였죠. 그래도 끈덕지게 쫓아다녔습니다.
그 분들이 출연하는 시간에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박수와 환호성을 울리면서 열성팬 노릇을 하기도 하고 가수 송창식 씨 같은 경우는 일주일동안 식사할 때도 따라다니면서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열성 덕분에 지역주민들은 모처럼 유명가수들의 무료 콘서트를 즐길 수 있었고 어렵게 섭외된 송창식 씨의 경우는 애초 두 곡만 부르기로 했다가 무려 여섯 곡을 부르고서야 경찰의 도움을 받아서야 자리를 뜰 수 있을 정도로 주민들의 호응도도 높았다.
그리고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치른 행사를 통해 거둬진 성금은 남양주시 사회복지과를 통해 정작 도움이 필요하지만 법적인 요건이 모자라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독거노인들과 불우 이웃들에게 전달돼 요긴히 쓰일 수 있었다.
지난 99년 그렇게 처음 시작된 금곡역의 국화축제는 지난해 말 그가 가평역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4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행사의 산파이자 주역 역할을 했던 그가 자리를 옮긴 탓이었을까, 올해는 행사가 계획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고.
하지만 그가 새로 책임을 맡은 가평역에서는 지난 5월에 이미 이웃돕기 바자회를 기획해 소년소녀 가장들과 장애인 보호시설인 등대마을에 220여만 원의 성금을 전달하는 행사를 가진 바 있다. 다만 바자회라는 특성상 지역상인들과의 이해관계가 상반돼 반대여론도 있는 만큼 행사를 계속 이어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어서 지금은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철도원 생활 27년째인 그의 유일한 취미는 등산이다. 작년부터 시작한 백두대간 횡단을 반쯤 마친 그가 산을 오르는 까닭은 마음을 비우고 다스리기 위해서라고. 그렇게 비우다보면 아마 머지않아 국화축제 못지 않은 또다른 이웃돕기 행사가 가평역의 광장을 채울 터. 덕분에 그가 선 철길과 기차역은 사람과 화물은 물론이고 따뜻한 이웃사랑도 함께 오고 가는 사랑역, 사랑길이 된다.
글 박남규 사진 최지현
[한국의 명풍경을 찾아서] 경춘선
한 편의 영화처럼, 열두 폭의 병풍화처럼 폭력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차창 풍경
열차는 마치 팽팽히 당긴 옷감을 단숨에 자르는 가위처럼 도시를 두 쪽으로 갈라놓으면서 전진했다. 차창에는 도시의 절단면이 거침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속력을 더하자 예리하게 잘려나간 도시의 단면은 이윽고 형체를 잃어버리고 다만 광선의 다발로 변하여 시야의 뒤편으로 빠르게 사라져 갔다. 차창 밖에는 북한산이 보였지만, 이내 멀어졌다.
성북역을 지난 열차는 본격적으로 속력을 내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청량리 발 춘천행 경춘선에 몸을 싣고 있었다. 경춘선은 2시간 거리다. 영화 한 편 볼 시간의 거리다.
폭력, 그러나 매혹
금곡역에서 1분 정도 정차한 열차는 서서히 역구내를 벗어났다. 퇴계원역에서 8분 후에 도착한 역이다. 본격적으로 전원풍경이 펼쳐졌다. ‘경춘선’이라는 영화가 전개되는 부분이다.
역을 지나 열차가 속도를 높이자 야트막한 산자락이 서서히 다가오더니 이내 뒤로 사라졌다. 산 능선도 덩달아 춤추듯이 일어섰다가는 앉기를 리드미컬하게 반복했다. 차창에 그 지형의 단면이 보였다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깜깜해졌다. 터널 속으로 진입한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철도는 폭력과 매혹이라고. 폭력이거나 매혹이거나. 영화 제목 같은 이 말은 철도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철도와 같은 궤도계 교통은 회전반경이 크고 마찰 저항을 줄이려고 평탄한 선로를 선택한다. 또 가급적 직선으로 달려야 에너지 소모가 적으므로 선로가 놓이는 지형은 성토와 절토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평탄지가 된다. 깊숙이 절단된 산협(山峽)과 하천을 뜬금없이 가로지르거나 진행을 가로막는 지형을 터널로 관통하는 것이 철도 선로에서는 상례다. 심지어 도시조차 갈라놓는다. 여태까지 그 어떤 교통수단도 보여주지 않았던 폭력적인 모습이다.
꽤 긴 시간을 어둠 속을 헤쳐 나온 듯했다. 하지만 터널 속에 머물렀던 시간은 기껏해야 40초 정도였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느닷없이 고층 아파트가 나타났다. 터널 바깥에서는 산속 깊이 진입하던 분위기였는데 난데없이 도회지의 모습이라니. 멀리 천마산이 고층 주거단지 뒤에 배경으로 서 있었다.
하지만 철도는 그때까지와는 다른 시선을 가져다주었다. 직선으로 관통하는 성질을 가진 선로 위에서 보는 풍경은 산하의 풍경적 질서가 연속적으로 변하는 고전적 풍경 체험과는 판이하다.
도시와 전원, 그리고 강과 산을 직선으로 관통하는 열차의 시선은 풍경의 서열적 배열을 비맥락적으로 관통한다. 강과 모래 바닥과 강 언덕과 강촌이라고 하는 수변 마을의 풍경적 질서는 제방과 터널로 강을 가로지르고 산을 뚫고 지나가는 선로에 의해 해체된다. 강물 위를 지나는가 했더니 느닷없이 터널 속으로 진입하고, 그 어둠 속을 빠져나오면 일순에 산촌으로 우리의 몸을 강제적으로 이동한다.
그렇지만 선로에 의하여 비의도적으로 편집된 산하 풍경은 여태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풍경이다. 철도가 발명한 새로운 풍경에 끌린 사람들의 얘기는 근대 철도사에서 빠지지 않는 대목이다.
간이역과 경춘가도는 경춘선의 별미
금곡역을 떠난 열차는 14분 후 마석역에 도착했다. 대개 경춘선 무궁화 호는 10분 간격으로 정차한다. 마땅히 근거가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10분 간격의 정차는 경춘선의 풍경을 즐기기에는 적당한 간격인 것 같다. 금곡~마석 사이는 경춘선 무궁화호에서 정차 역의 간격이 가장 긴 구간이지만 터널을 두 개나 거친 탓인지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단출한 역사(驛舍)가 차창 너머로 보였다. 경춘선의 간이역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경강역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경강역의 소박하고 애틋한 분위기에 끌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은 마석역에 눈을 빼앗기고 말았다.
단정하게 깎은 관목 화단 사이로 키 낮은 좌우 대칭의 역사가 서 있고, 그 중심 부분에 진달래가 활짝 꽃을 피우고 단정히 서 있었던 것이다. 열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화분에 담긴 그 한 그루의 진달래꽃은 처녀처럼 고개를 약간 숙인 것 같았다.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마석역을 나온 경춘선은 시가지 풍경을 보여주더니 머재굴, 아미기굴을 지나자 그때까지 열차의 오른쪽으로 달리고 있던 46번 도로가 이제는 왼쪽으로 자리를 바꾸어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자동차도로로 손꼽는 경춘가도다. 진행 방향의 왼쪽에 나타났던 경춘가도는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직선으로 활주하는 경춘선 열차를 두고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자리를 바꾸는 경춘가도는 마치 아이스댄싱을 추고 있는 듯하다. 뽀로통하여 종종걸음으로 달아나는 연인의 환심을 사려는 듯 조바심 내며 다가서는 광경을 연기하는 아이스 댄서처럼 경춘가도는 직선으로 질주하는 경춘선을 따라 나란히 달렸다가는 가로질러 자리를 바꾸고, 또 다시 산그늘 뒤로 숨었다가는 다시 다른 쪽에서 나타났다.
대성리역을 지나자 근경의 나뭇가지 사이로 보였던 경춘가도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경춘가도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열두 폭 병풍화를 보는 듯
경춘선 무궁화호가 가평역을 빠져 나온 것은 청량리역을 출발한 지 1시간 20분 후였다. 역구내를 벗어난 열차는 오른쪽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나아간다. 산의 끝자락을 빠져나오자 시계가 탁하고 열렸다. 강 위였다. 북한강이다. 청평역에 가까워지면서 오른쪽 창문으로 힐끗힐끗 보였던 북한강이었다. 이 강을 건너면 강원도에 들어선다. 지금부터 경춘선은 북한강을 끼고 달린다. 러닝타임 2시간짜리 영화 경춘선의 절정에 접어든 것이다.
경강역을 지나자 차창 밖에는 북한강과 다시 모습을 드러낸 46번 국도가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그 뒤로 북배산이 우뚝 솟아 있었다. 잡음처럼 시야를 방해하던 근경의 나무조차 없었다. 다행이었다. 파노라믹한 풍경이 열차와 함께 천천히 움직였다. 삼각형의 산 그림자가 거울 같은 북한강 수면에 도립상(倒立像)을 그리고 있다. 열차의 차창 너머로 밀려드는 이 풍경은 마치 병풍을 펼쳐 놓은 듯했다.
나는 경춘선에서 경강역과 강촌역 부근의 강변 풍경을 제일로 치고 싶다. 북한강과 북배산, 그리고 46번 도로가 그려내는 풍경은 열차의 통유리창 틀 속에 한 폭의 산수화인 듯 재단되어 비춰진다. 이것은 다른 데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차창 풍경이다. 자연과 근대의 기술이 절묘하게 합작한 풍경이다.
10분 정도의 롱테이크 화면이 차창 가득히 비추어지고 있었다. 영화라면 이즈음에서 이 장면과 꼭 어울리는 배경 음악을 깔았을 것이다. 나는 차내 방송에서 이 풍경과 어울리는 사운드트랙이 흐르기를 기대했다. 차창 풍경의 특징이 소리나 향기, 그리고 기온과 격리된 타자의 풍경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 풍경에 어울리는 음악이나 산수풍경의 해설이 차내 방송으로 흐르는 것을 기대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실행하지 못했지만, 이 산수 풍경을 밤 기차에서 내려다보고 싶다. 46번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불빛과 강변의 카페 불빛이 수면 위에 관능적으로 흔들리는 풍경을 차창으로 보고 싶다. 그 때에도 그 야경에 어울리는 음악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이나 바하의 평균율은 어떨까. 마일즈 데이비드의 트럼펫 연주도 괜찮을 듯하다.
하나 더. 매혹적인 야경을 제대로 보여줄 요량으로 열차 안을 어둡게 해주었으면 한다. 물론 차내 방송으로 풍경 해설이 곁들여지면 금상첨화다.
열차는 강을 따라 느릿하게 진행했다. 동해남부선에서 보는 바다 풍경도 좋고 경부선에서 보는 낙동강 풍경도 좋지만, 이 경춘선을 더 치는 것은 아마도 산수와 어우러진 인경(人境) 때문일 것이다.
열차가 다시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연이어 3개 터널을 순식간에 지났다. 그러자 북한강도 46번 경춘가도도 시야에서 사라졌다. 차창 밖으로 단정한 시가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때 차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다음은 남춘천, 남춘천입니다.”
마치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강영조 동아대학교 도시계획·조경학부 교수 yjkang@mail.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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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의 역(驛) station.zip
청량리 ↔ 성북 ↔ 신공덕 ↔ 화랑대 ↔ 퇴계원 ↔ 사릉 ↔금곡 ↔ 평내 ↔ 마석 ↔ 대성리 ↔
청평 ↔상천 ↔가평 ↔경강 ↔백양리 ↔ 강촌 ↔ 김유정(구 신남) ↔ 남춘천 ↔춘천
☞ 역 이름을 클릭하면 驛舍사진이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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