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지위는 애매모호하다. 나라인 듯 나라 같지 않은 나라다. 고산 윤선도가 오우가(五友歌)에서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라고 노래한 대나무 같은 존재다. 국가의 3요소인 영토, 국민, 주권 모두 갖췄지만 유엔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대만을 국가로 인정해 국교를 맺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 200여 개국 중 20여 개국에 불과하다. 그나마 남태평양과 중남미의 작은 나라들이고, 눈물겨운 대만의 달러외교 덕분에 겨우 가능한 일이다.
대만은 국제행사나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스포츠 무대에서 국호(중화민국), 국기(청천백일기), 국가(삼민주의가)를 사용하지 못 한다.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 때문이다. 중국과 대만 정부는 1992년 하나의 중국 원칙에 합의한 ‘92 공식(共識)’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대만은 참석기회조차 별로 주어지지 않는 국제무대에서 중화타이베이란 이름으로 활동한다. 깃발도 국화인 매화 바탕에 국가 문장을 넣은 중화타이베이기를 사용한다.
다국적 9인조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인 멤버 쯔위(17)가 국내 방송프로그램에서 청천백일기를 흔든 것을 두고 한국과 중국, 대만에서 논란이 뜨겁다. 중국 진출 등을 겨냥해 만든 걸그룹이 중국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렸으니 난리가 났다. 쯔위를 모델로 한 중국 상품 광고 계획은 끝내 물거품이 됐다. 대만인이 대만 국기를 흔든 게 무슨 잘못이라고 당사자인 쯔위는 물론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도 머리를 조아렸다.
쯔위는 IS에 잡힌 인질마냥 사과 아닌 사과 같은 사과를 해야 했다. 그는 중국은 하나밖에 없고, 자신을 대만인이 아닌 중국인이라고 했다. 거대시장 중국의 힘이고, 중국을 거부할 수 없는 우리의 서글픈 현실이기도 하다. 야반도주식 국교단절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앙금이 깊은 대만인들 사이에 이번 일로 또다시 반한감정이 일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대만도 주요한 한류시장이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 ----------------------------------- 현재 중화민국(대만)은 아프리카 3개국, 유럽 1개국, 오세아니아 6개국, 중남미 12개국의 총 22개국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별표는 타이완 현지에 대사관이 설립된 국가를 나타낸다
아프리카 (3개국) 부르키나파소* (1961,1994) 상투메 프린시페* (1997) 스와질란드* (1968)
유럽 (1개국) 바티칸 시국* (1942)
오세아니아 (6개국) 키리바시* (2003) 마셜 제도* (1998) 나우루* (1980,2005) 팔라우* (1999) 솔로몬 제도* (1983) 투발루* (1979)
'섭섭해진 옛 친구'…대만대사관 철수 (서울=연합뉴스) 1992년 9월23일 서울 명동에 있던 대만대사관이 완전히 철수했다. 대만 측은 이날 오전 대사관 열쇠를 한국 외무부에 넘겨준 뒤 연락 직원 2명만 남겨둔 채 전원 귀국했다. 타이베이에 있던 한국대사관도 같은 날 인근 아파트에 있는 대사관저로 철수했다.
한 달 전 8월24일에 있었던 한국의 중국 수교와 대만 단교는 멀게는 한국이 북방정책을 추진할 때부터, 가깝게는 노태우 대통령이 사실상 임기 마지막 해인 "1992년 내 추진"을 공언했을 때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일본은 1972년, 미국은 1979년에 이미 대만과 단교했으니 한국이 빠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대만의 서운함은 극에 달했다. 1990년 사우디아라비아와 단교한 뒤 아시아 유일한 수교국인 한국의 비중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단교를 미루려고 외교력을 집중했다. 한국은 중국과 수교 직전까지 대만에 공식 통보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한때 고위급 외교 사절단을 파견해 대만의 양해를 구하는 방법을 고려했지만, 그럴 경우 북한에 정보가 새나갈 수 있고 명동 대사관 터와 건물을 중국에 넘겨주기 어려울 수 있다고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은 수교 6일 전인 8월18일 진수지(金樹基) 주한 대만 대사에게 비공식 통보한 데 이어 21일에야 공식 발표했다. 중국이 같은해 7월15일 북한에 첸치천(錢其琛) 외교부장을 보내 양해를 구한 점에 비춰볼 때 한국의 처사가 미흡했다는 지적도 있다. 대만 총통 장제스(蔣介石·1887∼1975)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많은 지원을 했고, 정부 수립 후에도 마찬가지였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대만의 강한 반발에는 다른 사정도 있었다. 집권 국민당은 1986년에 창당한 민진당의 도전과 민주화 요구에 직면하고 있었다. 1992년말 입법원 선거(총선)를 앞두고 한국에 불만을 쏟아내는 것으로 위기를 돌파하려 했다는 지적도 있다.
1885년 하나의 성(省)으로 독립하였고, 청일전쟁 뒤 일본 최초의 해외 식민지가 되었으며, 1949년 중국공산당과의 내전에 패배한 국민당의 장제스 정권이 이전해왔다.
세계 각국이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여 국제적 고립화가 진행되었으며, 중국은 타이완섬과 그에 부속된 섬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일반사항 o 면적 : 약 3.6만 km(남한의 약1/3) - 대만을 포함, 펑후(澎湖), 찐먼(金門), 마주(馬祖) 등의 79개 도서로 구성 o 인구 및 종족 : 2,338만명(타이뻬이 269만명) - 대륙인 14%, 대만인 84%, 원주민 2% o 종교 : 불교, 기독교, 천주교, 도교 o 언어 : 북경어(공용어), 민난어(대만 방언), 객가어(중국 남방지역 방언) o 기후 : 아열대성 해양기후(여름 33℃,겨울 13℃ 평균) o 지형 : 대부분이 산악지역(경작가능 면적 비율: 24%)
정치현황 o 통상명칭 및 수도 - 臺灣(Taiwan), 臺北(타이뻬이, Taipei) o 정치체제 및 정당 - 국체 및 정체 : 입헌민주공화제 - 주요 인사 총통 : 마잉주(馬英九 12.5.20 연임) 부총통 : 우둔이(吳敦義) 행정원장 : 장이화(江宣樺) 입법원장 : 왕진핑(王金平) 외교장관 : 린융러(林永樂) - 주요 정당 중국국민당(여당), 민주진보당(제1야당), 친민당, 대만단결연맹 등
경제현황(2013) o GDP : 4,892.1억불 - 1인당 GDP : 20,958불 o 경제성장률 : 2.2% o 교역(2013) - 총교역액 : 5,734억불 - 수 출 : 3,033억불 - 수 입 : 2,701억불 - 무역수지 : 332억불 흑자
우리나라와의 관계
o 양자관계 현황 - 1948.8 외교관계 수립 - 1992.8 외교관계 단절 - 1993.7 비공식관계 수립합의 후 상호대표부 설치 운영 * 주 타이뻬이 한국대표부(‘93.11월) 주한 타이뻬이대표부(‘94.1월) 한-대만간 경제통상 현황(2013) o 교역 - 총교역액 : 303.3억불 - 對대만 수출 : 157억불 - 對대만 수입 : 146.3억불 - 무역수지 : 10.7억불 * '13년 기준 대만은 한국의 6위 교역상대국 o 투자 - 對대만 투자 : 6.1억불 - 對한국 투자 : 12.4억불 o 인적교류(89.6만명) - 대만방문 한국인 : 35.1만명 - 한국방문 대만인 : 54.5만명 ※ 2003.1.25부터 대만 방문 우리 국민에 대한 무비자 입국(30일) 실시 o 항공기 운항(인천-타이뻬이노선) - 우리 국적기 : 주 18회 - 대만 항공기 : 주 20회 이상 ※ 한?대만 정기노선 복항(우리 국적기: 2004.12월,대만 국적기 2005.3월) o 재외교민 - 대만 체류 우리 교민 약 4,430명 (유학생, 영주교민, 상사주재원 등) - 한국 체류 대만인 약 30,400명
차이잉원은 16일 저녁 당선 소감을 밝힌 인터뷰에서 향후 일관되고 예측 가능한 양안관계 구축을 약속하며, 타이완의 민심과 공통된 인식을 존중하여 양안의 관계 유지와 평화, 안정된 현 상태를 유지하는데 힘써 타이완 국민의 이익과 복지 증진에 주력할 것이라고 강조함.
□ 2016년 타이완 총통 선거 분석
○ 국민당 ‘敗’, 민진당 ‘勝’ - 1월 16일, 타이완에서 열린 총통선거와 입법위원 선거에서 국민당(國民黨)이 잇달아 패배의 고배를 마시며, 야당으로 밀려남. - 총통선거 개표 결과, 민진당(民進黨) 주석 차이잉원이 타이완의 총통, 천젠런(陳建仁)이 부총통으로 당선됨.
- 각 당의 득표수 차이는 민진당 56.1%, 국민당 31%, 친민당(親民黨) 12.8%로 민진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둠. - 타이완의 총통 선거는 4년마다 한번씩 열리며, 2012년 총통선거에서는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민진당 차이잉원, 친민당 송추위(宋楚瑜)가 참여한 가운데 국민당 마잉주가 당선됨. - 마잉주가 2008년,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총통직을 연임하며 국민당이 줄곧 여당으로 활약해 왔으나, 양안관계 개선에 힘쓰고 내정을 소홀히 하면서 대내적으로 민심을 잃기 시작해 2016년 총통선거에서 국민당의 득표수는 2012년의 절반으로 뚝 떨어짐. - 이번 타이완 총통선거 결과에 대해, 양안 학자들은 이번 선거가 민진당의 ‘승리’라기 보다 민심을 잃은 국민당의 ‘실패’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견해임. - 국민당은 2014년 11월에 열린 ‘구합일(九合一)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에게 대패하며 이미 민심이 돌아섰음을 명백히 인식했지만, 이에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잦은 내부적 정치싸움을 일으켜 지지자들을 실망시킴.
○ 타이완의 첫 여성총통, 차이잉원(蔡英文)의 정치 역정 - 차이잉원은 법률 전문가로서 타이완 정치계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아왔음. - 1956년 출생한 차이잉원은 1978년 타이완대학(臺灣大學) 법률학을 전공하였고, 졸업 후 1984년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The 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음. - 1984년-1991년 정치대학(政治大學) 법률학과 및 법률연구소에서 부교수, 교수로 있다가 1988년 타이완 경제부 국제무역국(經濟部國貿局)’의 고문으로 임명됨. - 1991년-1993년 동우대학(東吳大學) 법률연구소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93년 경제부 무역조사위원회 위원이자 국제경제무역조직 특별안건(TF)팀의 고문을 맡음. - 1994년 대만 행정원(行政院) 대륙사무위원회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어 ‘홍콩-마카오 관계조례 초안작성연구팀(港澳關系條例起草硏究小組)’를 이끌기도 했음. - 1995년-1998년 행정원 공정무역위원회 위원, 경제부 무역조사위원회 위원, 대륙위원회 자문위원, 경제부 GATT입회자문 고문, APEC 무역투자위원회 서비스산업팀 팀장 등 여러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함. - 1998년 리덩후이(李登輝)와 함께 ‘양국론(兩國論: ‘하나의 중국’과 반대되는 견해로, 대만과 중국을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로 정의)’ 기안에 참여했으며, 1999년 ‘국가통일위원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음. - 차이잉원은 2004년 민진당에 입당하여 그 해 12월 제6회 민진당 비례선거구(不分區) 입법위원(立委)으로 당선됨. - 2006년 1월 -2007년 5월 행정원 부원장을 역임했고, 2008년 민진당 주석 선거에서 2만여 표로 민진당 최초 여성 주석으로 당선됨. - 2012년 차이잉원은 민진당을 대표하여 타이완 총통 후보자로 나섰으나 국민당 마잉지우에게 패함.
□ 차이잉원 당선 이후, 양안관계 전망
○ 양안관계에 대한 차이잉원의 정치적 견해 - 양안관계에 대해 국민당 주리룬(朱立論) 후보자는 ‘9.2공동성명(九二共識)’과 양안의 평화발전을 피력한 반면, 차이잉원은 ‘現 상태 유지’라는 입장을 견지함. - 차이잉원은 그 동안 ‘양국론’ 추진 등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있어 비교적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음. - 총통선거를 앞두고 차이잉원은 양안관계에 대해서 타이완의 현 상황을 감안하여 안정적인 관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하며, 도발이나 돌발상황을 일으키지 않고 대화와 소통을 통해 현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음. - 차이잉원은 여전히 9.2공동성명과 ‘하나의 중국’이라는 정치적 견해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바 없어, 향후 양안관계의 불확실성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임. - 하지만 최근 타이완이 산업의 국제경쟁력 저하, 수출 부진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인 만큼 이번 총통선거에 대한 민심이 양안관계보다 타이완의 대내적 경제, 사회적 이슈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 차이잉원의 당선에 비교적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임. - 이번 선거에서 차이잉원은 타이완의 성장동력 부족과 불평등한 부의 분배, 젊은 세대들의 진취성 미흡 등 경제, 사회적 문제 해결을 강조하는 공략을 통해 젊은 층의 표심을 공략함. - 차이잉원은 16일 저녁 당선 소감을 밝힌 인터뷰에서 향후 일관되고 예측 가능한 양안관계 구축을 약속하며, 타이완의 민심과 공통된 인식을 존중하여 양안의 관계 유지와 평화, 안정된 현 상태를 유지하는데 힘써 타이완 국민의 이익과 복지 증진에 주력할 것이라고 강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