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역사속으로

비목(碑木)

marineset 2023. 6. 6. 11:12

 

UPDATED.2023-06-06 10:32 (화)

 

국민가곡 '비목'의 탄생 비화, 이랬구나

청년 장교 시절 작사한 한명희씨가 말하다 "이런 사람은 이 노래를 부르지 말라"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평화로 3481-70 비목공원에 있는 "비목" 모습으로 6.25전쟁 당시 죽어간 젊은이들의 비애를 느낄 수 있는 사진이다. 빼대만 앙상하게 남은 관솔위에 걸린 녹슨 철모와 가시철조망이 분단된 조국의 비극을 말해주고 있다. ⓒ 오문수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위 가사는 전국민이 사랑하는 가곡 <비목>의 노랫말이다. '비목'이란 말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비목'이 무슨 뜻인지 선뜻 와 닿지 않는다. 사전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들어있었다.

'비목(碑木)'은 "죽은 이의 신원 따위를 새겨 무덤 앞에 세우는 나무로 만든 비(碑)"를 뜻한다. 비목은 보통 죽은이의 무덤 앞에 세워 고인의 신상을 기록해 둔다. 하지만 작사자 한명희의 노랫말속에 나오는 비목은 6.25전쟁 당시 산화한 무명용사의 돌무덤 앞에 세워진 것으로 전사자에 대한 기록도 없다.

1960년대 강원도 최전방 DMZ수색중대 초소장으로 근무했던 당시의 한명희 모습 ⓒ한명희

비목에 녹슨 철모를 걸어둔 '비목공원'은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평화로에 있다. 평화의 댐 인근에 있는 비목공원에서는 '비목' 노랫말을 지은 청년장교 한명희가 근무했던 백암산 정상이 보인다.



한국전쟁 당시 죽어간 무명용사의 돌무덤에 가슴 아파한 청년장교 한명희

1960년대 중반 ROTC 육군 소위로 수색중대 DMZ의 초소장으로 근무하던 한명희는 어느날 우연히 잡초 우거진 곳에서 무명용사의 녹슨 철모와 돌무덤 하나를 발견했다. 그는 자기 또래의 젊은이가 조국을 지키다 스러져간 걸 안타까이 여겨 노랫말을 지었고, 가까이 지내던 작곡가 장일남이 이 노랫말에 곡을 붙여 가곡 <비목>이 탄생하게 되었다.

1960년대 DMZ초소장으로 근무한 한명희 씨가 작사한 <비목> 가사가 새겨진 기념석으로 비목공원에 세워져 있다 ⓒ오문수

지난달 10월의 어느 주말 일행과 함께 북한강 일대를 돌아보며 평화의 댐을 구경하다 인근 비목공원에 들렀다. 묵념을 하고 바위에 적힌 비목가사를 보며 노래를 합창한 후 언덕위에 세워진 나무와 녹슨 철모를 본 순간 가슴이 아려왔다.

죽은 소나무의 약한 부분이 썩어 떨어지고 앙상한 관솔만 남은 비목 위에 걸린 녹슨 철모. 사람들이 가까이 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세워둔 가시철조망이 필자를 더욱 더 가슴 아프게 했다. 한반도를 남북으로 가른 DMZ 철조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 죽어간 젊은이들의 영면을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이렇게 아름다운 노랫말을 지은 한명희 선생님을 만나보고 싶다"고 혼잣말을 하고 있는데, 옆에 섰던 한 분이 "제가 한명희 선생님을 아는데요"라고 해 연락처를 받아 한명희씨에게 질문지를 보내고 10장 가까이 되는 답장을 받았다. 한명희씨가 보낸 글을 바탕으로 가곡 '비목'이 탄생한 그때를 보다 자세히 적고자 한다. 



가곡 '비목' 작사가가 직접 밝힌 탄생 비화 

< 비목>이 잉태된 지역은 화천 북방 백암산 우전방으로 행정구역상 철원군 원동면이었다. 철원 금성지역에서 흘러내리는 금성천이 북한강 상류와 합류되는 지점이 그의 근무지역이었다.

남쪽 백암산이나 대성산, 북쪽의 김일성 고지나 오성산은 지형적 조건으로 보나, 파로호의 구만리 발전소를 쟁취하려는 피아간의 군사적 전략으로 보아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는' 격전지다.

한명희씨가 근무할 당시 막사 주변 빈터에 호박이나 야채를 심을 생각으로 조금만 삽질하면 여기저기서 뼈가 나오고 해골이 나왔다. 땔감을 위해서 톱질하면 간간이 톱날이 망가지면서 파편이 나왔다. 순찰할 때면 계곡과 능선 곳곳에 썩어빠진 탄피 조각이며 녹슨 철모 등이 나뒹굴고 있었다.

어느 날 그 격전의 능선에서 개머리판이 거의 썩어가고 총열만 생생한 카빈총 한 자루를 주워왔다. 깨끗이 손질해 옆에 두고 곧잘 그 주인공에 대해서 가없는 공상을 이어갔다. 전쟁 당시 M-1 소총이 아닌 카빈의 주인공이면 소대장급에 계급은 소위였다. 그렇다면 영락없이 자신과 똑같은 20대 한창 나이의 초급장교로 산화한 것이 아닌가? 

그는 카빈소총의 주인공에 대해 궁금증을 이어나갔다. 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처럼 먼 고향의 아내는? 아니! 그리운 초동친구는? 애틋하게 그리운 연인, 인자하신 양친, 장래의 진로, 사랑의 설계, 인생의 꿈은?

이렇게 왕년의 격전지에서 젊은 비애를 앓아가던 초가을의 어느 날 잡초 우거진 산모롱이를 돌아 양지바른 비탈길을 지나다 흙에 가려진 돌무더기 하나를 만날 수 있었다. 필경 사람의 손길이 간 듯한 흔적으로 보나 푸르칙칙한 이끼로 보나 세월의 녹이 쌓이고 팻말인 듯 나뒹구는 썩은 나무등걸을 보면 예사로운 돌들이 아니었다.

그렇다! 그것은 결코 절로 쌓인 돌이 아니라 뜨거운 전우애가 감싸준 무명용사의 유택이었음에 틀림없다. 어쩌면 그 카빈총의 주인공, 자랑스러운 육군 소위계급장 번쩍이던 꿈많던 젊은 장교의 증언장이었음에 틀림없다.

 


작곡가 장일남으로부터 가사를 의뢰 받아 쓴 시

제대 후 TBC 음악부 PD로 근무하면서 우리 가곡에 관심을 쏟던 어느날 방송일로 자주 만나는 장일남씨로부터 신작 가곡을 위한 가사 몇 곡을 의뢰받았다. 한명희씨는 곧바로 군 시절 보았던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첩첩산골 이끼 덮인 돌무덤 옆에는 새하얀 산목련이 있었다. 그는 이내 화약 냄새가 쓸고 간 그 깊은 계곡 양지녘 이름 모를 돌무덤을 포연에 산화한 무명용사로, 그리고 비바람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이 그 무덤가를 지켜주고 있는 그 새하얀 산목련을 주인공 따라 순절한 여인으로 상정해 사실적 어휘들을 문맥대로 엮어 시를 써내려갔다.

비목공원에 있는 "비목탑"으로 6.25전쟁 당시 유엔군으로 참전해 죽어간 외국군인들을 기리는 탑이다 ⓒ오문수
워싱턴소재 한국전쟁 메모리얼 기념관에는 6.25당시 가장 치열했던 장진호 전투 당시를 재현한 기념물이 있다. 인근 벽에는 6.25당시 미군 54,246명, 유엔군 628,833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적혀 있었다 ⓒ오문수

2절의 노랫말에 나오는 '궁노루'는 향수로 쓰인다는 '사향노루'이다. 어느 날 새끼 염소만한 궁노루 한 마리를 잡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사향노루 수놈을 잡고 난 날부터 홀로 남은 암놈이 매일 밤 울어대는 것이었다. 그 당시의 회한을 필설로 대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가녀린 체구에 목멘 듯 캥캥거리며 애절하게 울어대니, 정말 며칠 밤을 그 잔인했던 살상의 회한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더구나 수정처럼 맑은 산간계곡에 소복한 누님 같은 새하얀 달빛이 쏟아지는 밤이면 그 놈도 울고 그도 울고 철새도 날아다니며 온 산천이 오열했다. '궁노루 산울림 달빛처럼 흐르는 밤'이라는 2절 가사에는 바로 이 같은 단장의 비감이 서려 있다.

20대에 1960년대 강원도 최전방 DMZ 초소장으로 근무하던 한명희씨는 올해 80세가 되었다. 지금도 열심히 사회활동을 하는 한명희씨는 <비목>이 아무에게나 불리워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다음은 그가 "<비목>노래를 부르지 말았으면" 하고 선정한 사람들이다.

1960년대 중반 20대 청년장교로 강원도 최전방 DMZ에 근무하면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가곡 중 하나인 <비목>을 탄생시킨 한명희씨는 80이 된 지금도 열심히 사회활동 중이다 ⓒ오문수

"숱한 젊음의 희생 위에 호사를 누리면서도 순전히 제 잘난 탓으로 돌려대는 한심한 사람. 시퍼런 비수는커녕 어이없는 우격다짐 말 한 마디에도 소신마저 못 펴는 무기력한 인텔리. 풀벌레 울어대는 외로운 골짜기의 이름 없는 비목의 서러움을 모르는 사람. 고향 땅 파도소리가 서러워 차라리 산화한 낭군의 무덤가에 외로운 망부석이 된 백목련의 통한을 외면하는 사람.

겉으로는 호국영령을 외쳐대면서도 속으로는 사리사욕에만 눈이 먼 가련한 사람. 국립묘지의 묘비를 얼싸안고 통곡하는 혈육의 정을 모르는 비정한 사람. 숱한 싸움의 희생 아닌 것이 없는 순연한 청춘들의 부토 위에 살면서도 아직껏 호국영령 앞에 민주요, 정의요, 평화의 깃발을 한 번 바쳐보지 못한 못난 이웃들."

그는 위와 같은 사람들에게 <비목>을 부르지 말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제발 그대만은 <비목>을 부르지 말아다오. 죽은 자만 억울하다고 초연에 휩싸여간 젊은 영령들이 진노하기 전에!"

 

  • 입력 2019.11.01 21:19
  • 수정 2019.11.02 18:40
  • 기자명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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