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食客散策

食客散策 *순라길

marineset 2023. 6. 3. 05:43
 

 

 
한의사 후배와 함께 가서 명함을 주고  왔다. 순라길을  찾은 객들을 기억하려고 받는단다. 현대 사옥이 근처에 있다보니 홍어 좋아하는 임직원들은 다 다녀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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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쬐그만 집이지만 맛이 큰집 - 홍어의 명가’ 순라길의 주인인 김부심여사의 명함에 적혀있는 말이다.


1. 위치 : 서울 종로구 권선동, 전화번호 02-3672-5513


2. 찾아가기 : 종로 3가에는 종묘가 있다. 이 종묘를 가운데 두고 양족으로 빙 둘러 있는 골목길이 순라길이다. 사극을 보다 보면 야경을 도는 순라군이 딱딱이를 치면서 순찰을 도는 것을 본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그 길이 지금의 순라길인 것이다.
홍어전문점 [순라길]은 종묘를 정면으로 바라다 보고 왼쪽 골목을 따라 창덕궁까지 가다 보면 거의 마지막 부분에 있다.


덕수궁 돌담길이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길이라면 순라길은 서민 정취가 물씬 풍기는 예스러움 가득한 돌담길이다.


조선 왕조 정통 가계, 이씨 왕가의 신주를 모신 곳 종묘. 종묘를 둘러싼 담장을 따라 형성된 길이 순라길이다. 순라(巡邏)는 조선시대 도둑과 화재를 막기 위해 돌던 야간 순찰을 뜻한다. 당시 순라군들은 밤 10시경부터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종묘와 궁중, 도성 둘레를 순찰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이곳이 순라길이라 불리는 이유는 동쪽 궁궐인 창덕궁 순찰을 담당했던 좌순청(左巡廳)이 지금의 종로 3가역 근처에 있었기 때문. 
 




                  ▲ 순라길은 종묘를 기점으로 서순라길과 동순라길로 나뉜다 / 그래픽=최지웅 연결지성센터 연구원


 


지하철 1·3·5호선 종로 3가역 11번 출구로 나가 동대문 방향으로 150m를 걸으면 서순라길을 만날 수 있다. 개편된 주소 체계에 따르면 순라길은 종묘를 기준으로 동순라길과 서순라길로 나뉜다. 동순라길은 종묘 공원 입구에서 원남동 우체국까지 600m 거리다. 주차장과 빌딩을 지나면 작은 동네길이 나타난다. 자동차 한 대 지나다닐 정도의 좁은 길 왼쪽으로는 종묘 담장이 높은 옹벽 위에 있다. 종묘가 북악산 응봉 줄기의 끝자락 서쪽 경사면에 있기 때문에 담장이 높은 곳에 있는 것이다.


도보 여행객들이 선호하는 길은 서순라길이다. 서순라길은 종묘 공원 입구에서 창덕궁 앞길인 율곡로까지 약 800m 거리이다. 율곡로에서는 돈화문 건너편에서 원남동 사거리 방향으로 가다 종묘 돌담길에서 접어들면 된다. 종묘 앞에 있는 종묘공원 입구에서 귀금속 상가를 지나 돌담길 초입에 들어서면 종묘 돌담의 고풍스러운 길이 시작된다.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가로수가 3~4m 간격으로 열을 맞춰 서 있다. 주택가 쪽으로 이발소와 작은 식당, 보석 세공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길가 탁자에 둘러앉은 노인들이 이야기 나누는 풍경은 마치 한적한 소도시 모습이다.


 길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예스러운 분위기가 더해진다. 종묘 돌담 너머로는 100년 된 갈참나무들이 검은색 담장 기와를 넘어와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팔각 가로등과 돌의자가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허름한 구멍가게, 과학사, 상패(賞牌)사, 수리점이 있는 길 풍경은 80년대 동네 입구 모습과 비슷하다. 깨끗하게 잘 정비된 길과 돌담 위로 높이 솟은 참나무가 만들어 내는 그늘, 아직 자본의 욕망이 덜 침투한 듯한 동네 모습이 오가는 이들에게 한적함과 어우러져 도시 여행의 색다른 맛을 준다.



 




                                               ▲ 서순라길 초입 풍경/사진=김민철 조선비즈 인턴기자


 이 길의 3분의 2 지점쯤에는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 나오면서 유명해진 홍어 요리 전문점 ‘순라길’도 보인다. 길의 끝자락에는 공방과 갤러리가 드문드문 자리 잡았고, 오른쪽으로 쌈지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순라길은 시대에 따라 이용하는 사람이 달랐다. 조선시대에는 양반과 내시들이, 일제 강점기에는 순사들이 지나다녔다. 해방 후에는 봇짐과 나무를 진 행상들이 드나들었다.


순라길은 한때 자취를 감출 뻔한 적이 있었다. 1950년대 후반 극심한 가난으로 이곳에 좀도둑이 들끓자, 정부에서 이 길을 막아버렸기 때문. 그 사이 주민들은 돌담 앞까지 집을 늘려나갔다.


1973년부터 이곳에 살아온 윤장강(71) 할머니는 “처음 이사 왔을 때는 돌담과 벽 사이 거리가 채 1m가 되지 않았다”며, “돌담을 도배해서 벽처럼 쓰거나, 장독대를 올려놓는 뒷마당으로 썼다”고 말했다. 때문에 서순라길의 서쪽길인 지금의 율곡로 10길이 집으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였다고 한다.


40여년 간 이름만 전해지던 순라길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찾은 건 도로개설공사를 시작한 1995년. 종묘 돌담에서 주택가로 이어지는 작은 언덕 위 불법 점유물을 헐어내고 언덕을 깎아내 도로를 만들었다. 이 도로에 보도블록을 깐 인도와 1차선 일방통행로를 설치하였다. 1997년 순라길이 역사문화탐방로로 지정되면서 돌담이 복원됐다.


 


 




 
                                           ▲ 홍어 요리가 유명한 ‘순라길’/사진=김민철 조선비즈 인턴기자


 서순라길 주변에는 봉익동(鳳翼洞)과 권농동(勸農洞)이 있다. 두 동네 모두 이곳에 많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내시들과 관련이 있는 지명이다. 봉익은 ‘봉황의 날개’라는 말로 높은 곳 붙어 세도를 누리는 내시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 권농동에는 궁중에서 필요한 채소를 기르는 내농포(內農圃)가 있었다. 이곳 관리를 궁중의 내시가 맡았다.


현재 순라길 종로 쪽 입구 주변에는 귀금속 상가들이 운집해있다. 1970년대 중반, 순라길 건너 종로 4가 쪽 예지동 귀금속 상가가 포화 상태가 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 현재 종로3가 일대에는 약 3,500개에 가까운 귀금속 상점이 있다. 고풍스럽고 서민적인 순라길 탐방의 덤으로 귀금속 구경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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