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어제는 적폐 기업인, 오늘은 ‘함께 싸우자’
김종구 주필 kimjg@kyeonggi.com
| 노출승인 2019.07.10
| 22면
청와대 불러 “민관 협조” 당부
왠지 어색하게만 보이는 모습
‘다시 찾은 이순신’ 역사 교훈
문재인 대통령이 기업인들을 불렀다. 30대 그룹 총수들이 참석했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협의를 했다. 문 대통령이 위기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의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면서 기업인들에게 협조를 당부했다. “정부와 기업이 상시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민관 비상 대응체제를 갖출 필요가 있다.” 청와대에서는 3실장도 모두 참석했다. 그만큼 무게를 둔 자리였다.
언론은 ‘민간 외교 기대’라는 주석을 달았다. 일본 인맥을 가진 기업인들을 꼽았다. 허창수 GS그룹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등이다. 허 회장은 일본의 ‘게이단련’과 대화해왔다. 한일 관계가 경색을 보이던 지난해 말부터다. 구 회장은 매년 3ㆍ4ㆍ5월에 일본을 찾는다. Nikko 동제련, 히타치 등과 인맥을 갖고 있다. 조 회장은 부친부터 이어 온 일본통이다. 직접 일본 미쓰비시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불참한 기업 총수는 둘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이다. 이 부회장의 일본 인맥은 광범위하다. 창업주 이병철, 부친 이건희로 이어져 온 인맥이다. 경제계는 물론 정계에까지 닿아 있다. 신 회장의 일본 지배력은 말할 것도 없다. 그룹의 출발이 일본 롯데다. 지금도 일본 롯데는 건재하다. 둘 다 일본에 있다. 경제 보복 조치가 발표되자마자 날아갔다. 일본 언론이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고 있다.
일본이 독하게 덤빈다. 전후(戰後) 처음으로 뽑은 특정 국가 상대 경제 보복이다. 선거용이라는 해석은 우리 정부의 바램일 뿐이다. 58%의 일본인이 ‘한국을 더 옥 죄야 한다’고 답하고 있다. 아베 지지율(51%)보다도 높다. 우리 정부가 집어들 패(牌)가 별로 안 보인다. 민간으로 눈을 돌리는 것도 그래서다. 경제는 민간의 영역이다. 정치와 무관히 돌아가는 그들만의 바퀴가 있다. 이걸 돌파구로 삼아보자는 게 대통령 당부다.
그런데 참석한 총수들의 공통점이 보인다. 하나같이 ‘문재인 정부 전과자’다. 허창수 회장의 GS그룹은 공정위가 털었다. 발주 담합으로 과징금 물고 검찰에 고발당했다. 구자열 회장의 LS그룹은 국세청이 털었다. 총수 일가의 배임, 탈세 등 혐의다. 조현준 회장의 효성그룹은 한두 건이 아니다.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 등은 지금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재판에 계류 중이고, 신동빈 회장은 교도소에 다녀왔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반기업-친노동-이다. 출범 후 쉬지 않고 기업을 몰았다. 갑질 적폐로 몰았고, 세습 적폐로 몰았고, 국정 농단 적폐로 몰았다. 기업 수사ㆍ조사ㆍ감사 없는 날이 없었다. 그랬던 ‘전과자 총수들’을 대통령이 불렀다. ‘정부와 손잡고 일본을 이겨보자’며 손을 내밀었다. 총수들은 하나같이 ‘그러겠노라’며 머리를 조아렸다. 염치없는 대통령인가. 아니면 속없는 기업인들인가. 참으로 보기 민망한 모양새다.
임진왜란(1592년). 그때 우리 국력은 어땠을까. 인구 1천~1천400만명, 농업생산량 1천200만석 정도였다. 일본이 인구에서 1.3배, 농업생산량에서 1.5배 많았다. 그 일방적 싸움을 구한 건 이순신이었다. 그 이순신을 ‘1597년 정치’는 감옥에 넣었다. ‘짐이 이순신을 용서할 수 없다. 마땅히 사형에 처할 것이로되…’(1597년 3월 13일ㆍ승정원일기). 그리고 나라가 위태롭자 다시 전쟁터로 보냈다. 거기서 이순신은 죽었다.
기해년(2019년). 이 시대 국력은 어떨까. 2019 GFP(국방력) 순위 한국 7위, 일본 6위다. 2018년 GDP 순위 한국 12위(1조6천194억달러), 일본 3위(4조9천709억달러)다. 이 일방적 싸움을 이번엔 기업이 버티고 있다. 반도체가 소니를, 디스플레이가 재팬디스플레이를 누르고 있다. 이 기업을 ‘2019년 정치’는 어떻게 했나. 갑질로, 세습으로, 국정 농단으로 처단했다. 그리고 나라가 위태롭자 다시 불렀다. ‘힘을 합쳐 싸우자’고.
임진왜란(壬辰倭亂)은 다시 이순신을 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해왜란(己亥倭亂)도 다시 기업인을 원하고 있다. 이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게 바로 5년짜리 눈으로는 안 보이고, 420년짜리 눈으로만 보이는 역사 속 궤(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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