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군 격퇴지 '파로호'… 중국이 바꾸란다고 이름 바꾸나
이승만 전 대통령이 명명한 6.25 전승지… "中 외교부, 노영민 靑 실장에 변경 요청"
전경웅 기자
입력 2019-05-27 19:38
이러면 중국 식민지
▲ 강원도 화천군과 양구군에 걸쳐 있는 파로호. 최근 중국이 이 호수 이름을 '대붕호'로 바꾸라는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원도 양구군과 화천군 사이에는 38.9㎢ 면적의 거대한 호수가 있다. 1944년 5월 일제가 만든 댐으로 인해 생긴 호수다. 이 호수의 이름은 ‘파로호(破虜湖)’다. 6.25전쟁 당시 유엔군이 중공군을 괴멸시키는 전과를 올리자 이승만 대통령이 1955년 11월 ‘오랑캐를 쳐부순 호수’라는 뜻에서 ‘파로호’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 ‘파로호’의 이름을 ‘대붕호’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인근 지역 주민들은 60년 넘게 쓴 이름을 느닷없이 바꾼다니 부정적이다. 그러나 외지에서 들어온 일부 세력들은 ‘평화’를 앞세워 ‘파로호’ 이름을 바꾸려 시도하고 있다. ‘대붕호’는 해방 전인 1944년 일본이 지어 놓은 호수의 이름이다.
KBS 베이징 특파원 “중국, ‘파로호’ 이름 바꾸라 한다”
지난 24일 KBS의 강민수 베이징 특파원이 칼럼 하나를 올렸다. 지난해 겨울 중국 베이징의 한정식 집에서 노영민 당시 주중대사와 만났는데 “파로호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당시 노 대사는 중국 외교부가 ‘파로호’ 명칭을 바꾸라고 요구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보도 자제를 요구했다고 한다.
강민수 특파원은 이어 “최근 우리 정부가 강원도와 화천군에 ‘파로호’의 이름을 ‘대붕호’로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며 “노영민 대사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일이 빠르게 진행된 것 같다”고 풀이했다. 강 특파원은 “중국은 무역전쟁을 치르는 와중에 6.25 전쟁을 소재로 반미·민족주의 감정을 조장하고 있다”며 “중국은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포위돼 유엔군 1만7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우리 입장에서 가장 상처가 컸던 패전 중 하나를 지상파 방송으로 홍보하는 중”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이 중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들어줄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었다.
강 특파원의 말처럼, 노영민 대사가 청와대 비서실장이 된 이후 ‘파로호’ 명칭 변경이 진척됐을까. 다행히도 ‘파로호’의 명칭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 강원도 파로호는 호수 안의 한반도 섬으로도 유명하다. 전망대는 없앴지만 여전히 인기 있는 관광지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화천군청 민원 봉사실에 27일 확인 결과 “파로호 명칭 변경과 관련해 잠깐 말이 나온 적은 있지만 관련해서 진행 중인 사안은 없다”고 답했다. 지역 언론 보도를 확인한 뒤 강원도청 건설교통국 토지과에 문의했다. 이만형 토지과 새주소 부동산 담당 사무관은 “파로호 이름은 바뀌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만형 사무관에 따르면, ‘파로호’ 명칭을 변경하려면 지역 주민의 여론 수렴과 함께 시군-도 관련 위원회 검토를 거쳐야 한다.
먼저 시군 지명위원회를 구성해 ‘파로호’ 명칭 변경 요청을 심의한다. 이때 지역 주민의 의견을 여론조사 등으로 취합하고, 지역 전문가, 학계 인사 등으로 구성된 시군 지명위원회가 검토를 한다. 여기를 통과한 사안은 다시 도 지명위원회에서 검토한다. ‘파로호’와 같이 화천군과 양구군에 걸친 곳의 지명은 두 군의 지명위원회에서 안건을 검토한 뒤 도 지명위원회로 안건을 올려 명칭 변경을 확정한다.
이만형 사무관은 “지역 주민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파로호 지명 변경에 반대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60년 넘게 잘 사용해 온 지명을 느닷없이 바꾸자고 하니 반발이 거세다는 설명이었다. 이 사무관은 파로호 인근 마을의 특성도 지명 변경에 반대하는 여론에 한 몫을 했다고 지적했다.
6.25전쟁 이전 파로호는 북한 땅이었다. 전쟁을 겪으면서 우리 군이 수복을 했는데, 이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월남해서 화천군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파로호’라는 휘호를 정해줬을 뿐 아니,라 이 지역에 5번이나 찾아와 주민들을 격려했다고 했다. 이런 실향민과 그 후손들이 북한과 중공군을 좋게 봐줄 리 없다는 설명이었다.
지역 여론 수렴해 '시군 지명위원회'가 결정
한편 KBS 강민석 특파원의 말처럼 ‘파로호’를 ‘대붕호’로 바꾸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이들은 ‘파로호’ 일대에서 4년째 ‘문화제’를 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 사무관은 “지난주에도 파로호에서 ‘DMZ 대붕호 평화축제’가 열렸다”고 전했다. 지역 언론 보도를 확인한 결과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2019 DMZ 대붕호 평화문화제’가 열렸다. 문화제를 주도한 이들은 ‘남북강원도협력협회’와 ‘대붕호 사람들’ 등의 소위 시민사회단체들이었다.
▲ 2017년 7월 수위 조절을 위해 방류를 하는 화천댐. 파로호가 처음 생긴 것은 1944년 5월 일제가 화천댐을 만들면서 생긴 호수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춘천 MBC는 지난 20일 보도에서 “이번 평화 문화제는 6.25전쟁 당시 북한군과 중공군 수만 명이 수장당하면서 붙여진 ‘파로호’의 원래 이름을 되찾고, 비극의 호수를 세계적인 ‘평화와 상생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기획됐다”고 설명했다.
이 사무관에 따르면, ‘대붕호 평화 문화제’를 여는 사람들은 4년 전부터 활동했다는데 관련 내용이 논란이 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부터다. <한겨레> 신문과 <오마이뉴스>가 앞장을 섰다. <한겨레>는 지난 3월 6일 “평화시대에 오랑캐라니…파로호 이름 바뀔까”라는 기사를, <오마이뉴스>는 지난 3월 29일 “파로호를 원래 이름인 대붕호로 불러야 할 이유”라는 기사를 내놨다.
이들 매체는 ‘지역 주민 여론’을 앞세웠지만, ‘파로호’의 이름을 ‘대붕호’로 바꾸려는 일련의 주장에 대한 지역 매체의 보도는 달랐다. <강원도민일보>는 지난 4월 12일 “정부 ‘파로호→대붕호’ 개명 요청, 도·화천군 부정적”이라는 기사를 내놨다.
신문은 “정부가 한중관계 등을 감안, 6.25전쟁 당시 중공군에 대승을 거둔 것을 기념해 명명한 화천군 파로호 명칭 변경을 강원도에 요청한 것이 알려지면서 지역 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에 대해 강원도와 화천군은 ‘지역 여론을 충분히 듣고 결정하겠다’며 사실상 보류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신문과 인터뷰를 한 익명의 강원도 관계자는 “지역 참전용사나 실향민들이 (파로호) 명칭 변경에 부정적이고 그동안 수차례 명칭 변경을 추진했다가 모두 실패한 전례도 있다”고 밝혔다. 신문도 “과거 공직선거에서 ‘파로호’ 명칭 변경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후보는 모두 낙선했다”고 덧붙였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지난 5월 21일에는 화천문화원 등 지역 사회단체들이 “지역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파로호’를 ‘대붕호’로 바꾸려는 시도를 중단하라”는 성명서를 내놨다. 지역 사회단체들은 “대붕호라는 명칭은 일제가 1944년 댐을 만들면서 지은 것이고, 화천저수지는 광복 후 북한이 이름을 붙인 것이며, 현재 파로호는 6.25전쟁 후 이승만 대통령이 명명했다”며 “역사적으로 보면 ‘대붕호’로는 10개월, 화천저수지는 6년 남짓 불렸으며, ‘파로호’는 67년 사용한 지명으로 주민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친숙하다”며 반발했다.
▲ 2017년 7월 시진핑이 中인민해방군 건군 90주년 기념식에서 한 말. 한국을 보는 시각을 알 수 있다. ⓒJTBC 관련보도 화면캡쳐.
북진통일 방해한 중공군에 치욕 안겨 준 파로호 전투
육군본부 군사연구소가 지난해 6월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중공군 피해는 사망 11만6000여 명, 행방불명 및 포로 2만9000여 명이었다. 이 가운데 1951년 5월 ‘파로호 전투’에서 사망한 중공군이 2만4141명, 포로 7905명이었다.
‘파로호 전투’는 1951년 5월 26일부터 29일 사이 한국군과 미군 연합 제9군단이 중공군 10군, 25군, 27군을 격파한 전투다. 제9군단은 1951년 5월 20일 화천 탈환을 위해 한국군 2사단과 6사단, 미군 7사단과 25사단으로 중공군 퇴로 차단에 나섰다.
제9군단은 이어 중공군이 통과할 최종 목표인 ‘파로호’ 서쪽 도로 교차점을 미리 점령하고 미군과 국군 3개 연대를 투입했다. 그리고 춘천-화천 간 도로, 가평-춘천 지암리 간 도로, 지암리 남쪽의 삼각 지대에 중공군 병력을 몰아넣고 공격을 감행했다. 그 결과 포위된 중공군은 대부분 전사하거나 포로가 됐다.
‘파로호 전투’는 강원도 인제군에서 한국군 3군단 예하 3사단, 9사단 병력 1만9000여 명을 잃은 ‘현리 전투’를 치른 지 불과 일주일만의 대승이어서 한국군과 유엔군은 물론 한미 정부에도 큰 의미가 있었다. 1953년 5월부터 7월 사이 화천댐을 두고 한국군과 북한·중공군이 벌인 전투 또한 중요했다. 만약 이 전투에서 졌다면 휴전선은 춘천까지 내려왔을 것이라고 한다. 이때 화천댐을 지켜낸 국군 5사단 36연대장이 포스코를 설립한 고(故) 박태준 전 국무총리였다.
지금은 화천군민들이 ‘파로호’의 이름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2016년 경북 성주 ‘사드 사태’에서 보듯 중국 공산당의 요구를 ‘평화’로 포장해 관철하려는 세력이 있는 이상 ‘파로호’를 지키기 위한 관심이 요구되고 있다.
원문출처
[데스크칼럼] 호국보훈의 달에 돌아본 ‘파로호’ 개명 사태
김동성
기사입력 2019.06.16 22:10
최종수정 2019.06.16 22:10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를 보호하고 지킨다’라는 뜻의 호국과 ‘공훈에 보답한다’라는 보훈이 합쳐진 말로,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뜻을 되새기고 애국정신을 함양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1일부터 10일까지는 ‘추모의 기간’, 11일부터 20일까지 ‘감사의 기간’, 21일부터 30일까지 ‘화합과 단결의 기간’으로 나눠져 각 기간별 특성에 맞는 호국·보훈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6월에는 임진왜란 시 곽재우가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날로, 의병의 역사적 가치를 일깨워 애국정신을 계승하고자 한 ‘의병의 날(1일)’,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이의 충성을 기념하기 위한 ‘현충일(6일)’, 북한의 남한 침입으로 일어나 3년의 전쟁을 했던 비극적인 ‘한국전쟁(25일)’, 서해 연평도에서 북한의 선제 기습 포격으로 일어났던 해전 ‘제2연평해전(29일)’ 등이 있다.
지난해 이맘때쯤 TV 저녁 뉴스에서 기자가 거리로 나가 20대 초·중반 정도 돼 보이는 남녀에게 “한국전쟁이 언제 일어났으며 몇 년간 전쟁을 했는지 아세요?”라는 질문을 했는데, 제대로 대답을 하는 사람이 아예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드물게 1950년에 발발해 3년간 전쟁을 했다고 답은 맞췄는데, 그 목소리에 확신은 없었다.
최근 중국이 강원도 화천에 있는 파로호(破虜湖)에 대해 이름을 바꿔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파로호는 ‘오랑캐(虜)를 깨뜨려(破) 승리를 거둔 호수(湖)’라는 뜻이다. 여기서의 오랑캐는 한국전쟁 당시 100만 대군을 침투시킨 중공군을 뜻한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치욕스럽겠지만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승전의 역사다.
그 전쟁의 중심에는 ‘청성부대’인 ‘6사단’이 있다. 6사단하면 ‘초산’ ‘압록강물’ ‘김일성 차 포획’ ‘제2땅굴’ ‘육탄 방어’ ‘전군 유일 38선 방어’ ‘1개 사단으로 1개 군단급 궤멸(총기 탄생 이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방어작전)’ ‘전쟁 중 모든 장병 1계급 특진’ 등 수많은 업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중에 하나가 바로 ‘파로호’다. 기습 남침을 당한 국군은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반격에 나선다. 1950년 10월 6사단은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가 평양에서 김일성이 도망가며 버리고 간 차량을 포획했으며, 압록강까지 진격해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야음을 틈타 압록강을 건너온 중공군에 의해 포위를 당해 각개 후퇴로 겨우 탈출하는데, 바로 1.4후퇴다. 6사단은 이후 1951년 5월 양평 용문산에서 중공군 3개 사단과 맞닥뜨린다. 바로 ‘20세기의 명량’이라고 불리는 빛나는 전투 ‘용문산 전투’다.
6사단 2연대가 주방어선보다 전방인 북한강 인근에 배치됐고 19연대는 서쪽, 7연대는 동쪽 방어선을 지켰다. 중공군의 3개 사단의 공세가 시작되자 2연대는 공격을 받으면서 후퇴를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막아낸다. 2연대가 지키고 있는 방어선을 국군의 주력부대의 방어선으로 오인하고 중공군은 3개 사단의 총공격에 나선다. 이때 7연대와 19연대는 중공군의 후미로 돌아 포위하며 반격을 시작한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중공군은 화천까지 80km를 추격해오는 6사단을 피해 도망가다, 2만여 명이 빠져 죽은 곳이 당시 ‘화천저수지’였다. 전쟁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저수지를 방문해 ‘파로호’로 명명하고 휘호를 남겼다. 파로호는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에 비견되는 전적지이며, 용문산-화천 전투는 미 육군의 제병합동전투교본에도 실렸다. 한국전쟁 최대의 승전으로 손꼽히며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지켜낸 역사의 현장인 셈이다.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기 위해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중국이 파로호 개명까지 요구하고 나선 것은 괘씸하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강원도가 파로호 개명을 검토를 한다는 것이다.
파로호는 지금의 강원도, 대한민국의 영토가 되기까지 가장 중요한 격전지가 됐던 것은 자명한 사실로, 파로호 개명은 한국전쟁 승전의 역사를 지워버리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파로호는 용감하게 싸운 우리 국군의 강한 전투력과 애국심이 함께 담겨 있는 것으로, 대대손손 후손들에게 전해야 할 조국 수호의 유산이다.
우리가 우리 역사에 대해 모를 때 주변 강대국에서는 정신없이 밀고 들어온다. 호국보훈의 달인 만큼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모든 분들을 우리는 꼭 기억을 해야 할 것이다.
강원도에서 군 생활을 해 그쪽으로는 소변도 보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한번씩 가는 곳이 바로 철원의 ‘노동당사’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 촬영 장소이기도 한데, 유리창 하나 없이 덩그러니 놓인 시멘트 건물이다. 건물 앞에서 있으면 몸과 마음이 숙연해진다. 시멘트로 만들어져 폭격에도 버텼다는 건물도 세월을 피해 갈 수 없는지 이제는 목발 없이는 서있을 힘도 없어 보인다. 올해는 ‘노동당사’에 ‘파로호’까지 꼭 가봐야겠다.
김동성 지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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