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맛의 비밀
춘장과 야채 볶는 불의 강도와 시간이 관건
글 : 서철인 월간조선 기자
⊙ 우리가 먹는 짜장면은 중국 산둥 지방의 자장몐이 한국화한 것, 중국엔 짜장면이 없다
⊙ 짜장면은 약방의 감초와 같은 메뉴, 코스요리를 먹어도 마무리는 짜장면으로 해야
⊙ 오늘날 우리가 먹는 춘장은 중국 된장인 몐장에 캐러멜 첨가해 만들어
⊙ 야채를 제대로 볶지 않으면 짜장면에 국물 생겨
“출출한데 짜장면 시켜 먹을까?”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싫지 않은 소리다. 말만으로도 벌써 들큼하고 고소한 짜장면 특유의 향기가 전해 오는 듯 입 안 가득 군침이 고인다. 이사하거나 사무실에서 야근할 때 으레 먹던 음식이 짜장면이요, 군대서 휴가 나와 다른 맛난 음식 다 제쳐 놓고 찾던 음식이 짜장면이다. 입학식·졸업식 때 즐겨 먹은 식구들과의 외식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1970~8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40·50대들에게 짜장면은 각별한 정서와 추억이 깃들어 있는 음식이다.
지난 9월 국립국어원이 기존에 써 왔던 ‘자장면’뿐만 아니라 ‘짜장면’까지 표준어로 인정한다고 했을 때 국민들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며 손뼉을 쳤다. 외국에서 들어온 먹을거리 중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음식이 또 있을까.
한국의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은 약방의 감초와 같은 메뉴다. 샥스핀, 동파육, 불도장 등 고급 요리가 차례로 나오는 코스요리를 먹고도 마무리는 짜장면으로 하는 이가 많다.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지 않으면 뭔가 빠뜨리고 오는 것처럼 허전하다고들 한다.
중식 요리 입문 코스에서도 짜장면은 빠지지 않는다. 경력 10년이 넘는 중식 요리사들은 “짜장면은 중식 요리의 기본이지만 맛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만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음식이다 보니 적당히 요리해서는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짜장면 맛을 보면 그 집 음식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고 하는 이도 있다.
짜장면은 춘장(春醬)에 돼지고기와 양파를 넣고 기름에 볶은 후 면에 비벼 먹는 비교적 간단한 음식이다. 양배추나 호박, 감자 등의 야채를 추가로 넣는 집도 있으나 그것까지 포함해도 재료가 그다지 많지 않다. 주요 재료인 춘장도 대부분 한 회사에서 나온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맛이 천차만별인 이유는 뭘까. 중국 음식 고수들을 만나 짜장면의 역사와 맛의 비밀을 알아보았다.
중국 된장 춰옹장이 춘장으로
짜장면은 중국 산둥(山東)지방의 자장몐(炸醬麵)에서 유래한다. 자장(炸醬)은 ‘기름에 튀긴 된장’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된장은 춘장을 말하는데, 산둥 지방에서는 봄에 많이 나는 파를 찍어 먹는 장이라 해서 춰옹장이라 불렀다 한다.
사자표 춘장을 제조하는 영화식품의 손문한(孫文漢) 영업본부장은 2001년 중앙대에서 <춘장 유통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이 논문에서 춘장의 유래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중국에는 양파, 대파 등의 파 종류를 장에 찍어 먹는 식습관이 발달해 있다. 파를 찍어 먹는 이 장이 한글로 총장이며, 중국말로는 층과 총의 중간 발음인 춰옹장이라 한다. 이 춰옹장이 한국 사람들의 의사소통 과정서 현재의 춘장으로 발음되기 시작한 것이 춘장의 어원(語源)으로 볼 수 있다.>
춰옹장은 콩과 밀가루를 주원료로 만드는 된장이며, 기름에 튀겨 국수에 얹어 먹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몐장(麵醬)으로 불렸다. 몐장은 제조 공정이 우리의 된장과 유사하다. 콩을 삶아 밀가루와 섞어 메주로 만든 다음 발효시키고, 이 메주를 소금물에 띄운 후 숙성시켜 완성한다.
잘 숙성된 몐장은 짙은 갈색을 띠며, 된장보다 짜고 감칠맛이 난다. 면 요리가 발달한 중국 산둥 지방에서는 삶은 국수에 몐장을 얹어 비벼 먹었다. 이것이 자장몐인데, 검은 소스에 비벼 먹는 우리의 짜장면과는 완전히 다른 음식이다. 지금도 베이징에 가면 ‘옛날식 베이징 자장몐(老北京 炸醬麵)’이라는 간판을 걸고 중국 전통 자장몐을 파는 곳이 있다. 자장몐은 삶은 국수에 볶지 않은 몐장과 채 썬 오이, 살짝 익힌 숙주나물을 고명으로 얹는다. 이것을 우리의 짜장면처럼 비벼 먹으나 맛은 전혀 다르다.
진시황이 탄생시킨 자장몐
자장몐은 면의 본고장인 중국 산둥 지방의 토속음식 중 하나다. 중국 요리 전문가이자 중식당 루이(luii)를 경영하고 있는 여경옥(呂敬玉)씨는 지난 여름 친형인 여경래(呂敬來)씨와 함께 산둥성(山東省) 북쪽에 있는 옌타이(煙臺)에 다녀왔다. 그는 “옌타이 지역 부산이라는 곳에 있는 ‘면 유래 박물관’에서 자장몐과 몐장에 관한 기록을 봤다”며 휴대폰에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자장몐과 몐장의 유래가 적힌 안내문을 촬영한 사진이었다. 그 내용은 이렇다.
< 중국 진(秦)나라 시대인 B.C 210년 경 진시황(秦始皇)이 면 종류 음식으로 유명한 부산을 방문했다. 그는 지역에서 가장 요리를 잘한다는 사람을 불러 국수 요리를 하나 해 달라고 주문했다. 요리사는 폭군으로 유명한 진시황 앞에서 손을 덜덜 떨며 요리에 들어갔다. 당시만 해도 몐장은 조미료 개념이었지 소스는 아니었다.
요리사는 삶은 국수에 몐장을 얹어 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진시황 앞에서 너무 벌벌 떤 나머지 실수로 몐장을 기름에 볶아 버렸다. 실수했다고 진언하면 죽음을 당할 게 불을 보듯 뻔했다. 요리사는 새로운 요리인 듯 국수에 볶은 몐장을 얹어서 냈다. 그리고 ‘이제 꼼짝없이 죽었구나’ 생각하며 격노하는 진시황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진시황이 껄껄껄 웃으며 ‘맛이 참 좋다’며 칭찬을 했다.>
몐장의 유래 또한 흥미롭다.
< 대두(大豆)와 밀농사를 많이 짓는 부산 지역이 어느 해 심한 가뭄으로 흉년이 들었다. 먹을 게 없던 가난한 농부 하나가 얼마 남지 않은 콩과 밀을 삶고 쪄서 단지에 넣어 놓고 조금씩 아껴 먹었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더워 모두 쉬고 말았다. 농부는 너무 아까워 햇볕에 말린 후 갈아서 빵이라도 만들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이상 썩지 않도록 소금을 뿌려둔 것이 발효가 돼 황갈색을 띠었다. 농부는 썩은 것으로 알고 버리려 했지만 향이 좋고 맛이 괜찮아 두고두고 먹었다.>
한국 최초의 중국음식점 공화춘
인천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옛 중식당 ‘공화춘’ 건물. 2012년 이곳이 짜장면박물관으로 문을 열 예정이다.
산둥 지방에서 즐겨 먹던 자장몐이 한국으로 건너온 것은 언제이며, 오늘날 우리가 먹고 있는 짜장면은 어떤 진화 과정을 거친 것일까.
차이나타운의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인천광역시 중구는 한국 화교(華僑)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자장몐이 들어와 짜장면으로 변신한 곳도 이 지역이다. 인천 중구청은 짜장면의 발상지인 이곳에 짜장면박물관을 조성해 내년에 오픈할 계획이다.
짜장면박물관에 전시할 다양한 유물들을 확보 중인 인천 중구청에 따르면 한국 화교의 역사는 1882년(고종 19년) 임오군란(壬午軍亂)과 더불어 시작된다. 당시 한국에 파견된 광둥성(廣東省) 수사제독 오장경(吳長慶)의 군대를 따라 상인 40여 명이 입국했는데, 이들이 한국 화교의 시초라고 한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중구 선린동과 북성동 일대에 있는 중국인 지역이다. 1883년 인천항이 개항하고 이듬해 5000평 부지의 청나라 조계지(租界地·외국인이 자유로이 통상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설정한 구역)가 설치되면서 중국인들이 현 선린동 일대에 이민, 정착하여 그들만의 생활문화를 형성한 곳이다. 이들은 소매잡화 점포와 주택을 짓고 본격적으로 상권을 넓혀 중국 산둥성 지역에서 소금과 곡물을 수입, 판매하며 1930년대 초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엄청난 양의 무역 물품을 배에 싣고 내리는 짐꾼들은 대부분 산둥 지방 출신이었다. 고된 노동에 시달렸던 이들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 별 다른 재료 없이도 즉석에서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고향의 메뉴 자장몐을 즐겨 먹었다. 이들을 상대로 자장몐을 파는 손수레 노점상이 인기를 끌었다.
이곳에서 파는 자장몐은 기름에 몐장을 볶다 파를 송송 썰어 넣어 다시 볶은 후 국수에 얹어 비벼먹는 식이었다. 짭짤한 몐장을 한 스푼 정도 넣고 비볐기 때문에 자장몐 색깔은 흰색에 가까웠다고 전해진다.
청국인들의 무역이 번창하자 부유층을 상대로 한 고급 중식당이 생겨났다. 1907년 우리나라 최초의 중국집으로 알려진 공화춘(共和春)이 문을 열었고, 중화루, 동흥루 등이 뒤를 이었다. 이곳을 찾는 한국인들도 자장몐을 즐겨 먹었다. 똑같은 발효 식품인 된장 맛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자장몐은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
춘장이 검은 것은 캐러멜 때문
자장몐을 한국인 입맛에 맞게 짜장면으로 바꾼 곳이 공화춘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중화루 혹은 동흥루가 먼저였다는 등 의견이 분분하다. 정확한 기록이 없는 탓이다. 다만 현존하는 건물이 공화춘뿐이어서 이곳에 짜장면박물관을 건립 중이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짜장면은 중국식몐장에 캐러멜을 첨가해 검은색을 띠고 단맛이 난다. 짜장면 얘기를 하면 “중국에도 짜장면이 있느냐”고 묻는 이가 많은데, 우리가 먹는 짜장면은 중국에 없다.
월간 《외식경영》의 김현수(金炫秀) 대표는 “현재 우리가 먹는 짜장면은 1950년 6·25 이후 영화식품(주)이 공장에서 춘장을 대량 생산하면서 정착된 것”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영화식품이 공장에서 춘장을 만들기 전까지만 해도 중식당들은 각자 집에서 재래식으로 춘장을 담갔습니다. 영화식품도 설립 초기에는 재래식으로 담가 자전거로 배달했죠. 그러다 경쟁 업체에서 ‘춘장은 색이 진할수록 맛과 향이 좋다’는 마케팅 전략으로 공략하자 색이 연한 사자표 춘장의 점유율이 하락했습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영화식품이 몐장에 캐러멜을 첨가한 검은색 춘장을 만들어 내게 됐죠.”
캐러멜이 첨가된 사자표 춘장은 단맛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을 단숨에 사로잡아 버렸다. 이후 짜장면은 기름에 볶은 검은색 춘장에 비벼 먹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고, 사자표 춘장은 국내 춘장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게 됐다. 손문한 본부장은 “2위 업체였던 해표 춘장(점유율 18%)도 오래 전 영화식품이 인수해 사실상 점유율은 90%가 넘는다”고 말했다.
높은 시장점유율에도 일반인들에게 영화식품이나 사자표 춘장은 그리 친근하지 않다. 손 본부장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영화식품에서 제조하는 춘장은 영업용으로만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대중을 상대로 하는 광고가 없어요. 또한 수퍼마켓이나 마트에서도 제품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질 겁니다.”
국산 춘장 중국에 수출
가정용 춘장은 대상, CJ, 진미, 신송 등의 식품 전문 기업에서 출시하고 있다. 국내 춘장 제조업체는 이들 외에 10여 개의 군소업체가 지방에 산재해 있다.
중찬(中饌) 전문 기업 영화식품(주)은 1948년 중국 산둥성 출신의 화교 왕송산이 서울 용산구 문배동에 설립(당시 용화장유), 출범했다. 국내 최초의 춘장 공장이었다. 현재는 창업주의 손자인 왕학보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영화식품 본사는 사자표 춘장을 생산하는 공장과 함께 경기도 김포에 위치해 있다. 업체 측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춘장 생산라인을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 캘리포니아나 호주산(産) 콩과 밀을 주원료로 1개월 동안의 숙성 과정을 거쳐 각 업소에 공급한다는 간단한 설명만 했다. 생산공정을 지금처럼 자동화하고 과학화하기 전에는 숙성 기간이 6개월이었다고 덧붙였다.
손문한 본부장은 “이곳에서 생산하는 춘장은 국내 시장뿐 아니라 세계 30개국에 수출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자장몐의 본고장인 중국에도 몐장이 아닌 춘장을 수출하고 있으며, 중국 전역에서 사랑받고 있다고 한다.
양파 대신 무말랭이 넣기도
중국 요리의 대가 추본경씨.
사자표 춘장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90%라는 건 중국음식점 10곳 중 9곳이 같은 춘장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도 짜장면 맛이 집집마다 다 다른 이유는 뭘까. 그 비밀을 알아보기 위해 중국 요리의 대가 추본경(鄒本卿)씨를 만났다. 화교 2세인 그는 아서원, 금보석, 만리장성 등 서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유명 중식당에서 일했고, 지난 6월까지만 해도 서울역 앞 대우빌딩 지하에서 만다린을 운영했던 인물이다. 현재는 건강 때문에 서울 연남동 자택에서 쉬고 있으며 한성화교협회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부산 태생인 추씨는 “아버지가 중식당을 한 관계로 나는 공부해서 사관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가정 형편상 어쩔 수 없이 같은 길을 가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의 부친은 경북 영천에서 홍성원(鴻盛園), 서울 명륜동에서 신생반점(新生飯店), 서울 방산시장에서 신락원(新樂園) 등의 중식당을 경영했다. 그는 자신이 먹고 자란 짜장면의 변천사를 요리사 입장에서 간단하게 요약해 줬다.
“지금의 짜장면은 1950년대 초에 탄생해 1960년대 분식장려 운동 바람을 타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 서울에서 가장 유명했던 중식당이 명동 미도파 백화점 앞에 있던 중화각이었는데 하루에 팔리는 짜장면이 1600~1700그릇이나 되었죠. 이 정도면 22kg짜리 밀가루가 10~12포 정도 들어가는 양입니다. 짜장면의 전성기였죠.”
추씨에 따르면 이때까지만 해도 짜장면에는 양파 대신 무가 들어갔다. 양파보다 무 가격이 저렴했고, 건강에도 좋았기 때문. 짜장면에 양파를 넣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라고 한다. 추씨의 설명이다.
“짜장면은 서민들에게 사랑받는 국민음식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업자들은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기 위해 원가절감에 골몰하곤 하죠. 요즘은 짜장면에 들어가는 야채가 양파나 양배추로 정해져 있다시피 하지만 옛날엔 철마다 다른 야채가 들어갔습니다. 원가절감을 위해 봄에는 호박, 여름에는 감자, 겨울에는 무나 배추 등 제철 야채를 넣어 조리했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는 무말랭이를 넣어 만든 짜장면이 가장 맛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말랭이는 사시사철 사용할 수 있고, 수분이 적어 요리하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죠.”
이제는 사람 손이 많이 가는 무말랭이가 양파나 양배추보다 훨씬 귀한 시대가 됐다. 그는 “춘장을 포함한 모든 재료의 조건이 같다 해도 요리사가 누구냐에 따라 짜장면 맛은 다를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면발은 수타면 외엔 大同小異
“짜장면은 춘장과 야채를 얼마나 센 불에 얼마 동안 볶느냐가 관건입니다. 최적의 온도와 시간만이 최고의 맛을 낼 수 있죠. 미세한 차이에도 음식 맛은 천양지차입니다. 이 공정을 말로는 설명할 수 없어요. 오랜 경험을 통해 몸으로 터득해야 합니다. 잘 만든 짜장면은 향이 좋고 고소하며 시간이 흘러도 국물이 생기지 않습니다. 먹고 있는데 자꾸 국물이 생기는 짜장면은 제대로 조리가 안 된 것으로 보면 됩니다.”
짜장면 맛의 중요한 요소인 면발은 수타면(手打麵)을 뽑는 일부 업소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중식당이 기계면을 사용해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고 한다.
중식당 루이의 대표이자 셰프인 여경옥씨 역시 무말랭이를 넣은 짜장면에 대한 향수가 짙다. 그는 “어렸을 때 먹은 짜장면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는데, 무말랭이를 넣어 무 특유의 향과 단맛이 나는 짜장면이었다”고 말했다.
화교 2세인 그는 10대 후반 중국 요리계에 입문한 뒤 1980년대 초까지 정일권 등 거물급 정치인들이 드나들던 이태원 ‘거목’에서 일했다. 이후 신라호텔 중식당 ‘팔선’의 주방장, 서울 시티클럽 중식 담당 주방장, 중국 소주호텔 총주방장을 거쳤다. 현재 화교조리사협회 13대 회장, 조리기능사 기능장 출제위원 및 감독위원, 조리산업기사 출제위원, 세계 중식조리연합회 국제심사위원, 혜전대학 조리외식학과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그동안 요리책도 여러 권 냈고, 국내외에서 열리는 각종 요리 경연 대회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사람이다.
여씨는 “정말 맛있는 짜장면은 식용유가 아니라 돼지비계에서 나오는 기름에 춘장과 야채를 볶아 넣는 옛날식 짜장면”이라고 말했다.
“저는 집에서도 짜장면을 즐겨 먹는데, 춘장과 야채를 볶을 때 식용유를 쓰지 않고 삼겹살 기름을 사용합니다. 요즘엔 건강에 나쁘다는 인식 때문에 돼지기름을 싫어하는데, 옛날에는 춘장을 볶을 때 모두 돼지기름을 썼어요. 돼지기름을 사용하면 짜장면이 훨씬 고소하고 맛있어요.”
그는 “춘장은 뭉근한 불에 오랫동안 볶아야 향이 진하고, 야채는 센 불에 짧은 시간 볶아야 아삭아삭한 식감을 살릴 수 있다”고 비법을 공개한다. 또한 면발은 삶아서 찬물에 헹군 후 다시 데쳐서 내놓아야 맛있다고 한다. 면발에 온기가 있어야 춘장 소스의 수분을 빨아들여 면발이 부드럽고, 춘장은 진한 맛이 난다는 것이다. 요리책을 여러 권 냈지만 불의 강도나 볶는 시간 등을 계량화하기란 힘들다고 했다. 여러 번 반복적으로 요리하면서 스스로 터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여씨는 “배달용 짜장면은 다르게 조리한다”는 말도 했다. 그의 설명이다.
“배달용 짜장면은 물기가 좀 있는 것이 좋습니다. 배달 도중 뜨거운 면발이 엉겨 붙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죠. 따뜻한 면은 수분이 없으면 서로 엉겨 붙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국물이 있는 짬뽕은 불었다는 항의가 없는데, 짜장면은 늘 불었다는 항의가 많은 겁니다.”
짜장면 한 그릇의 춘장 단가 100원
그는 “짜장면은 너무 많은 이들이 알고 좋아하는 음식이라 항상 조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중국집마다 짜장면 맛이 다르듯 짜장면 메뉴도 각양각색이다. 간(乾)짜장, 삼선(三鮮)짜장, 유니(肉泥)짜장, 유슬(肉絲)짜장, 사천(四川)짜장 등. 추본경씨는 “원조 짜장은 돼지고기와 야채를 넣고 물기 없이 조리하는 간짜장”이라며 “요즘 중식당에서 일반 짜장이라고 내놓는 묽은 짜장은 춘장을 아끼기 위해 물과 녹말을 많이 넣어 조리하다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다. 감자가 많이 들어간 ‘옛날짜장’도 마찬가지다.
그 외 짜장은 맛의 고급화를 위해 요리사들이 응용해서 개발한 것들이다. 삼선짜장은 중국에서 최고급 해물로 취급하는 해삼, 왕새우, 전복을 넣고 만드는 짜장인데, 보통 고가(高價)의 전복 대신 오징어가 들어간다. 유니짜장은 잘게 다진 고기를 넣은 짜장이고, 유슬짜장은 고기와 각종 채소를 채로 썰어 넣은 짜장이다. 그리고 사천짜장은 중국 사천 지방 특유의 매운 맛을 내는 짜장이다.
춘장을 아끼기 위해 묽은 짜장을 만들어 냈다지만 춘장 가격은 그리 높지 않다. 김현수 월간 《외식경영》 대표에 따르면 보통 짜장면 한 그릇에 들어가는 춘장 원가는 100원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업소들이 춘장을 비롯한 짜장면 재료를 아끼기 위해 온갖 머리를 짜낸 것은 짜장면의 낮은 단가 때문이다. 김현수 대표의 말이다.
“짜장면은 서민 음식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한국 물가지수를 가늠하는 지표가 돼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함부로 가격을 올릴 수 없었고, 정부에서도 물가조정을 위해 짜장면 값을 동결하는 등 규제가 심했지요. 식재료비는 오르는데 음식값은 올릴 수 없으니 업자들은 재료를 아껴서 단가를 맞출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낮은 짜장면 단가는 음식의 질을 떨어뜨렸다. 때마침 웰빙 바람까지 불어와 기름에 튀기고 볶는 중국 음식은 건강에 나쁘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게다가 깨끗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로 무장한 외식업체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짜장면집은 낡고 지저분한 식당 이미지로 굳어져 갔다. 아이들은 짜장면 대신 피자나 햄버거를 찾았고, 젊은이들은 짜장면 대신 스파게티나 일본식 우동을 즐겨 먹었다.
2009년 10월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와 대만 중화음식문화기금이 공동 주최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주제는 ‘세계화 시대의 동아시아 음식문화’였다. 이 학술대회에서 양영균(梁泳均)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한국사회의 웰빙 담론과 중국 음식>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양 교수는 “한국에서 인기 있던 중국 음식이 최근 참살이(웰빙) 열풍에 밀려 쇠퇴하고 있다”며 “1982년과 비교해 2003년 국내에서 한식당이 243%, 일식당이 511% 증가한 반면 중식당은 43% 증가한 데 그쳤다”고 진단했다. 그 이유를 그는 “중식은 더럽고, 기름지고, 칼로리가 높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값싼 음식이라는 인식 깨야
만화 식객에도 등장하는 인천 차이나타운의 중식당 ‘태화원’주방.
김현수 대표는 “중식당은 일식이나 양식 등의 다른 외식업체들에 비해 R&D 부분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전체적으로 질을 높여서 ‘짜장면은 서민음식’이라는 통념을 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 번 굳어진 인식을 깨기란 길들여진 입맛을 바꾸는 것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중식당 ‘태화원’을 경영하는 손덕준(孫德俊)씨는 화교 3세다. 뿐만 아니라 조부(祖父)와 부친이 모두 요리사 출신이다. 아버지는 한국 최초의 중국음식점으로 알려진 공화춘의 주방장을 지냈다. 손씨는 부친의 짜장면 요리 비법을 그대로 전수받았다. 이 때문에 인천 지역에서는 “원조 짜장면을 맛보려면 ‘태화원’에 가 보라”는 말이 돌았다.
‘태화원’의 자랑인 짜장면.
손씨는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기 위해 원조 짜장면 복구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중국 전통 방식으로 춘장을 담갔고, 기존의 춘장과 섞어 만든 ‘인천향토짜장’을 개발했다. 이 짜장을 맛본 손님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젊은층은 특유의 발효 냄새에 코를 쥐며 두 번 다시 찾지 않았고, 노년층은 먹을수록 당기는 맛이라며 단골이 됐다. 손씨는 젊은층을 위해 기존의 짜장면도 함께 만들어 팔았다. 그러다 4년 전부터 ‘인천향토짜장’을 포기하고 기존 짜장면만 만들고 있다고 한다. 손씨는 그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향토짜장을 찾는 손님이 없어서 그만둔 것이 아닙니다. 춘장을 만들기가 너무 힘들고 번거로운 데다 물량을 맞출 수 없어서 포기했죠. 한마디로 손이 너무 많이 갑니다.”
3대째 짜장면을 만들고 있는 손덕준씨.
잘 숙성된 춘장을 맛보기 위해서는 최소한 3년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한다. 게다가 춘장은 된장과 달리 햇빛을 많이 쬐어야 해서 수시로 항아리 뚜껑을 열어 놓고 골고루 햇빛이 스며들 수 있도록 뒤집어 줘야 한다. 춘장 전담 직원을 두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없으니 코스트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렇듯 정성들여 만드는 춘장이니 맛이 없을 리 없다. 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만큼 정성이 깃든 짜장면이란 걸 알아주지 않는다. 짜장면은 값싼 음식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김현수 대표는 “단가를 좀 높이더라도 춘장의 질을 높이면 정말 맛있는 짜장면을 맛볼 수 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춘장의 질은 콩에 들어가는 밀가루의 비율을 지금보다 낮추면 높아진다고 한다. 현재 영업소에서 주로 사용하는 춘장은 콩과 밀가루의 비율이 4대6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짜장면은 추억이다
경기도 일산에서 중식당 ‘남궁’을 경영하는 남궁석씨.
2011년 전국 짜장면 평균가는 4000원이다. 같은 면 종류인 칼국수가 5000원이 넘고, 냉면이 7000원에 육박하고 있는 점에 비하면 짜장면은 아직까지 저렴한 편이다.
물론 고급화로 차별화하고 있는 일부 중국음식점에서는 한 그릇에 8000~1만원까지 하는 곳도 있다. 그런데도 줄을 서서 먹어야 하는 곳이 있는 것을 보면 짜장면도 가격과 상관없이 맛을 보고 찾는 이가 많은 듯하다. 김현수 대표는 “한국인에게 짜장면은 단순한 중국 음식이 아니라 소울푸드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뭔가 색다른 변화만 있어도 피자와 스파게티에 빼앗긴 젊은이들을 되찾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일산에서 중식당 ‘남궁(南宮)’을 경영하고 있는 남궁석(南宮晳)씨는 이 포인트를 누구보다 잘 아는 듯하다. 몇 년 전 그는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짜장면에 얽힌 추억’이라는 주제의 수필을 공모했다. 그 결과 수백 명의 지역민이 응모했다.
항상 꼴찌만 하던 학급 아이들의 성적이 대폭 올라 약속한 짜장면을 아이들 모두에게 한 그릇씩 돌렸다는 선생님 이야기부터 어린 자녀들과 짜장면을 먹기 위해 외출하는 시간이 고된 시집살이를 버티는 힘이었다는 어머니 이야기까지 가슴 훈훈한 내용이 많았다. 어떤 응모자는 포스트잇에 ‘항상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 제대로 된 짜장면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어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는 진심어린 아부(?)로 그를 감동시키기도 했다.
누구든 짜장면에 얽힌 추억이 한두 개 쯤 있게 마련이다. 남궁석씨는 이 점을 놓치지 않고 글짓기 공모라는 작은 행사를 마련함으로써 응모자나 짜장면 애호가들에게 ‘이곳에서 먹는 짜장면은 그냥 음식이 아니라 추억이다’라는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한 셈이다. 그는 “응모한 원고를 모아 조만간 책으로 엮어 고객들에게 선물로 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남궁석씨는 서울 청담동에 있던 만리장성에 근무하다 독립, 일산에서 중식당으로 크게 성공한 인물이다. 그는 현재 경기도관광협회 부회장 겸 관광식당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남궁석씨가 보여준 원고들을 읽고 나니 다 늦은 저녁인데도 짜장면 생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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