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역사속으로

裡里驛 1977년 11월 11일

marineset 2023. 5. 27. 02:46




[이리역 폭파현장]





1977년 11월 11일 밤 9시15분쯤의 전북 이리(현 익산). 시민들은 월드컵 아시아 예선전 한국 대 이란 경기를 TV로 지켜보고 있었고, 시내 삼남극장에서는 700여명의 방청객이 몰려든 가운데 ‘하춘화쇼’가 시작되고 있었다.
진행자 이주일이 막 오프닝멘트를 마친 순간, 갑자기 “꽝!” 하며 천지를 진동하는 대형 폭발음과 함께 엄청난 불기둥이 이리역에서 솟아올랐다. 다량의 폭약을 싣고 인천을 떠나 광주로 향하던 화물열차가 이리역에서 대기 중 호송원이 켜놓은 촛불이 원인이 돼 폭발한 것이다. 폭발 지점에는 지름이 30m나 되는 5층 높이의 웅덩이가 패였고 반경 500m 안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이리역에서 100m 떨어진 삼남극장도 지붕이 날아가고 14명이나 현장에서 죽는 등 아비규환을 이뤘다. 이주일은 그 자신도 피를 많이 흘렸으면서도 불길이 치솟는 난로 옆에 쓰러져 있는 하춘화를 들쳐 업고 극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우리나라 폭발물사고 사상 최대로 기록된 이 사고로 59명이 숨지고 1350여명이 다쳤다.

연무고등학교 인터넷 신문[발췌]

익산역(이리역)약사


1912.03.06 대전-이리 간 및 군산선 개통
1914.01.14 호남선(대전-목포 간) 개통
1915.01.01 보통역(이리역)으로 영업개시
1929.09.20 근대양식 역사(驛舍) 신축 준공
1936.12.16 전라선(이리-여수 간) 개통
1977.11.11 이리역 폭발사고 발생으로 역사 파손(대파)
1978.03.30 대전-이리 간 복선 개통
1978.11.10 신(현)역사 준공(건평 4,775㎡, 지하 1층 지상 3층, 철근 콘크리트, 기와)
1985.11.15 이리-정주(현 정읍) 간 복선 개통
1988.09.06 정읍-송정리 간 복선 개통
1995.09.01 "이리역"에서 "익산역"으로 역명 변경(사유:이리시와 익산군 통합) 1997.10.01 익산거점관리역 업무개시(용동-노령, 동익산, 군산선)
1999.10.01 전주거점관리역 통합(춘포-금지)
2000.01.01 순천지방철도청 폐지로 "익산지역관리역"으로 직제 변경(영업과·관리과 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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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동창 韓仁錫 군에 관한 빛 바랜 기억들...


한인석군은 , 지금은 폐교되어 철도대학으로 바뀐 국립철도고등학교 업무과에 1967년 입학하여 1970년 2월에 졸업하였다. 졸업 후, 이리역(현 익산역)의 역무원으로 근무하던 중, 1977년 11월 11일 야간에 발생한 이리역 폭파사고로 인하여 순직하였다.
당시 사망자명단에는 그의 나이가 34세로 잘 못 기록되어있으며 실제로는 27-28세가 맞다.
또한, 한인석군의 선친께서는 전남 광주역에서 근무하시다가, 철로를 무단횡단하던 어린이를 구하고 달리던 열차에 치어 순직하시었다.
부자가 모두 철도공무원으로 재직중에, 순직한 케이스이다.
한인석군이 이리역 폭파사고로 순직하고, 이리역이 재건되고나서, 정부(철도청)에서는 한인석군의 유가족에게 이리역 구내 매점의 운영권을 주었다고한다.
사고당시 한인석군의 부인은 임신중이었으니 유복자가 태어났을테고, 이제 28세의 청년 또는 여인이 되어있을 것이다.
[by badoc]


1977년 11월 12일 동아일보/ 지면을 클릭하면 확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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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6면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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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istory.hanwha.co.kr:9300/theme/g/g03_zoom03.htm[발췌]



이리역 폭발사고 합동조사단(단장 서정각 대검특수부장)은 19일 한국화약 사장 신현기씨와 인천역 화물과장 강인수씨등 10명을 철도법 위반 혐의로 구속한데 이어 한국화약의 철도화물 운송대행 업체인 대한통운에 화물 적재상의 잘못이 있음을 밝혀내고 대한통운 인천지점 관수업무과장 진윤하씨(42)와 동 지점 육운계 직원 정종옥씨(36)등 2명을 철도법 84조 위반혐의로 추가 구속했다. 이로써 이리역 폭발사고와 관련, 구속된 사람은 신무일을 포함, 모두 13명으로 늘어났다.

조사단에 따르면 대한통운은 교통부장관으로부터 역구내에서 화차내의 화물하역작업을 위임받아 하면서 지난 9일 상오 11시쯤 인천역 구내에서 사고 화차에 한국화약이 광주지점으로 탁송하는 다이너마이트등을 실을 때 규정을 어기고 정량 25t을 초과하여 실었으며 다이너마이트와 뇌관은 각각 다른 화차에 실어야 하는데도 같은 화차에 실었다는 것이다.

또한 조사단은 화약류등 위험물을 화차에 적재할 때는 화차벽에서 30cm, 천장쪽으로는 60cm 이상 공간을 두어야 하고 화약상자마다 10cm이상 간격을 두고 칸막이를 해야 하는 데도 이를 지키지 않은 사실을 밝혀내고 철도 운송법 규정에 위배되도록 화물을 적재한 것이 한국화약 호송책임자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 또는 대한통운의 책임하에 실은 것인지를 중점적으로 추궁하고 있다.

또한 조사단은 철도당국이 한국화약 호송원으로부터 위험물을 수송할때 철도안전 수칙을 준수한다는 각서를 받고 있으며 대한통운도 이에 연대보증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 한국화약과 대한통운의 사고책임관계를 추궁하고 있다.

한편 서 조사단장은 구속된 한국화약 신사장 등에 대해 철도법 84조 외에도 다른 죄명을 적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고 앞으로 이리역 폭발사건에 관련된 구속자는 더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한국화약의 김종희회장이 이리 화약폭발사고에 대한 피해보상금으로 90억 원을 정부에 납부토록 결정했으며 이중 10억 원은 한국화약측이 이미 납부했다고 발표했다.

신동식 건설부 장관은 22일 상오 최규하 국무총리와 한국화약의 피해보상에 관한 문제를 최종협의한뒤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발표하고 나머지 납부분 80억 원은 조속한 시일내에 납부하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장관은 한국화약의 피해보상 방법 절차 등을 전담으로 다루기 위해 정부안에 별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고 말하고 피해보상금 90억 원은 김회장이 소유하고 있거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모기업및 방계기업에 대해 평가한 전재력이라고 설명했다.

신장관은 김종희회장이 회사경영을 계속할 것인지 아닌지 등에 관해 설왕설래가 있으나 이는 회사내부 문제이며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신장관은 김회장이 그동안 이리사고에 대한 법률적.도의적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과 정부에 대해 깊은 사과의 뜻을 표하면서 전 재력을 투입해서라도 피해보상을 하겠다는 결의를 전해왔다고 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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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에 미리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국립 철도고등학교 업무과('70) 졸업사진
故 한인석군(타원표시)이 여기에 있다./ 클릭하면 확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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