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르고 하나인 두 이야기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미해군의 전투기 조종사 Edward H. (Butch) O'Hare 대위는 남태평양에 출동중인 항공모함 Lexington 호에 배속되었다. 어느날 Lexington호를 비롯한 남태평양 함대는 Solomon 군도 서북방의 New Ireland 섬 북단의 Rabaul 항에 일본함정들과 수송선단이 정박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자 곧이어 출동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Rabaul에서 400 mile 앞 해역에 이르렀을 때 Lexington 함대는 엔진 4개를 장착한 일본해군의 대형 쾌속정 가와니시 (川西)호에 발각되고 말았다. 다행히 전투기 편대장 John Thach 소령이 재빨리 출격, 가와니시를 격침시킴으로써 화를 면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 함대의 위치가 탄로되고 만 것이다. 그것도 모르는 함대 사령관은 모든 전투기에게 Rabaul 항을 향해 출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전투기 모두가 항공모함을 떠나 공중편대를 이루었을 때 O'Hare 대위는 비행기에 연료를 넣은 다음 정비병이 탱크의 뚜껑을 닫지 않아 연료가 계속 새어나가는 중대결함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것은 곧 작전수행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즉시 항공모함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사실을 보고받은 편대장은 그에게 당장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O'Hare 대위는 내키지 않으나 편대를 이탈, 혼자 모함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귀환도중 그는 소름끼치는 광경을 목격했는데 그것은 V자의 전투대형을 이룬 9대의 일본 폭격기편대가 미국 함대가 있는 방향으로 전속력으로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두 가지뿐이었는 데 불행히도 그 둘은 다 실행 불가능한 것이었다. 즉:
1). 동료 전투기편대를 불러들여 일본 폭격기들에게 대항케 만드는 일. 그러나 그러기엔 거리가 너무 멀고 시간도 없었다.
2). 소속 항공모함과 함대에게 적기출현 사실을 알려 조속히 대책강구를 촉구하는 일. 그러나 이제는 전투기 하나 없는 무방비상태가 되고 말았으니 그것도 실효성이 없는 일이었다. 일본군은 그런 정보를 미리알고 샛길로 쳐 들어오고 있으리라!
함정 상호간이나 함정과 육상기지 또는 항공기간의 통신은 적이 엿듣기 쉽다. 그래서 통화내용을 암호로 변조해 송신하며 수신자는 그것을 다시 원래의 목소리로 재변조해 듣는다. 그러나 그럴 경우 음질이 나쁘고 잡음이 많아 깨끗이 들리지 않는다. 지난여름 미 해군연구소에서 일하는 내 동창생 강서웅 이 말소리를 변조-재변조해도 유선통화로 듣는 것과 거의 같은 무선통신 시스템을 개발해 발명특허 대상 (大賞)을 받았는데 그것은 그의 12번째의 대상수상이라 하여 미해군사령부에서 훈장과 함께 큰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하여간 그때는 그런 시스템도 없었고 또 보안에도 소홀히 해 적에게 전투기편대의 출동내용과 함대의 위치가 발각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선택은 오직 하나 뿐: 그것은 혼자서라도 일본 폭격기 편대와 맞상대하여 그들을 내쫓아 진행방향을 바꾸게 만들거나 항공모함 가까이에 접근치 못하게 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혼자서 그런 엄청난 모험을 감행한다는 것은 곧 목숨을 건 만용임은 자명 한 일이었다.
망설일 겨를도 없이 거의 본능적으로 적진에 뛰어든 그는 50 mm 구경 기관포를 난사 하여 일본 폭격기를 한대, 두대, 세대를 격추시켰고 다섯 번째 격추에 성공했을 때는 포탄이 바닥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폭격기 격추에 자신을 얻은 그는 육탄공세를 펴 적기의 날개나 꼬리를 부러뜨리는 작전으로 적기가 더 이상 날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렇듯 그는 일본 폭격기편대가 자기 함대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항쟁했다. 일본 측이 그런 기습을 받은 것은 아마도 미국 전투기편대가 항공모함에서 다 떠난 뒤이고 또 항공모함 함대가 있는 지점까지는 아직 멀었다고 안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일본 폭격기들은 약이 오르긴 했으나 불시에 입은 희생이 너무도 커 부득이 방향을 바꿔 기지로 회항 하게 되었다.
탄환 하나도 남지 않고 연료도 거의 바닥나고 거기에 만신창이가 된 전투기의 조종간을 쥔 Butch O'Hare 대위는 아슬아슬하게 모함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그의 무용담은 일본 폭격기를 격추시키고 적기와 충돌할 때마다 촬영한 카메라의 필름을 판독해본 결과 사실임이 판명되었다. 나중에 편대장 Thach 소령이 계산해본 바에 의하면 O'Hare 대위는 적 폭격기 1대 격추에 60발의 탄환밖에 쏘지 않았음이 입증되었다. 그런 공로에 힘입어 완전 무방비 상태에 노출되었던 미 남태평양함대는 운 좋게 피해를 모면했는데 그것은 1942년 2월 20일의 일이었다. 그 공로로 말미암아 소령으로 특진한 그는 제2차대전 최초의 미해군 Ace칭호를 받았고 연이어 해군으로서는 처음으로 미 의회의 명예훈장도 수여받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1943년 11월 어느날 해군사상 처음으로 야간에 항공모함에서 출격하여 전투에 참가한 그는 교신 잘못으로 아군기의 총격을 받아 전사하고 말았다.
그의 고향사람들은 그를 기념키 위해 그곳 비행장을 O'Hare Airport라 명명 했다. 오늘날 Chicago의 O'Hare는 이착륙 항공기대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비행장이 되어 있다. 그 비행장의 Terminal 1과 2 중간에는 O'Hare 소령을 기리는 박물관이 있고 거기엔 그의 동상과 그를 추서하는 여러 훈장과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으니 시간나면 한번 들려보시기 바란다.
다음 이야기
그 일이 있기 훨씬 전 시카고에 Easy Eddie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것은 저 유명한 마피아 두목 Al Capone가 여러 대도시의 뒷골목 특히 시카고의 암흑가를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Al Capone는 돈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손대어 엄청난 부를 쌓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해 권력의 핵심부에도 줄을 대었다. 그는 막강한 조직과 수많은 행동대원을 거느리며 밀주 와 마약의 제조와 판매, 매춘알선, 장의사, 도박장과 극장운영, 심지어는 청부살인에 이르기까지 사업영역을 넓혀나갔다.
John F. Kennedy 대통령을 누가 암살했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그러나 그의 동생 Robert Kennedy가 Chicago의 마피아에게 살해당했음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J.F. Kennedy 는 Chicago를 비롯한 Illinois주에서 표를 얻지 못하면 선거에 패배해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할 처지에 놓여 정말 조마조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때 Chicago의 마피아가 공화당보다는 민주당이 자기네에게 우호적일 것이라 생각하고 민주당을 적극 밀어 Kennedy를 대통령에 당선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선거대책위원장이었다가 선거후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에 오른 Robert Kennedy는 취임 후 사회정화차원에서 마피아 소탕전을 벌였다. 이에 대해 배신감을 억누를 수 없는 Chicago 마피아는 Robert Kennedy를 살해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물론 Al Capone의 전성기는 John F. Kennedy의 대통령 출마전의 일이라 그가 그 살해사건을 지휘하지는 않았겠지만 이것은 마피아의 영향력이 그 얼마나 막강하고 널리 퍼져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일 것이다.
온갖 불법에 개입하고 탈세를 일삼은 Al Capone가 법망에 걸리지 않은 것은 고문변호사의 법정변론이 너무도 탁월했기 때문이다. 즉 그는 변호사를 잘 선임한 덕에 그때까지 단 한번도 형무소 신세를 진 일이 없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Al Capone는 고문변호사 Easy Eddie에게 변호비를 듬뿍 주었고 심지어는 특별 배당금까지 나누어 주기까지 했다.
Easy Eddie는 시카고에서 가장 좋은 주택지구의 한 Block을 다 차지하는 거대한 최고급 대저택에서 엄중한 경비와 수많은 하인들이 보살펴주는 최신식 시설을 가족과 함께 만끽하며 살았다. 이렇듯 그는 당대 최고,최상급 사치생활을 즐기면서도 그런 것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희생당한 수많은 선량한 시민들의 눈물과 억울함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비정한 냉혈한 같은 그에게도 인간으로서의 한 가지 나약한 면은 있었다. 그것은 늦둥이 외아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인데 그는 밖에서와는 달리 일단 집에 돌아와 아들을 대하기만 하면 어떤 것에나 꾸뻑 죽었고 아들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나 해줘야 직성이 풀리고 세상에는 아까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최고의 옷과 음식, 장난감, 자동차, 최상의 보육과 교육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비록 자기는 암흑세계와의 유대관계에서 치부했을 망정 아들에게 만은 선과 악, 봉사와 탐욕, 사랑과 부도덕을 엄격히 구분하여 가르쳤다. 다시 말해 사랑하는 아들만큼은 자기처럼 치사하고 더러운 삶에 얽매이지 말고 현실을 뛰어 넘어 오로지 이상을 쫓아 살고 어엿한 신사도를 개척해 나가기를 진실로 바랐던 것이다. 아들만은 자기보다 나은 떳떳한 인간, 그리고 인간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강한 집념을 지니고 있었다. 이를 위해 그는 모든 시간과 돈과 정성과 노력을 쏟아 부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두 가지만은 아들에게 물려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마피아와 동일시되는 자기 이름 즉 불법과 범법을 일삼는 악당과의 동업자로 알려진 Eddie라는 이름이고, 또 하나는 범죄가 명백한데도 거짓말로 멋지게 변론하여 범죄자들이 법망을 빠져 나가게 꾸며대는 변호사라는 직업과 거기에서 얻은 명성이었다.
이것 때문에 오랫동안 심각한 고민에 빠진 그는 어느날 어려운 결단을 내리고 말았다. 사회적인 영향력과 물질적인 부 그리고 세속적으로 화려한 모든 것을 마다하고 참된 내면세계의 가치를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그는 그때까지 가담해온 모든 불의와 거짓을 청산하고 거기에서 손떼기로 했다. 그리고는 사법당국에 출두하여 Al Capone 일당의 범죄사실을 낱낱이 고발하고 진실을 밝히며 양심선언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런 돌출행위는 범죄집단의 관행과 이익에 반하는 것이 분명하므로 그로부터 올 대가마저도 각오해야 만 했다. 아울러 사랑하는 아들에게 걸맞는 이름을 새로 지어주었는데 그것은 자식에 대한 아비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강렬함을 보여주는 비장한 행위임이 분명했다. 우리 사회에서 “만일 그런 일을 하면 내 성을 갈겠다”고 하면 그것은 자기 인격과 명예를 걸고 하는 최고의 맹세이고 또한 그 일에 자기조상까지 책임진다는 엄숙한 약속인데 서양에서는 필요에 따라 성을 쉽게 바꾸기도 하는 모양이다.
피묻은 손의 주인공들과 한패거리였던 지난날을 깨끗이 청산하고 인간다운 삶의 자리로 돌아 온다는 그 자체가 아들에게 훌륭한 교훈이 될 것이라는 일념으로 그는 증언대에 섰다. 그리고 그 후 1년도 안되어 그는 시카고의 어느 뒷골목에서 정체불명의 일당으로부터 집중사격을 받아 삶을 마감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지상최고의 선물을 아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준 대가로 참혹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이 글이 앞뒤 둘로 나뉘어진 것은 뒤에 등장한 Al Capone의 고문변호사 Eddie가 사실은 Butch O'Hare 소령의 아버지인 까닭이다.
http://www.korean.at/download/Chang_gun_lee.htm
<한국 전력기술기준 위원회 위원장겸 원자력위원회 위원 李 昌 健>발췌
Edward O'Hare
Lt. Cmdr. Edward "Butch" O'Hare (March 13, 1914 - November 27, 1943) was a United States Navy pilot who on February 20, 1942 became America's first World War II flying ace. The O'Hare International Airport in Chicago, Illinois, and USS O'Hare were named in his honor.
Early life
Edward "Butch" O'Hare was born in St. Louis, Missouri. He had two sisters, Patricia and Marilyn. When their parents divorced in 1927, O'Hare and his sisters moved to Chicago with their father, Edward J. O'Hare. The elder O'Hare was a lawyer who worked on many ventures with organized crime figure Al Capone after moving to Chicago, and was one of Capone's lawyers.
Butch O'Hare graduated from the Western Military Academy (WMA) in 1932, and the following year went on to the United States Naval Academy at Annapolis, Maryland. He graduated from Annapolis in 1937, following which he received choice duty on the battleship USS New Mexico (BB-40). After serving two years on the ship, in 1939 he started flight training at NAS Pensacola in Florida. When he finished his naval aviation training, he was assigned to VF-3, USS Saratoga's fighter squadron.
During Capone's tax evasion trial in 1931 and 1932, O'Hare's father provided incriminating evidence which helped finally put Capone away. There is speculation that this was done to ensure that Butch got into Annapolis, or to set a good example. Whatever the motivation, the elder O'Hare was shot down in his car in 1939, a week before Capone was released from Alcatraz.
Butch O'Hare was married in 1941, and shortly thereafter called to duty, the day after the attack on Pearl Harbor.
World War II service
O'Hare's most famous flight occurred on February 20, 1942. He was on board the aircraft carrier Lexington, which had been assigned the dangerous task of penetrating enemy-held waters north of New Ireland. While still 400 miles from the harbour at Rabaul, Lexington was discovered by a Japanese flying boat and a group of Japanese torpedo planes attacked the task force. As section leader and pilot of VF-3, O'Hare single-handedly shot down 5 or 6 planes and helped to save the ship. For this act he was promoted to Lieutenant Commander and awarded the Medal of Honor, the highest decoration of his country.
O'Hare was also awarded the Navy Cross, the Distinguished Flying Cross, and Gold Star in lieu of a second Distinguished Flying Cross in subsequent air actions.
O'Hare died in an air crash on November 27, 1943 at Tarawa during the first carrier-based night fighter operations by the U.S. Navy. The circumstances of his death are unclear, the assumptions being that his plane may have been hit by Japanese bombers, or gone down in friendly fire by the planes in his own for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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