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同床異夢

山寺의 靜中動

marineset 2025. 5. 6. 09:08

                                                   2025년(불기 2569년)  5월 5일 부처인 오신날

 

[우리스님] 용인 대각사 회주 정호스님

기자명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40년 저자거리 포교 '한길'..."오로지 중생"

용인 대각사 회주 정호스님

40년 법랍이 무색하리 만큼 수줍음이 묻어 난다. 수천번 법문으로 대중 앞에 서는 일이 누구보다 익숙한 정호스님이지만 정작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에는 영 재능이 없다. 수줍게 번지는 스님의 미소 뒤로 고적한 방 한 편을 채우고 있는 액자들이 언뜻 눈에 들었다. 어릴 때부터 보아온 꼬마 숙녀의 결혼식 주례 사진을 비롯해 신도들이 보내온 글과 그림들이다. 지난 30년 넘는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가정 법회를 다니며 쌓아올린 끈끈함이 고스란히 담겼다.

 

1989년 오산 대각포교소를 맡은 후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법문한 세월이 30년이다. 2007년 설립한 비영리 민간단체 행복한이주민센터 상임대표를 맡은 후 이주민 다문화 가정, 중도입국자녀 등을 도와온 지도 20년이다. 사찰을 비롯해 개인 이름으로 지원하고 있는 복지관과 후원 단체도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철저한 신심과 공심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오산 포교의 상징, 정호스님의 지치지 않는 포교 원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불교 불모지 오산시에서
대중포교로 본분사 깨달아

상가 건물 셋방살이로 시작
20여 신도회 찾아 가정 법회

이주민 다문화가정 품으며
장관 표창, 시민 대상 수상

"불교가 진정 있어야 할 곳은
치열한 삶의 현장 한가운데"

항상 대중 곁 떠나지 않고
붓다 가르침 전하는 것이
출가 수행자로서의 본분

 

제가 철이 좀 늦게 들었거든요. 출가한 지 20년이 지나서야 중노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던 것 같아요.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 자신과 타인, 만물에 대한 자비이고 사랑이라는 것을그리고 그것이 곧 깨달음의 지혜라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깨닫고 보면 한자리인 것을, 지금 바로 여기서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탐진치를 놓아버리고, 타인에 대한 탐진치를 놓아버리고, 나와 세상을 고통의 바다로 만드는 탐진치로부터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 곧 지혜이고 자비라는 것을요. <화엄경>에 보면 행행본처 지지발처(行行本處 至至發處)’라고 하잖아요. 길고 긴 시간을 돌아서 처음 그 자리로 돌아간 거죠.”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쉽게 쓰고 풀어 말하고, 대중 포교 일선에서 전천후 활약해온 정호스님이지만 태생부터 다변(多辯)과 달변(達辯)은 아니었다. 20대 이른 나이에 말사 주지로 살다가 지인으로부터 오산 작은 포교당 하나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지금이야 로 승격됐지만 그때만 해도 인구 5만 명이 안되는 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었다. 작은 절 하나 찾기 힘든 불교 불모지, 정호스님은 미련없이 오산으로 향했다.

 

그렇게 시작한 상가 건물 셋방 살이, 그때만 해도 몰랐다. 그 셋방 살이가 출가의 이유, 수행자의 본분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게 할 줄은, 사찰 주지로 한 만기(4) 채우기 힘들었던 자신을 지역 사회 40년 포교 뿌리를 내리게 할 줄은 말이다. 정호스님은 대각포교원 셋방 살이의 기억을 매일매일 부끄러움에 사무치던 날들이라고 회상했다.

 

저자거리 수많은 이들이 정호스님에겐 부처님이고 스승이었다. 포교소를 맡은 후 처음 시작한 일은 경전 베껴쓰기, 부처님 말씀을 다시 새기는 일이었다. 신도들은 새로 온 스님 법문을 듣겠다고 매일매일 사찰에 나오는데, 날마다 똑같은 말만 반복할 순 없어 시작한 일이었다.

 

어찌어찌 소임은 맡았는데 주지라고 폼만 잡고 앉아있을 수는 없고, 아는 것도 없으니 무작정 경전 필사를 했어요.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옆에 두고 베껴쓰고 또 베껴쓰고, 그 내용으로 다음날 법문하고(하하). 아이구~ 언젠가 한번은 신도들을 앞에 두고 법문하는데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오니 괜히 막 얼굴이 빨개지더라니까. 그렇게 서툴렀다고 내가.”

노력이 쌓일수록 법문 인기는 높아졌다. 알음알음 법문을 듣고 싶어도 절에 찾아오기 힘들다는 이들도 생겨났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지역 가정 법회였다. 신도들 사는 곳과 연령대에 따라 10명 내외로 계층별 신도회를 조직했다. 청년회, 법화회, 정진회 등 일상에서 주기적으로 모임을 갖도록 독려하는 한편 직접 찾아가 법문도 했다.

 

20여 개 신도회는 한 달에 한번 갖는 모임이라지만, 스님은 한 사람의 몸으로 사찰 정기 법회와 주요 행사 외에도 20개 모임별 집집마다 찾아가 법문을 했다. 정호스님은 한달 내 거의 매일 법문만 하러 다녔던 것 같다 게을러지고 싶어도 게을러질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일상에서 매일 마주해야 하는 신도들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스님을 쉼 없이 채찍질했다. 공중 목욕탕에서 마주쳐 당황하는 벌거벗은 주지 스님을 보고도 오롯한 존경심으로 반배를 올리던 칠십 노인, 월정사 선방으로 떠나는 날 버스터미널에서 추위에 떨던 가난한 수행자에게 꼬깃꼬깃 삼천원을 쥐어주던 새댁을 보며 스님은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출가자로서 폼만 잡고 앉아 있지 않는가, 내가 과연 가난한 칠십 노인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중생의 아픔을 정성으로 보듬고 있는가.

 

숱한 질문이 쏟아진 그 날 스님에겐 내가 과연 시주의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가 평생의 화두가 됐다. 정호스님은 중노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때 비로소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입전수수(入纏垂手) 속에서 뒤엉켜 살더라도 결코 물러서지 않을 수 있는 확고한 신념이 그 때 생겼다고 했다.

그런 정호스님이 가슴에 새기듯 되짚는 게송이 있다.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이다.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착하게 살면 됩니다. 온갖 나쁜 일 저지르지 말고 모든 착한 일을 두루 하며 스스로 마음을 깨끗이 닦는 것,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에요.”

 

착하게 살면 됩니다. 온갖 나쁜 일 저지르지 말고 모든 착한 일을 두루 하며 스스로 마음을 깨끗이 닦는 것,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에요. 아주 쉬워요.

그런데 우리 범부들은 자기 마음을 보고 자기 마음을 단속하는 것을 너무도 쉽게 잊어 버려요. 마음이 시키는 대로 온갖 업을 짓고 그로 인해 고통을 받습니다. 그래서 늘 우리에게는 부처님 가르침을 잊지 않도록 일깨우는 선지식이 필요하고 스님들은 늘 불자들 곁에서 그 가르침을 상기시켜야 하는 사명이 있어요. 스님들은 혼자 도를 닦으면 안됩니다. 불자들과 함께 깨달음의 길로 가야죠.”

 

확고한 신념은 행()으로 나타나고 있다. 포교소를 이끈 지 수십년 세월이 지났지만 정호스님은 지금까지도 신도들이 법문을 청하면 열길 마다 않고 간다. 복지관 교도소 경찰서 등 시간 장소 가리지 않는다. 오산 지역으로 흘러들어온 이주노동자들과 다문화가족도 먼저 나서 품는다.

 

고용주들의 폭행과 임금 체불이 일상화 된 이주노동자들의 떼인 월급 받으러 다니는 일, 이주 여성들이 일을 나가고 한국어를 배우러 다니는 동안 그들의 갓난아기를 봐주는 일 등 체면 차리기 보다 당장 그들이 필요로 하는 일이 먼저다.

가장 낮은 자리에 계셨던 부처님, 그 뒤를 따라 일체중생 속으로 뛰어드는 일. 그래서인지 정호스님에겐 권위 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상대를 배려하는 부드러운 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 스스로를 낮추는 하심이 스님을 설명하는 단어들이다.

 

우러러 받들어야 하는 대상으로서 출가 수행자에게 향하는 권위의 파괴, 19살 집을 나서 사문의 길에 들어선 지 45년 째임에도 어린아이 같은 천진의 눈빛으로 반짝이는 정호스님을 보면 우리 시대 어른을 다시 생각케 한다.
 

정호스님은…


통도사에서 원산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76년과 1979, 월하스님을 계사로 각각 사미계와 구족계를 수지했다. 통도사 강원에서 수학한 후 만기사, 채운암, 대각사 주지를 지냈다. 총무원 감사국장, 호법국장, 포교원 포교연구실장, 13대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다. 현재 대각포교소 주지, 오산불교사암연합회장, 오산경찰서 경승위원장, 성동구치소 교정위원, 비영리 민간단체 행복한이주민센터 상임대표 등을 맡고 있다. 지역 사회 복지 및 다문화 가족과 이주노동자를 위한 교육 및 상담 등 활동에도 매진한 공로로 법무부 장관 표창, 오산시민대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맑은 영혼을 위하여> <벌거벗은 주지스님> <수행자는 청소부 입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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