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audio-visual

6·25때 軍위문한 '고사리들 합창곡'

marineset 2023. 6. 3.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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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년 해군어린이합창단원들이 전문음악인들로 구성된 해군 정훈음악대원들과 함께 '주한유엔군 위문연주회'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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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유엔 참전국 용사들과 야전병원의 환자들을 위문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고사리 손들이 온몸으로 불렀던 노래를 담은 음반이 47년 만에 발굴됐다.

이 음반의 주인공은 지난 51년 4월 7~12세의 어린이 25명으로 구성됐던 해군 어린이음악대원. 해양소년단 고문인 최영섭(해사 3기)씨가 지난 19일 해군에 음반을 기증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지난 54년 미국 우라니아(URANIA)사에서 제작된 음반에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도 수록돼 있다. 어린이 동요연구회장인 안병휘씨는 이 노래가 담긴 첫 음반이라고 고증했다.

해군 어린이음악대는 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란했던 YMCA 소속 어린이들이 주축이 됐으며, 해군 정훈감실에 배속돼 활동했다. 이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의 작곡자인 안병원(현 캐나다 거주)씨의 지휘로 유엔군과 야전병원 환자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공연을 가졌다. 방한한 외국 귀빈들의 환영연주에도 참가, 한국 민요와 동요, 외국동요 등을 불러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이승만 전 대통령은 미군과 미국민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도록 미국 순회공연을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 1953년 미국 상원 공연 때는 당시 닉슨 상원의장이 『외국 합창단이 회의 중인 미국 상원을 무대로 이렇게 아름다운 합창을 들려준 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이며, 영원히 기록될 것』이라고 극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유용원기자 kysu@chosun.com
<저작권자 © NK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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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프란시스코 도착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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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 울려 퍼진 `천상의목소리'

1953년 늦여름, 미 순회공연 길에 오른 해군 어린이 음악대원들이 현지 관계자들의 환영을
받으며 항공기에서 내리고 있다.

“송알송알 싸리 잎에 은구슬/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대롱대롱 풀잎마다 총총/방긋 웃는 꽃잎마다 송송송.”

가을로 접어들던 1953년 어느 날,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 회의장. ‘아메리카 정치 1번지’라
할 수 있는 이곳에 한국 동요가 울려 퍼졌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단상에 선 25명 어린이가
만들어 내는 화음은 ‘천상의 목소리’ 그 자체였다. 공연에 감명받은 닉슨 상원의장은 “아마도
외국 합창단이 회의 도중인 미국 상원을 무대로 해 이처럼 아름다운 합창을 듣게 했다는 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며 이것은 영원히 역사적인 사실로 보존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이날 미국 정치 거물들의 가슴에 아시아의 작은 나라 ‘코리아’를 깊게 새겨 놓은 이들은 바로
‘해군 어린이 음악대’였다.

2011년 6월 13일, 서울 서대문구 소재 이규도(여. 71) 성신여대 석좌교수의 자택.
동요 ‘옥구슬’을 읊조리는 이 교수의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번졌다. 오페라 ‘나비부인’ ‘라 보엠’의
프리마돈나이자 성악가로 수백 번의 무대를 가졌던 그이지만 이 노래는 동요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제가 57년 전 미 국회의사당에서 불렀던 노래랍니다. 해군 어린이 음악대원으로 3개월여
동안 미국 42개 주요 도시에서 순회공연도 했지요. 혈맹국인 미국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자리에
대한민국 홍보대사의 구실을 한 거죠.”
해군 어린이 음악대가 조직된 것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4월이다. 부산으로 피란 왔던 KBS
어린이 합창단원이 주축이 돼 해군 정훈감실 소속으로 위안공연을 펼쳤다. 지휘는 ‘우리의 소원’의
작곡가 안병원 선생이 맡았다. 대원들은 유엔군 부대와 야전병원 등을 찾아다니며 노래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알렸다. 무대라고 해 봐야 건물 로비와 야전 천막이 고작이었지만, 언제나 귀여운
아이들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는 파란 눈의 군인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간혹 방한한 외국 귀빈들의
환영 연주에도 참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대원들은 7살부터 12살 사이 초등학생들이었어요. 당시 제가 열두 살이었으니까 맏언니뻘이었죠.
그때 우리 가족은 모두 대구에 피란 와 있었는데, 음악대 활동을 위해 저 혼자 부산으로 내려가
대신동에서 친구들과 합숙생활을 했어요. 어렸는데도 나라 위한 일을 한다는 생각에 자긍심만은
대단했죠.”

어른들이 벌인 전쟁으로 일찍 철들어 버린 아이들은 부산 KBS를 연습실이자 놀이터 삼아 지내며
계급 없는 군인으로 아군 사기앙양에 힘을 보탰다. 그러던 중 한반도 정중앙에 휴전선이 그어진 53년
늦여름, 아이들은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미 우호 증진과 전쟁고아 돕기 기금 마련을 위한
대장정에 오른 것이다. 외국에서의 3개월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특히 향수병이 아이들을 괴롭혔다.
인솔을 맡았던 해군 군종감 정달빈 대령은 부모 생각에 우는 아이, 김치가 먹고 싶다고 조르는 아이를
달래느라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라고 쓰인 해군 약사만으로도 당시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시련은 아이들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형제자매처럼 서로 격려하는 가운데 계획된 공연을
성공리에 끝마칠 수 있었고, 귀국할 때는 무려 4000만 달러의 외화 원조까지 모아 왔다. 이 돈은 우리
나라 경제복구와 전쟁고아들을 위한 사업에 밑거름으로 사용됐다.

음악대는 귀국 후 해산됐다. 하지만, 전쟁의 고통 속에서 불렀던 희망의 노래는 또 다른 희망을 낳았다.
이 교수를 비롯해 세계적인 음악가를 다수 배출한 것.
“당시 줄리아드 음대에서 유학 중이던 김자경 선생이 순회공연 온 우리를 한 달 동안이나 뒷바라지해
주셨어요. 선생님 자택에서 직접 요리해 준 김치와 불고기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해요. 훗날 제가 성악가의
길을 걸어갈 것을 결심하고 한국 오페라계에 거성이 된 김선생님을 찾아갔을 때, 해군 어린이음악대라는
인연이 사제지간으로 맺어 줬죠."

■ 소프라노 이규도 교수 프로필
▲ 생년월일 : 1940년 6월 8일생
▲ 출 생 지 : 평북 의주
▲ 주요학력 : 이화여대 음악대학 성악과, 미 줄리아드 음악대학원.<2011.06.24 국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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