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사라] 과연 음란물인가
조 한 경
전북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1992년 10월 29일 〈즐거운 사라〉의 저자 마광수 씨와 책을 펴낸 청하출판사 대표 장석주 씨의 전격적인 구속수사가 야기한 '즐거운 자라 파동은 그 해 12월 18일 1심 재판에서 두 사람이 집행유예를 서고받고 일단 풀려난 뒤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라 한다.
문제는 마씨 개인에게 있지 않다. 우리의 덜미를 잡는 것은 그 책 에 덧씌워진 음란죄라는 죄목이다. 국어사전을 참조하면 음란, 음탕, 외설은 유사어이며 육욕에 관하여 너무 추잡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 기에서 '너무'라는 부사가 기준일 듯한데, 이 '너무'는 너무 막연하다. 현재는 물론 그리스 • 로마문화 그리고 기독교문화에서까지 팽배했 던 한마디로 인간의 삶과 밀착된 에로티시즘 문학을 총체적으로 q룬 〈에로티시즘 문학사〉의 서문에서 저자 알렉상드리양이 우리에게 필요 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는 (에로스)예술물과 (포르노)음란물의 구분을 망설인다. 아니, 거기에는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굳이 구분해서 말하자면 포르노라는 것은 육체적 쾌락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이며, 에로티시즘은 그 묘사가 애정 또는 사회생활과의 관계에서 이뤄진 것이라 한다. 따라서 모든 에로티시즘은 필영적으러 포르노이며, 거기에 약간의 어떤 것이 가미된 것일뿐이다.
얼마전 영국 무대에 올려져 절찬속에 장기공연를 갸졋던 아리스토파네스의 <라시스트라타>, 아라비안나이트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 불명의 <천일야화>,그리고 정숙한 부인의 음란한 이야기 모음집인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같은 작품은 성을 묘사할 뿐이고, 그것도 독자를 자극할 목적에서 그렇게 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문학과 예술로 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거기에 숨겨진 도덕적. 미학적. 철학적 이유 때문이었다고 본다. 심지어는 임상적으로도 값할 수 있다. 강렬한 성적 자극을 위해서, 그리고 그것을 제3자에게감염시킬 목적으로 쓰인 사드의 소설들이 그 예이다. 사드는 프로이트에게 욕망의 임상적 구조를 제공해 준 결정적 기여를 했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들려오지만 차이를 무시하고 쉽게 가르자, 반대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 목청높여 묻는다.
사회유지를 위해 구성원 전체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이상적 예의범절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리고 관용이 야기할 범죄는? 천번 만번 마땅한 의문이다.
오늘날 도가 지나친 문학작품과 영화가 범람하고 있고, 또한 그 때 문에 문학과 예술에서 어렵사리 얻은 표현의 자유가 위기에 봉착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문제는 검찰에서 다를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작품의 음란성 여부를 판별하는 검찰 쪽 감정인으로 추천된 민용태 교수는 검찰 쪽에 유 리한 감정결과를 내놓으리라는 일반적 기대를 뒤엎고 변호인 쪽 감정인인 하일지 씨와 토론을 거쳐 공동감정서를 내놓았다고 한다. 두 감정인의 공통된 결론은〈즐거운 사라〉는 성의 해방을 옹호하고 현대인의 소외를 성문제를 통해 다루고자 한 소설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에 의하면 〈즐거운 사라〉에서의 성 묘사는 〈춘향전>에 비해서도 결코 지나치지 않으며, 국내외의 다른 많은 문학작품들 과 비교한다면 오히려 추상적 • 관념적이며 상투적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독자의 의식수준과 전문가의 관단을 차례로 무시하고 있다. 예술성을 획득하지 못한 음란물이 한때 소수의 독자를 현혹할 수는 있어도 결코 영원할 수는 없다. 여기서 혹자는 '한때 소수의 독자가 문제라고 물고 늘어질 수 있다. 그러나 소수의 독자란 분명코 성지식이 없는 소수, 바꿔 말하면 형식적인 성년식은 마쳤지만 내용적인 성년식을 마치지 않은 집단일 것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성지식은 필요불가결하다. 아니 어느 시기 에 이르면 온통 거기에만 관심이 쏠린다. 무지할 경우 오히려 개인적 불행, 가정의 슬픔, 사회적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무지가 부른 불행한 예를 열거할 필요는 없으리라.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소수의 독자가 오직 그런 음란물에만 빠져 있느냐는 것이다. 일정 시기가 지나면 예술적이지 못한 음란물은 더이상 흥미를 끌지 못한다.
검찰은 민 교수의 감정결과에 불복한다는데, 그런 식으로 계속 새로운 감정인을 찾아나서면 한 사람쯤「이것은 음란물입니다.」하고 시인할 사람이 나올 테지만, 이제 그런 억지수사는 그만둬야 한다.
마씨의 소설을 예술애호가와 독자들이 판단해서 보거나 버리게 하라.
〈한겨레신문 1993.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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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나와 「윤동주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75년 25세에 대학강의를 시작으로 28세에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지낸 후 1984년부터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92년 10월 『즐거운 사라』필화사건으로 전격 구속되어 두 달 동안 수감생활을 한 후 95년 최종심에서 유죄가 확정되어 연세대에서 해직되고 98년 복직됐으나, 2000년 재임용탈락의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연세대학교 교수로 있다.
1977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한 이후 그는 시, 소설, 에세이, 평론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35권이 넘는 저서를 쏟아냈다. 89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에세이로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꼬리표가 채 식기도 전에 소설 『즐거운 사라』가 외설스럽다는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구속당한다.
마광수는 분명 화제를 몰고 다니는 저자 중의 하나이다. 그의 긴 약력은 마광수의 글들이 얼마나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으며 동시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모았는가를 보여준다. '구속', '수감', 항소심' 등이 말이 등장하는 마광수의 이력은, 마치 무슨 민주화 운동가의 이력을 보는 듯할 만큼 극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마광수가 정작 자신은 자신을 '무슨 운동가'로 규정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물론 마광수가 자신을 규정하는 사회적 주류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광수의 논리는 아주 단순하다. 자신은 자신의 하고싶은 말, 옳다고 생각한 말을 했을 뿐이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신은 처벌받을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마광수는 무슨무슨 운동과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자유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광수수의 글과 생각은 그것이 발표될 때마다 일종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것은 마광수의 생각이 가지는 일종의 '솔직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마광수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체면에 관계없이 과감하게 발언한다. 이것의 그가 대중에게 호소력을 발휘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동시에는 많은 사람들에게서는 지탄을 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글로 인해서 옥고를 겪거나 했지만 마광수는 유난히 많은 문제를 겪었다. 재직하던 학교에서 해직되어서 시간 강사로 일하기도 했으면 재판정에 나가야만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