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둘러싼 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이 있다.
태조 이성계가 1394년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1396년 도성을 쌓았다. 정도전이 성벽과 성문의 위치를 정하고,
성문의 이름을 지었다. 유교국가의 통치이념인
인의예지(仁義禮智)에 맞추어 동대문은 흥인지문(興仁之門), 서대문은 돈의문(敦義門), 남대문은 숭례문(崇禮門)
이라 지었으나 북문만 숙청문(肅淸門)으로 지었다가 숙정문(肅靖門)으로 바꾸었다.
4대문 사이에 4소문을 세웠다. 남대문과 서대문 사이에 소의문(昭義門-서소문), 서대문과 북문 사이에 창의문(彰
義門-북소문), 북문과 동대문 사이에 혜화문(惠化門-동소문), 동대문과 남대문 사이에 광희문(光熙門-남소문)을
지어 모두 8개의 문을 만들었다.
태조 때 118,070명을 동원하여 49일 만에 쌓은 성의 총길이는 12.8km로 평지는 토성, 산지는 석성으로 쌓은 것
을 세종 4년(1422) 322,460명을 동원하여 38일 만에 모두 석성으로 개축하여 도성의 면모를 갖추었다.
숙종 35년(1709)에도 중요한 부분의 개축을 했다. 가로 세로 2자(60cm) 크기로 다듬은 돌로 튼튼하게 쌓은 것이
다. 성벽 위의 성가퀴(여장-女墻)도 이때 마무리가 되었다.
하천 부지에 세운 동대문이 기울어 고종6년(1869) 헐고 새로 지었다.
500여년을 지켜온 한양성은 광무 3년(1899) 시내에 전차 노선을 깔면서 동대문, 남대문 주위 성벽을 헐고 도로를
냈으며, 서대문, 서소문, 혜화문도 도로를 내며 헐려 나갔다.
펜화로 한양의 모든 문루와 성벽을 원형대로 복원 하였다. 성벽이 살아있는 남대문, 높이가 1.6m 정도 더 높았
던 동대문, 전차가 다니기 전의 서대문, 혜화문이 제자리에 있는 모습,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서소문 등을 사진
자료와 고증을 거쳐 복원화에 담았다.
2007년, 문화재청에서 펜화로 만든 복원화를 이용하여
‘옛 도성의 문루’라는 이름으로 고급 달력을 만들었다.
당시 문화재청장은 이건무, 담당은 오효석이었다.
펜화달력은 문화재청 달력 중 최고 인기여서 추가 인쇄를 하였다.
castles.docx
4대문과 4소문
태조 이성계가 1394년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1396년 도성을 쌓았다. 정도전이 성벽과 성문의 위치를 정하고,
성문의 이름을 지었다. 유교국가의 통치이념인
인의예지(仁義禮智)에 맞추어 동대문은 흥인지문(興仁之門), 서대문은 돈의문(敦義門), 남대문은 숭례문(崇禮門)
이라 지었으나 북문만 숙청문(肅淸門)으로 지었다가 숙정문(肅靖門)으로 바꾸었다.
4대문 사이에 4소문을 세웠다. 남대문과 서대문 사이에 소의문(昭義門-서소문), 서대문과 북문 사이에 창의문(彰
義門-북소문), 북문과 동대문 사이에 혜화문(惠化門-동소문), 동대문과 남대문 사이에 광희문(光熙門-남소문)을
지어 모두 8개의 문을 만들었다.
태조 때 118,070명을 동원하여 49일 만에 쌓은 성의 총길이는 12.8km로 평지는 토성, 산지는 석성으로 쌓은 것
을 세종 4년(1422) 322,460명을 동원하여 38일 만에 모두 석성으로 개축하여 도성의 면모를 갖추었다.
숙종 35년(1709)에도 중요한 부분의 개축을 했다. 가로 세로 2자(60cm) 크기로 다듬은 돌로 튼튼하게 쌓은 것이
다. 성벽 위의 성가퀴(여장-女墻)도 이때 마무리가 되었다.
하천 부지에 세운 동대문이 기울어 고종6년(1869) 헐고 새로 지었다.
500여년을 지켜온 한양성은 광무 3년(1899) 시내에 전차 노선을 깔면서 동대문, 남대문 주위 성벽을 헐고 도로를
냈으며, 서대문, 서소문, 혜화문도 도로를 내며 헐려 나갔다.
펜화로 한양의 모든 문루와 성벽을 원형대로 복원 하였다. 성벽이 살아있는 남대문, 높이가 1.6m 정도 더 높았
던 동대문, 전차가 다니기 전의 서대문, 혜화문이 제자리에 있는 모습,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서소문 등을 사진
자료와 고증을 거쳐 복원화에 담았다.
2007년, 문화재청에서 펜화로 만든 복원화를 이용하여
‘옛 도성의 문루’라는 이름으로 고급 달력을 만들었다.
당시 문화재청장은 이건무, 담당은 오효석이었다.
펜화달력은 문화재청 달력 중 최고 인기여서 추가 인쇄를 하였다.
castles.docx
4대문과 4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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